아득한 어둠 속 그 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프롤로그 _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
백이라는 완성의 숫자의 절반.
오십이라는 삶을 살아온 내게 삶의 무게는 어느 정도 일까.
대학에 입학하고 정말 하고 싶었던 동아리 생활을 시작하면서 대학3학년 때, 다가올 미래를 꿈꾸며 긴 인생 계획을 세웠더랬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20대 중후반에는 당연히 직장생활(사실, 교사가 꿈이었기에 교사가 되어있을 거라고 속단을 했었다)을 하며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는 나를 그려놓았었고.
30대가 되면 결혼은 이미 했을 것이라 여기며, 아이 둘을 낳아 누군지 모를 남편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내로,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엄마로, 그리고 꿈을 이루었다면 사랑스런 제자들과 함께하는 교실에서의 내 모습들을 그려놓았다.
40대가 되면 안정된 생활로 전환된 삶의 시기가 되었으리란 막연한 생각에, 조금은 여유를 부리며 가족들과 국내외 여행을 하고 드넓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나를 꿈꿨다.
50대가 되면 이미 성년이 되었을 아이들을 바라보며 앞서서 돌보는 삶은 마무리되었으리라 생각했고,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엄마가 되어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때쯤이면 전원주택에 살면서 구수한 흙냄새 맡으며 작은 텃밭에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내고, 살아온 삶이 담긴 나의 글도 한편 써 내려가는 내 모습을 꿈꿨다.
60대가 되면 퇴직한 할머니로 손녀, 손주와 둘러앉아 옛 놀이를 알려주고 함께 노는 친구 같은 할미가 되어있겠지 상상을 했었고.
70대에는 사랑하는 남편과 자손들이 모두 모여 한번쯤 추억 가득 담는 여행을 다녀오는 꿈. 그리고 그 여행 끝의 사진을 정리하며 넘겨보기를 수십 번.. 그러다 남편과 단둘이 고운 옷 차려입고 영정사진과 70대 노부부의 커플 사진을 남기는 모습을 상상했다.
혹여나 80대가 넘어가면 나보다 하루라도 먼저 남편을 고이 보내고 삶을 정리하며 매일 하나씩이라도 내 손 닿던 것들을 버리거나 담아, 남은 자손들이 나를 보냄에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내 스스로 정리를 다 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것은 20대의 내가 꿈꿨던 나의 미래였고, 저 꿈 안에는 삶의 무게가 솜털처럼 가볍다.
이제 갓 오십이 되어 바라보는 지금 나의 삶의 무게는 가늠하기 어렵고, 빛으로 본다면 아득한 어둠 속에 밝은 빛을 내는 촛불 6개가 보인다.
내 삶으로 자꾸만 불어 들어오는 바람.. 촛불 6개가 온전히 잘 타들어 갈 때까지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그와 내가 있다. 그도 촛불이고 나도 촛불이며 아직 조금씩 타들어간 4개의 밝은 자녀들의 촛불을 지켜내야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다.
솜털 같던 꿈속 삶의 무게는 어떠한 풍파도 만나지 않은 항해를 꿈꿨던 것일 뿐. 의도하지 않은 비, 바람, 폭풍은 언제든 삶을 덮칠 수 있다는 걸 왜 그날엔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