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 시의 블루
움푹 파여 고인 물을 피해 걷다 멈춘다. 초록색 문이다. 젖은 운동화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몇 걸음 더 걸어가면 검은색에 가까운 파란 대문으로 들어선다. 왼쪽 구석에 사람보다 조금 큰 구조물에서 풍겨오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낮은 자세로 붙어있는 여닫이문이 암모니아의 확산을 막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부질없다.
오른쪽 빨랫줄 밑을 지나 서너 개의 낮은 계단을 오르면 1층집 현관이다. 바로 옆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다.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다리를 치켜들어 계단 하나를 오른다. 그다음은 왼쪽. 몸집보다 큰 가방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왼쪽으로 기울었다 한다. 비탈길을 오르는 거북이의 등을 보는 듯하다. 그렇게 열 번을 반복한 끝에 드디어 출입문 앞에 다다른다.
실내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열쇠 구멍에 넣고 돌려 문을 연다. 문틀과 문이 어긋나며 매스꺼운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놀란 주방의 쉰내가 열린 문을 통해 먼저 나가려고 몰려드는 통에 멈칫한다. 부엌 백열등의 스위치를 올려 어둠과 남은 악취를 마저 내보내고 싶지만, 키가 모자란다.
싱크대와 잡동사니 사이로 난 통로를 지나 막다른 벽면에 기대선 찬장 앞에 멈춘다. 감당하기 쉽지 않은 유혹 앞에 선 듯 팔을 올렸다 내렸다를 수차례 한다.
마침내 찬장 깊숙이 놓여 있는 땅콩잼을 살며시 꺼낸다. 작은 차 수저로 얇게 회를 뜨듯이 표면을 걷어내 입속으로 가져간다. 한 차례 더 하려다 말고 뚜껑을 닫는다.
미닫이문을 밀어낸다. 덜거덕거리는 소리만이 반긴다. 우측 벽면에 이동식 간이 옷장의 지퍼가 반쯤 내려져 있고 연이어 이불장이 배가 부른 양 문을 열어 놓고 서 있다. 남쪽 벽면에는 펼친 라면상자 크기의 창이 자리 잡았다. 창틀 아래로 철재 책상이, 그 옆으로 네 발 달린 텔레비전이 엉거주춤 서 있다. 그 밑으로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밀어 넣는다.
책상 위에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와 화장품이 다툼 없이 각자의 영역을 나누었다.
세 명이 나란히 누우면 꽉 차는 방바닥 한편에 이불을 깔고 몸을 누인다.
흐느낌을 덮은 이불 틈으로 소리가 새어 나온다.
“세 밤만 더 자면 엄마가 올 거야”
창문 너머로 프러시안 블루가 짙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