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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n 20. 2016

일본 소도시 여행

달은 아득한 지평선 위에 떠 있었다


이름 모를 산은
몇 개의 농가를 집어삼킬 듯 서있다.




공항의 천장만큼 여행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들이 떠돌고 있는 곳이 또 있을까?
공중을 가르는 안내 방송음, 머쉰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은 커피 향, 먼 여정의 행선지를 알려주는 전광판들..
내게는 언제나 커다란 창가에 홀로 앉아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의 실루엣은 망망한 바다의 부유물처럼 보인다.
  
여행 첫날, 다카마츠항 근처의 호텔에서 묵었다. 저녁을 먹고 7시부터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갑자기 주어진 시간은 대욕장의 물처럼 많게 느껴졌다.
 
온천에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한 분만 있을 뿐이다. 그는 힘들게 발 하나하나를 떼어 욕탕으로 들어갔다. 몸을 닦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개인사의 중차대한 임무를 완수한 사람의 그것처럼 보인다. 혹은 어떤 모호한 관념의 움직임 같기도 하다.
  
어두운 들판 한가운데 불을 밝히고 있는 로손에 가서 아사히 맥주와 오징어를 샀다. 일본의 오징어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돌아오는 길에 반쯤 지구의 그림자로 덮여있는 달을 보았다. 달은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처럼 아득한 지평선 위에 떠 있었다. 그 밑으로 차들의 붉은 미등이 끊어질 듯 이어져 갔다.
  
마을 어딘가에서 건널목 개폐기가 내려가는 종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는 어둠을 세차게 흔들어놓는다. 그 혼돈 뒤에 내려앉는 더 농밀한 어둠. 나는 시코쿠의 어느 시골에서 밤기차에 기댄 승객처럼 마을을 바라본다. 이름 모를 산은 몇 개의 농가를 집어삼킬 듯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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