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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n 22. 2016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행복은 조용히 내 손을 잡고 있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행복은
조용히 내 손을 잡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은 여행지의 아침이다. 가능성으로 충만한 기분. 설레임으로 농후한 계획. 기대에 찬 동행자들의 표정. 이 조합이 만들어주는 느낌은 행복의 정점은 아니더라도 그곳에 다가가는 순간과 비슷하다. 반쯤 열린 문을 살짝 힘을 주어 밀기만 하면, 서프라이즈 파티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열지 않는다. 그저 그 시간을 만끽할 뿐.



집이라면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심각한 의식을 겪어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한다. 마치 밤사이 불어난 지방을 체크하듯.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미세한 변화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날밤 집까지 따라왔던 녀석은 대부분 머리를 두 쪽으로 갈라놓을 숙취거나 분노의 열패감, 둘 중 하나일 게 분명했다. 녀석들은 아침에 헤어스타일을 불꽃처럼 만들어놓던가 가슴에 구멍을 내놓기도 했지만, 날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거울 속에서 완전히 다른 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는 깊은 회환과 어느 정도의 적의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여행지에서라면 그의 감정이 약간의 호의로 변한다. 말하자면, 나 자신과 잠정적인 평화협정 같은 걸 맺는 것이다. 때론 손을 뻗어 악수의 제스쳐를 취하기도 한다. 나는 오른 손. 그는 왼손.


그 협정 덕분에 여행지에서 내 생물학적 시간은 느리게 간다. 세포들은 일제히 가열차게 늙어가던 것을 멈추고 내 생각에 조용히 귀기울이는 것이다. 수 킬로미터 밖까지 날씨를 예감할 수 있는 커다란 창 밑에서 머릿속을 은은한 향기로 채울 수 있는 커피 한 잔으로 우리는 하나가 된다.

나는 또한 여행지의 아침에 식당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사랑한다. 반짝반짝 닦아놓은 식기가 기분 좋게 부딪히는 소리, 식탁위에서 아이들을 조곤조곤 타이르는 외국인들. 먹기 좋게 익은 식빵을 토해내는 토스트기. 이 모든 것은 갓 구워진 음식의 향기와 함께 나를 기분 좋은 정점으로 밀어올린다. 식사를 끝내고 습관처럼 날씨를 점검하고 시동을 걸어 묵었던 곳을 떠나오는 것. 그 일련의 과정에서 행복은 조용히 내 손을 잡고 있다.



그렇다고 위에서 열거한 모든 것들이 갖춰져야할 필요는 없다. 눈을 뜬 곳이 호텔이건, 게스트하우스건, 허름한 민박이건 중요치 않다. 아직 돌아가야 할 시간이 넉넉하고, 그곳에 아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과 가보고 싶은 곳이 남아 있다면.



heat05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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