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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l 08. 2018

수제비 맛을 감금하는 주인장의  표정

이토록 어색한 분위기의 맛집이라니


맛을 유지하는 비결은 그 사무라이스러운
무뚝뚝함에 있는 것 같다.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 근처에 수제비집이 하나 있다. 페북에도 쓴 적이 있는데 60대 어르신 부부가 하는 곳이다. 남편은 반죽을, 아내는 육수에 삶아내는 역할을 한다.


아저씨는 무뚝뚝해 보인다. 살가운 면이라고는 멸치똥만큼도 없다. 표정도 여느 전통공방의 장인 같은 얼굴이다. 좋은 말로 하자면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오로지 직립하는 예인처럼 심지가 굳어보이지만 각도를 달리해보면 애초에 장사와는 인연이 없어 보인다. 얼굴은 초겨울 숲만큼이나 싸늘하고 입은 언제나 붓으로 그은 것처럼 굳게 닫혀있다. 단골이 가도 그 흔한 미소 한번 보여주지 않는다. 일거리가 들어오는군, 하는 표정이다.


반면 아주머니는 그런대로 온화한 얼굴을 하고 계신다. 하지만 더 활짝 펼 수도 있는데 아저씨와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는 듯하다. 마치 마음의 기어를 달고 있는 것처럼. 그런 분위기니 여느 식당처럼 손님을 반기는 모양새는 아니다. 어색한 공기가 가득해서 초기에는 식당에 들어가는 게 불편할 정도였다.


햇수로 4년째 그곳을 드나들고 있다. 내가 아는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수제비집이지만 어느 매체에도 소개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숨은 맛집이다. 내게는 실력은 충분하나 매스미디어의 세례를 받지 못해 공감의 지평을 넓히지 못하고 있는 무명 작가를 연상시킨다. 일단 한번 영향력 있는 어딘가에 소개되면 문전성시를 이룰 게 뻔하다.


가끔씩 주인아저씨를 보며 생각한다. 아저씨가 후렌들리하게 손님을 대한다면 어떨까 하고. 아마도 수제비의 맛은 그만큼 떨어질 것이다. 맛을 유지하는 비결은 그 사무라이스러운 무뚝뚝함에 있을 테니. 여느 식당과 다른 수제비의 쫄깃함은 정성스러운 반죽에서 나오고 그 정성은 아저씨의 고집스러운 표정에서 나온다. 요컨대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수제비의 맛을 감금하고 있는 것이다. 아저씨가 헤헤하고 웃는 순간 그 집 수제비의 감칠맛은 다른 누군가의 철인 같은 표정을 찾아 어디론가 날아갈 게 분명하다.


어느 날은 그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가게 앞 나무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누군가 버린 담뱃불이 옮겨 붙은 것 같았다. 아저씨에게 황급하게 이야기하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양동이에 물을 한가득 가져오신다. 그러고 나서 정신 차리라는 듯이 나무에 냅다 물을 뿌렸다. 불은 꺼졌지만 아저씨는 고맙다는 말 같은 인사치레도 없이 다시 들어가 반죽을 한다. 뭐 애초에 기대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수제비만 맛있으면 되니까.



*오래전 일본 여행 중에 찍은 료칸 사장님인데 묘하게 수제비집 아주머니와 닮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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