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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Sep 16. 2018

가을은 스며들지만 겨울은 도래한다



가을은 어이없게도
 독립하지 못한 겨울의 속국처럼 지나간다



폭염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 요며칠 하늘은 전형적인 스카이블루가 가득하다. 특히나 동대문 주변은 구름없는 날이 많아 출근길에 나는 자주 하늘을 본다. 그리고 파란색에 물든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날들이다. 어디를 찍어도 가을의 냄새가 고스란히 배어나오니까. 도시의 유리창은 온통 새로운 계절을 만나고 있다.

그렇다고 여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뜨거웠던 날들 속에서 타버린 여름의 잔해는 소멸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조금씩 고립되어간다. 해변에 버려진 폭죽의 껍데기만이 여름을 기억하진 않을테니. 도시도 느리게 여름을 지우고 있다.

햇볕은 아직 뜨겁지만 바람은 찬 날들. 어느 편에 서야할지 갈피를 잡지못한 공기속으로 가을의 전령들은 소리없이 스며든다. 그리고 그들은 길가의 플라타너스가 수많은 잎을 포기하도록 종용할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자전거도 지나가는 길 위로는 단단한 가을의 인증들이 떨어진다.

그렇게 자동차가 가득한 도로 조차도 누군가에겐 쓸쓸해 보이는 계절이 온다. 우리는 헐벗은 나무를 보며 잊고있던 사실을 또다시 깨닫는다. 시간은 절대 고장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어김없이 침묵의 계절이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이상기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을은 어이없게도 독립하지 못한 겨울의 속국처럼 지나간다. 앞서간 무수한 가을이 그랬다. 도시를 점령하듯이 눈이 내리면 하나의 계절이 완벽하게 사라진다. 가을의 시작은 스며들지만 그 끝은 문이 닫히는 순간과도 같다. 그리고 겨울은 폭력처럼 다가온다. 늘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겐 혹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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