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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Feb 06. 2018

시모다 료칸에서

서퍼의 세계관


play or not


나는 알파벳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더듬더듬 창가로 다가갔다.
 
익숙하지 않게 커다란 창은
이곳이 낯선 휴양지임을 일깨워 주었다.

숙취가 과한 탓일까.
머리가 지끈거렸고 속이 메슥거렸다.
 
바다는 차가워 보였다.
바람이 불었고 몇몇 서퍼들은 궂은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개들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봤지만 어떤 소득도 없이 집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시모다 료칸이 매력적인 건 순전히 저 창가 때문이다. 저 창이 없었다면 도쿄 근처의 흔하디 흔한 료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창가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는 가끔씩 명화 속에서나 등장할 듯한 웅장한 파도를 뭍으로 보내왔다. 그리고 서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파도와의 싸움에서 기꺼이 패배를 맛보았다.
 
파도를 타지 않는 서퍼들은 차를 열어젖혀 놓고
음악을 듣거나 모래사장에 누워 빈둥거렸다.
바람과 파도는 여전히 거세게 몰아쳤지만, 그들에게는 음악의 또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유유자적하게 누워있는 그들의 나른함은 어느새
해변을 장악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서퍼의 세계관'이라는
있을 법하지 않은 말을 떠올렸다. 분명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무엇보다도 단순하면서도
명확할 것 같았다.
 
play or not.
 
파도를 타고 있는 동안에
그들의 머리 속엔 먼지 하나 없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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