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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Dec 25. 2017

도쿄 에피소드

요요기라는 주문


우리는 이제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고
아이폰이 사람을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새벽에 공항으로 갔다. 도로는 한산했지만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있다. 한쪽으로 쓸려진 잔설이 무슨 난민들 같다. 안개도 지독하게 끼여있다.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안개는 김포의 명물이 아닌가. 공장의 굴뚝이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을 겨누는 그곳에서는 누구나가 조금씩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시인 기형도에 의하면.



역시 비행기는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했다. 한 시간 반 넘게 활주로에서 대기했다. 비행기가 뜨기도 전에 영화 한 편이 끝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다림은 돈으로 환산되어야 하지만 어느 때나 그런 것은 아니다. 날씨의 잘못에 벌금을 매길 수 없다고 하니 자본의 순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것이 그렇듯 내 바로 앞에서 그 장엄한 흐름은 보란 듯이 끝나고 만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까먹는 듯한 스튜어디스의 일본어 안내방송. 이제 드디어 출발이로구나!



하네다 구코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경제 문화의 도시 도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안내멘트가 나온다. 도쿄에 올 때마다 나를 환영해줬던 건 비였다. 만사 제쳐두고 나를 만나러 왔던 것 같은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번만은 날씨가 좋다. 화창한 도쿄는 정말 오랜만이다. 활주로 여기저기에서 비행기의 두랄루민이 기분 좋게 반짝인다.


 

롯폰기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우선석에 우리나라에 없는 항목 하나가 추가되어 있다. 임산부. 노약자. 장애인. 유아를 동반한 승객 외에 내부 장애라는 픽토그램이 보인다. 앉아서 심각하게 인상이라도 쓰고 있으면 타인의 눈치를 안 봐도 될 것 같기는 한데... 그런 생각을 하는 이라면 내부 장애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도쿄의 지하철에는 거의 모든 이가 한 손에 책을 들고 있다고 칭송이 자자했다. 책 읽는 시민이 강한 국력을 만든다는 어젠다가 우리에게 의문의 1패를 안겨주곤 했다. 그런데 어쩌나. 도쿄도 어쩔 수 없이 누구나가 주야장천 휴대폰만 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고 아이폰이 사람을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교보문고 어록의 순환은 끝!


 


일행이 묵을 아르카 호텔은 롯폰기역 3번 출구 바로 옆에 있다. 걸어서 1분에 갈 수 있는 거리다.
내 룸넘버는 501호. 503 옆에 옆에. 뭐 그렇다는 말이다.


 

아르카 호텔의 수압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멋 모르고 중요부위에 쐈다가는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초에 특수 목적으로 만든 게 분명하다. 샤워실의 호스는 잘하면 도둑을 제압하는 무기로도 쓸 것 같다.
호텔 창문의 뷰는 고가 도로다. 도쿄에서 이 정도면 양반이다. 태어나서 처음 간 도쿄의 호텔에선 창문을 열자 붉은 벽이 나타났다. 순간 어느 지인이 펜션에 놀러 갔더니 반지하였다는 우화가 생각났다(실화로 이름 붙이기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까지 개입된 어리석음이 족히 한 다스는 될 것 같아서).



아무튼 새벽에도 먼 곳에서 달려오는 차의 엔진음이 또렷하게 들려온다. 잠에서 깨어나 그렇게 서너 대를 보내고 나면 아주 외딴 행성에 와있는 느낌이 든다. 그걸 고독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키노쿠니아에 가서 일본 사진작가의 작품집을 샀다. 작가의 작품은 차가운 겨울밤 롯폰기의 고가를 홀로 달려가는 검은 차 한 대를 연상시킨다. 달은 밝지만 차속에는 아무도 없다.


 


무사시노 미술대학이 있는 교외로 갔다. 민숭민숭한 건물들이 파란 하늘 밑에 착하게 늘어서 있다. 외곽으로 나가는 전철 안에서는 언제나 나른해진다. 역 하나를 지날 때마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거대 도시의 바깥에는 교외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떠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데 무기력하게 했다가 상쾌하게도 했다가 자기 맘대로다.


 

교외의 전철역에서도 생계를 위해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 서울의 눈발이 연상된다. 사는 건 어디서나 추운 일이다.



무사시노 대학의 도서관은 재밌는 장소다. 대부분의 외벽을 나무 책꽂이로 장식했다. 하지만 보통사람 눈높이 이상으로 책을 꽂을 수는 없다. 책의 하중을 견딜 수가 없어서다. 천장까지 뻗은 그 텅 빈 책꽂이형 외벽을 보고 있노라니 90퍼센트나 활용하지 못한다는 인간의 뇌가 생각났다. 책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비단 나무 책꽂이뿐만 아닌 것이다.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해준 도서관의 담당자는 누가 봐도 예술가의 풍모를 지녔지만 예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누군가 그렇게 느꼈다면 이미 그는 자기의 형상으로 예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세상의 수많은 재료와 형식 중에서 자신의 외모를 고른 것이다..라고 거창하게 쓰려고 하니 옆에서 지켜보던 와이프가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는 어디서 주워오는 것이냐고 면박을 준다. 누군가가 수도 없이 머리에 버려놨다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무사시노의 여자 아이들은 수수하다. 화장기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햇살이 환하게 스며드는 피라미드풍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사내 녀석들의 우악스러운 말투가 한류와 난류처럼 섞인다. 창가를 바라보며 홀로 밥을 먹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외톨이라 측은해 보이지는 않는다. 각자의 영감을 조용히 챙기고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숙성시키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다. 여기는 ‘변태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다녔던 곳. 괴짜들의 산실이 아닌가.


 

아오야마북 센터에서 디자인 서적을 뒤적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암모니아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찌른다. 어느새 노숙자가 옆에서 책을 보고 있다. 예술서적 같은데 제목은 모르겠다. 집중하며 읽는다. 노숙인의 모습에는 국경이 희미하다. 암모니아에 국적이 없듯이. 오래 거리에서 뒹굴다 보면 하나의 형상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것도 모종의 이데아일까. 그는 서점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까. 뿌연 창으로 있는 듯 없는 듯 해가 보이는 곳에서.



도쿄까지 와서 트럼프의 못난 주둥이를 봐야 한다니. CNN에서는 연신 트럼프가 등장한다. 항상 누군가를 꾸짖는 듯한 표정이다. 그의 주변에 더 이상 타박할 게 남아있기나 할까. 재떨이나 커피잔마저 찌그러져 있을 듯하다. 하기사 일본이라고 사정이 그다지 다른 것 같지도 않구나. 그냥 골고루 보는 것보다 한놈을 계속 보는 게 나을지도.


 

금요일 새벽. 도시를 집어삼킬 듯이 사이렌이 울린다. 이어서 경찰차의 확성기음이 들려온다. 빌딩에 남아 있는 몇 점의 불과 시리도록 차가운 하늘과 잠자다 깬 내 머리가 일순간에 포위된다. 암. 사이렌이 없다면 도시가 아니지. 무언가 터질 듯한 긴장이 없다면 메트로폴리탄 도쿄가 아니지.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일본인 할머니 둘이 말을 건다. 길을 묻는 듯한데..  


“쓰미마생. 아임 코리언.”


신기함. 겸연쩍음. 이런.. 등등이 기분 좋게 어우러진 웃음이 터진다. 순해 보이는 할머니들이다. 함께 여행 다닐 수 있는 노년의 친구는 소소한 일에도 웃음이 나게 하는 명약일 것이다.



요요기 공원의 나무들은 어마무시하게 크다. 족히 30~40미터는 될 것 같다. 요요기는 나무들을 자라게 하는 주문처럼 들린다. 요요기. 요요기. 요요기.. 우리 아이들 키나 좀 자라게 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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