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희대 Dec 02. 2017

이사는 어려워

식탁 하나를 잃었지만



그들이 집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풍겨온 것은 고생의 냄새였다.



이사를 했다.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다. 전철역에서 조금 멀어졌고 아침에 5분 먼저 일어나야 하는 것을 빼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집안의 구조는 이전의 집과 비슷하다. 거실의 사이즈가 조금 달라지긴 했다. 가구 몇 점을 구경꾼들처럼 세워놓아야 할 정도니.

이사를 하다가 식탁에 금이 갔다. 대리석 테이블인데 이삿짐센터 직원이 자리를 잡고 안전보를 벗기자 가운데 금이 가 있었다. 흡사 강이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모두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 난처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 조심하느라 이거 하나만 트럭에 싣고 왔는데, 나원 참...”

팀장인지 사장인지, 60이 넘어 보이는 분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옆에서 동료이자 부인인 것 같은 아주머니가 어두운 얼굴로 금을 문질러댔다. 그렇게라도 사라지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직원들은 겨울철에는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는 듯이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직원 한 분도 나이가 지긋했는데 여러 군데 이빨이 빠져 발음이 샜다. 웅얼웅얼 댔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이삿짐센터에서 온 분들의 연령대가 하나같이 높았다. 숨을 몰아쉬며 짐을 나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안쓰럽기까지 했다. 구소련 스파이 조직과 이름이 같은 브랜드에 맡겼는데 뭔가 이상했다. 유니폼도 없고 직원들도 프로처럼 보이지 않았다(정체를 감춰야 한다는 조직의 사명까지 이어받은 겐가).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었지만 이집저집에서 서로 시간에 맞춰 짐이 들고나가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오신 분들도 친절했고 마음이 좋아 보여 딱히 시비를 걸진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식탁 하나를 잃게 되었다.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누군가의 일당이 고스란히 날아갈 것이다. 아파트의 구조 때문에 사다리차도 쓰지 못하고 짐 하나하나를 엘리베이터로 날라야 했다. 10년 만의 이사라 제법 짐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이사가 마무리된 시간이 오후 10시가 넘어서다. 명확한 잘못을 가름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 종일 고생한 이의 일당을 뺏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일꾼들 모두 어렵사리 살아가는 이들일 게 분명했다. 그들이 집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풍겨온 것은 고생의 냄새였다. 찌들어 있었고 앞으로도 세탁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감상적인지도 모르겠다. 따져야 할 건 따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조만간 대머리가 될 게 확실한 사장님의 성근 머리와 간이라도 상한 듯한 직원들의 시커먼 얼굴과 아주머니의 어두운 표정은 전의를 상실하게 했다. 계약한 회사를 상대로 한들 결국 책임은 그들이 전적으로 질 게 뻔하니까. 더구나 그들은 서로 금의 존재를 확인하기 전까지 너무도 친절하게 내 까탈스러운 요구를 들어주던 사람들이 아닌가.

사물의 운명이 있다면, 그리고 받아들여야 한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식탁은 금이 갔을 뿐이지 해체된 것은 아니다. 미관을 포기하고 그럭저럭 사용하면 된다.

와이프와 상의하고 이삿짐 비용을 그대로 드렸다. 사장님은 연신 미안해하며 얼마라도 제외해달라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선량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몇 푼을 받아낸다한들 힘들게 일하고 돈 한 푼 받지 못한 이들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아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내인 듯한 분이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고 고맙다고 말했다. 내내 마음을 졸였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후 사장님이 잊고 간듯한 가죽장갑 한쪽을 발견했다.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 여기저기 가죽이 벗겨진 게 주인을 꼭 닮아있었다. 더 이상 따라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heat0508@naver.com
www.facebook.com/heat.kwon

작가의 이전글 나는 종종 검은 것들에 빠져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