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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l 24. 2018

어린 고양이 같은 추억은 이제  그 해변에 살지 않는다

강원도에 가는 이유



우리가 떠나도 추억은
그곳의 주민처럼 남아있다.




강원도에 가면 항상 들르는 맛집이 있다. 생전 정주영 회장의 단골집으로 식당 앞에 맛집 사장님과 회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있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막국수를 판다. 와이프와 연애할 때 강릉에 갔다가 우연히 알게되었다.
 
가게 앞에는 해송이 가득하지만 철조망이 쳐져있다. 아마도 군용으로 중요한 지역인 것 같은데 철망 너머로는 참호도 보인다. 참호 안에서 군인을 본 적은 없다. 그 너머로는 바다다.
 
식당은 가정집을 개조한 것 같았다. 단층 구조로 마당이 있고 사랑채가 있다. 해변가의 국도를 지나가면 가끔씩 만나는 그런 곳이다. 몇 마리인가의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고 사진을 찍으면 해변 특유의 나른함이 묻어 나온다.
 
그런 한적한 분위기가 좋아 자주 그곳에 갔다. 당연히 음식 맛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막국수를 입에 넣었을 때 고소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게다가 여행 중 우연히 발견했다는 스토리텔링 덕에 그 집은 실제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따지고 보면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깜짝 놀랄 맛집은 아닌데도 말이다.
 
연애시절부터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그집 주변에는 소중한 추억들이 묻어 있다. 갓 태어난 고양이 새끼가 5마리나 되어 한 마리 가져가겠다며 30분이 넘게 울고불고 떼를 쓰던 큰 녀석, 머리 큰 둘째가 기막힌 표정과 포즈로 웃음을 주었던 수돗가, 와이프와 대판 싸우고 화해했던 해송 숲 앞의 도로 등, 우리가 떠나도 추억은 언제나 그곳의 주민처럼 남아있다.
 
그러던 곳이 변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차를 세운 곳은 내가 알던 식당이 아니었다. 외관뿐만 아니라 장소도 달라져 있었다. 최신 정보가 반영된 내비게이션은 제대로 찾아왔지만 정작 운전자는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야만 했다. 원래 장소에서 그리 멀지는 않았는데 가게 밖에 걸린 회장님의 사진 빼고 외관상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우선 3층짜리 건물의 맨 위층에는 트렌디한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이전에는 풀로 뒤덮여 있던 주차장 자리가 흰색 선으로 반듯하게 그려져 있고 건물 내부는 최신식 인테리어의 수혜를 받은 듯이 보였다. 예전의 어리숙한 알바들과는 다르게 종업원들도 접대 매뉴얼을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곳은 프랜차이즈 식당 같은 곳으로 변해있었다.
 
다행히 맛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막국수는 여전히 맛있고 도토리묵도 감칠맛이 돈다. 그런데 그곳에서더 이상 추억을 만날 수 없다. 매년 조금씩 흘리고 와서 켜켜이 자라 가던 것들이 바뀐 장소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디에서도 더이상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식당은 예전보다 더 많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일개 손님의 서운함과는 상관없이. 제법 많은 수의 단체관광객도 들락거린다. 손님들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멀어져 가고 또 밀려오곤 한다.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식당의 미래는 또 다른 건물을 올릴 기세다.
 
주차도 편해졌고, 식사 후에 커피 한 잔도 즐길 수 있다. 새로 생긴 식당은 사람들이 흔히 바닷가 여행에서 기대할 만한 것들을 대부분 갖췄다. 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 갈 이유가 없다. 시간을 들여 찾아가는 이유는 배를 채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니까.


우리가 만나러 갔던 어린 고양이 같은 추억은 이제 그 해변에 살지 않는다. 귀를 기울여도 희미한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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