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희대 May 30. 2019

호크니는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군

몰랐습니다.


그처럼 구체적인 소유욕과 절망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껴본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어제는 팀원들과 함께 호크니 전을 보러 갔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란다. 특정한 날에만 나타난다는 문화를 찾아 서울시립미술관까지 갔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호크니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볕 좋은 수영장 한켠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에서처럼 화사한 햇볕이었고 잠깐 동안 업무에서 해방된 팀원들은 물놀이라도 온 것처럼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세계적인 거장이 아니던가.


미술관 앞에서 사진을 몇 장 찍기도 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배경의 일부를 재현한 세트는 포토존이었다.
호크니라는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구나, 야호 하는 듯 한 기분으로 두 팔을 벌려보기도 하고, 그림의 주인공들처럼 물에 녹을 것 같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기도 했다. 포즈를 여러 차례 바꾸자 사진을 찍어준 행인의 얼굴에 아주 잠깐 난해한 표정이 스쳤다. 달라질 게 있을까요, 라는 듯한 얼굴이다.


잔뜩 기대를 했지만, 호크니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은 많지 않다. 사선으로 들어와 공간을 묘한 정적으로 갈라놓는 빛그림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가 초기에 그렸다는 에칭(etching)이 많았고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할 수만 있으면 집을 팔아서라도 한 점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뻥이겠지만 모조품이라도 사서 방안에 걸어 넣고 흉내를 내보고 싶었다.


에칭에서 볼 수 있는 유려한 선, 털 하나하나 섬세하게 표현한 화가의 관찰력은 왜 호크니가 세계적인 대가인지 알려준다. 그림에 모기 눈곱만 한 소질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죽었다 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현대화가의 그림을 보고 그처럼 구체적인 소유욕과 절망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껴본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가장 인상적인 그림은 요크셔 풍경화 중 하나인 ‘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라는 그림이다. 너비 12미터에 높이가 4미터가 넘도록 이어 붙인 캔버스에 거대한 나무를 그린 그림으로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의식하며 그린 그림이란다. 크기라면 사진을 압도하겠다는 호기로움마저 느껴진다. 그림 앞에서 긴 장총을 들고 파이프를 입에 문 체 사냥개 한 마리를 데려와 사진을 찍으면 꽤나 어울릴 것 같다. 어디서 컹, 컹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내일은 영화 <기생충>이 기다리고 있다.
호크니에서 봉준호라니,
스타트렉의 우주선을 타고 공간이동을 하듯 또 다른 문화를 찾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티븐 킹의 종이 구기기 강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