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단상 몇 개
20대에 이들을 만났더라면
내가 조금 다른 사람이
모 기업 회의에 갔다. 고위급 임원이 나오셨다. 다양한 기관에서 많은 분들이 왔다. 임원은 좋은 말로 하면 사람들을 격이 없이 대했지만 예의와 배려가 없어 보였다. 그가 던진 농담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인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갈팡질팡하는 것 같았다. 임원의 영향력이 강해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람들은 동조해도 마음 편한 어떤 반응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웃기지 않은 농담에 대놓고 웃을 수도 없었다. 모두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생각 없는 인간으로 비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날 회의는 임원의 거들먹거림과 시답잖은 농담.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이어지며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났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용어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아마 20년도 전일 것이다. 여전히 시대적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이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고사하고 부끄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려 애를 쓴다. 근데 왜 그 부끄러움은 항상 보는 사람의 몫이어야만 하는가.
정체성을 찾자고 모였는데 정체성을 찾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영원히 정체를 찾아 헤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일지도. 뭐 어떤가. 시민을 위해서 뭐든지 합니다. 시켜만 주시면 불도 끄러 갈게요. ㅎㅎ. 어차피 우리가 일하는 건물도 비정형인데 우리 정체성도 비규정이면 안될까요?
요즘 두 명의 예술가에게 푹 빠져있다. 소설가인 트루먼 카포티와 영화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한 명은 나를 이끌고 한 명은 돌아보게 한다. 20대에 이들을 만났더라면 내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예술가의 작품은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책과 영화다. 오늘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는 베인 상처 같다. 조용히 마음속에 아픔이 스민다.
한강에는 아직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수변공원이 있다. 오늘도 차를 몰고 나갔다가 한 곳을 찾았다. 그다지 작지 않은 규모인데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은 많지 않다. 맑은 하늘과 햇살 때문에 가족들을 싣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하얀 차는 마치 생크림을 바른 것 같다. 햇볕이 차양에서 보닛에서 그리고 잔디에서 눈부시게 튀어 오르는 날, 공원은 파라다이스의 세트장 같다.
무엇보다 연을 날리기 좋은 날이다. 하늘에는 벌써 연 몇 개가 펄럭거린다. 공원 트럭에 거추장스럽게 매달려 있다 팔려가는 비닐 연인데 하늘로 올라가 자리를 잡으니 그럴싸해 보인다.
최첨단 드론으로 채워지는 하늘 위에 비닐 연이라니. 사라져 가는 구시대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연에는 드론이 영원히 가지지 못할 정서 같은 게 있다. 자연과 동화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것. 연을 잘 날리기 위해서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 기타 줄을 튕기듯 나무의 숲을 지나온 바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