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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l 08. 2016

누군가 그리워지는 겨울비

파도소리 들리는 방에서


새가 사라진 하늘에서
새의 흉내를 내고 있는 연
포말도 결국 포말임이 부끄러워
사라져 간다.



여름의 해운대는 한반도에 필요한 모든 열기를 쏟아내는 것 같다. 브라질의 밀림이 지구에 필요한 산소를 생산하듯이. 여름밤의 해운대는 그야말로 욕망의 공장이다. 젊은이들은 여름 내내 그 공장의 가동을 위해 젊음을 소비한다. 반대로 겨울의 해운대는 거덜 난 폐가와 같이 을씨년스럽다. 바다를 호위하는 고층건물과 호텔이 있다한들, 겨울밤의 차가운 분위기를 몰아낼 수는 없다. 간간이 터지는 폭죽은 가열찼던 여름의 부유물처럼 보이고 아이들은 깜깜한 밤에도 화약을 묻힌 얼굴로 몰려다닌다.


지난겨울 해운대에 갔다. 넓게 호를 그린 모래사장에는 몇 개의 점처럼 사람들이 있었다. 새들이 사라진 하늘에서 새의 흉내를 내고 있는 연들, 말 떼처럼 달려와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나는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포말은 결국 포말임이 부끄러워 황급히 자취를 감추고 어딘가로 몰려가는 어지러운 발자국 사이에서 나도 같이 길을 잃었다.



고백하건대, 딱히 무언가를 찾고자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수년 동안 출판사를 다니며 지쳐있었고, 한 번쯤은 정리가 필요했다. 되도록 책과 멀어질 것.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갈 것. 그리하여 해남을 거쳐 해운대로 왔다. 물론 해운대를 처음 와 본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여행은 어쩌다 상황이 만든 노정에 올랐을 뿐, 지도를 펼쳐놓고 고른 적은 없었다.


십 년 만에 온 곳은 많이 변해있었다. 해변의 낮은 건물들은 지각이 변동하듯이 스멀스멀 올라와 몇 번 휘청대다가 거의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온 여행자에게 고층빌딩은 차곡차곡 쌓아간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소비도시로서의 풍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휘황한 불을 밝힌 해운대에도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고 나에겐 잠자리가 필요했다. 수소문한 지인은 내게 조용한 모텔이라며 소개해주었다. 고층건물 사이에 낮게 몸을 웅크린 듯한 곳이었다. 그리 기대하지 않았지만, 딱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내 주머니 사정과 어울리면 그만이었다. 모텔은 바다와 가까웠다. 귀를 기울이면 바다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모텔방의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방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컸다. 거울 한 귀퉁이에 ‘회개하라’라고 쓰여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질 듯했다. 무슨 용도인지 짐작은 갔지만, 혼자 묶는 남자에게 큰 쓸모는 없을 것 같았다. 단지 여행자의 외로움을 조금은 덜어주는 기분이었다. 내가 움직이면 거울 속의 나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였다. 그날 밤 거울은 내게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묻고 또 물었다.



내 여행은 비를 동반한다. 적어도 하루 정도는 어떤 식으로든 비를 만난다. 가랑비든, 소낙비든, 겨울비든 종류와 상관없이 여행 중 하늘에서 떨어지면 결국 비였다. 해운대에서 보낸 다음 날이 그랬다. 아침이 되자 비는 어김없이 내렸다. 눈을 떴을 때 차양이며, 보닛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내가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왔다는 듯, 창가의 빗소리는 조용히 나를 깨웠다.



비가 오는 아침의 겨울 바다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았고 비는 수직으로 떨어져 모래사장에 꽂혔다. 아침부터 갈 곳 없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빗속에서 괴성을 질러댔다. 소리가 우렁찰수록 아이들의 마음은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았다. 전속력으로 모래사장을 달려가다가도 엎어져서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비가 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 바다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무언가를 강하게 움켜쥔다. 심장은 그 공격에 저항하느라 조밀하게 요동치고 마음은 무엇인가를 사정없이 그리워한다. 아이들은 과거보다는 다가올 미래를 향해 그리움을 표현하는지도 몰랐다. 그 미래는 틀림없이 불안을 동반함에도 불구하고.



 

이 주간의 여행은 해운대에서 끝났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이 솟구치는 해변을 바라보며, 진혼곡 같이 몰려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던 걸 만났던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을 해봤던가. 빈 지갑 같은 기억을 뒤적여 봤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여행은 익숙한 꿈처럼 이어졌고, 나는 긴 수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여행에서 돌아왔다. 아쉬운 게 있다면 그곳에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그 이 주간의 여행을 풀어낼 것이다. 마지막 날 아침, 해운대 모래사장을 적시던 겨울비처럼 누군가가 심하게 그리워지는 이야기를.












heat05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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