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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l 03. 2016

투명한 블루의 다른 이름, 오키나와

살짝 시기가 어긋난 오키나와 여행





사요나라. 사요나라.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녀는
멀어지는 섬에 작별을 고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오키나와에 있는 동안 비를 만난 건 단 하루였다. 일본의 날씨는 내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일본에 올 때면 대부분 비가 내렸다. 아니 그보다 내가 비를 몰고 왔다고 하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이 무슨 주술적인 이야기란 말인가. 하지만 정말 그랬다.

언젠가 나리타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던 지인은 내가 공항에 내리기 전까지 맑은 날씨였다고 말했다. 비행기가 도착하자 돌풍이 불었고, 원수를 갚겠다는 듯이 빗방울이 맹렬한 기세로 내리쳤다고 투덜거렸다.

     

내게 오키나와는 남태평양 같은 바다색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뿐만 아니라 내 기억 속에 그곳은 전쟁의 상흔과 묘한 에로티시즘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2차대전을 전후에 오키나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섬의 사람들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유며 그 상처는 섬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는 아주 오래전 흑백 사진에서 오키나와를 보았다. 아마 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백과사전 같은 책이었는데, 비키니를 입은 여인 하나가 바다를 배경으로 팔을 들어올려 뒷머리를 감싸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춘기의 소년에게 오키나와는 이상적인 파라다이스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핑크색의 천국은 허다했다. 하지만 그 흑백사진은 어떤 노골적인 춘화보다도 강렬하게 사람의 마음을 자극했다. 지켜야 할 무언가가 스르르 사라져 가고 있다는 애달픔이 빛바랜 사진 속에 있었다. 나는 한동안 오키나와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연찮은 기회에 일 때문에 오키나와로 왔다. 서울에서 2시간. 비행기에서 본 섬은 비비다 만 반죽처럼 바다에 길쭉하게 떠 있었다. 물 색깔은 괌이나 푸켓에서 볼 수 있는 코발트와 녹색, 파란색이 삼분된 전형적인 남태평양의 색은 아니었고, 그저 투명하게 파란 빛깔이었다. 처음에는 제주 삼다수를 공수해온 줄 알았다. 하지만 바다빛깔은 섬의 이곳저곳 많이 달랐다.

     

오키나와는 조용한 곳이다. 바다도, 섬도, 사람들도 모두. 일본의 많은 소도시가 그러하듯 평온하게 일상이 지나간다. 생각해보니 4일 동안 운전을 했는데도 이곳에서 남이 울리는 경적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내가 저지른 실수가 오키나와 거리를 온통 흔들어 놓았을 뿐이다. 고질라가 도로에 첫발을 디디기라도 한 듯이 사람들은 내 차를 처다보았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무튼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적이 없는 도로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는 거의 기적과도 같다. 그렇다고 오키나와에 사람들이 밀집하는 번화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곳 주민들이 경적을 울릴 팔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도로를 달리다 보면 그 고요함이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비게이션과 길을 비교하며 한참을 도로에 서 있는데도, 뒤차는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무인차인가. 짧지 않은 정적에 허튼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소모적인 노이즈 없이도 도로의 질서는 차분히 유지되고 있었다.

     


도로 뿐만이 아니라 국제거리와 몇몇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오키나와 어디에서도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큰 나라에서 온 이들이 단체로 모여들었던 호텔의 조식 시간은 예외로 하자. 그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의 아침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내 인생에서 그처럼 다이내믹한 아침을 맞이한 것은 그 전으로도, 그 후로도 없었다.



 

하루는 섬에서 제법 고지대로 드라이브를 했는데, 차를 몰고 가다 지루하면 가만히 서 있는 나무라든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라든지, 차창을 미끄러지는 빗방울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비가 오는 날, 차 안에서 듣는 음악은 무엇보다 아늑하게 느껴졌다. 비와 음악은 분명 추억을 불러내는 힘을 가졌다. 나는 오래도록 바다를 보며 옛사랑을 생각했다. 오키나와까지 와서 이 무슨 청승이란 말인가.

     


 

이에 섬에서 오키나와 본섬으로 오는 배를 탔다. 배 안에서 조그만 여자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섬과 오랫동안 작별을 했다.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섬에 남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오래된 추억에게도 이별을 고하는 것 같았다.

     

사요나라. 사요나라.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녀는 멀어지는 섬에 깊고 깊은 인사를 건넸다.

     


마침내 여행의 마지막 날 국제거리에 왔다. 무엇이 국제적인지 짧은 기간 둘러봐서 나 같은 여행자가 알 길은 없었지만, 확실히 섬의 어느 곳과도 분위기부터 달랐다. 사람들은 활기에 차 있었고, 입고 있는 옷도 달랐으며 표지판 하나도 섬의 모서리와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서울에서 미팅한 오키나와 가이드는 내게 운명처럼 오키나와를 만났다고 했다.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전류가 땅을 타고 올라오듯 자신의 몸을 감쌌노라고. 아마도 몸이 전생을 기억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횡단보도가 아니라 8차선 도로 한가운데 서 있다 해도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 물론 오키나와가 나쁜 여행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 전생은 이곳에 머문 기억이 없다는 뜻이다.

어느덧 대관람차는 일본 중소도시의 상징처럼 보인다. 아메리칸 빌리지에 있는 차탄 미하마 지역의 야경에도 빠지지 않는다. 인구 50만에 도달하면 대관람차를 세워야 한다는 조례라도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물론 그런 게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지자체의 호기로운 선택일 뿐.

     


츄라우미 수족관은 생각했던 것 보다 컸다. 코엑스의 수족관 보다 서너배는 더 커 보였다. 일본에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수족관 중 하나라고 한다. 그곳에서는 두 마리의 고래상어가 산다.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크기다. 압도적인 물의 양과 수족관을 헤엄치는 어류의 크기는 관람객들의 입을 그곳의 물고기처럼 벌어지게 만든다. 츄라우미에서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어류들이 만들어내는 카오스적인 질서였다. 수천 종의 무리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불규칙적이면서도 일정한 흐름을 만들며 각자의 길로 유영을 하고 있다. 부딪히거나 정체를 만들어내는 일도 없이. 공중부양 자동차들의 행렬같이 아름답고도 장엄한 모습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다른 물고기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물고기도 있었지만, 큰 흐름 속에 미세한 혼란과 같았다.

     



오키나와에서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곳이 있다면 켄토스라는 록큰롤바였다. 그곳에는 더듬이머리를 한 짝퉁 엘비스들이 서빙을 하고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 나왔을 법한 난장이 메니저가 있다. 그는 필리핀 억양의 영어를 썼다. “완 헌드레도, 띄웬티 딸러” 라고 비록 키는 작지만 목소리는 크다는 듯 호기롭게 손님을 안내한다. 마찬가지로 더듬이머리를 한 가수들이 주크박스에서 꺼낸 듯한 로큰롤을 부르면 손님들은 거리낌 없이 홀 한가운대로 나와 춤을 춘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20~30대 직장인 여자들이다. 흘러간 노래에 맞춰 그녀들은 건강하게 몸을 흔든다. 보는 이들은 마치 치어리더 그룹의 활력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에 빠진다. 그 바에서는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옛 TV의 둥근 브라운관과 클리프 리차드와 <백투 더 퓨처>류의 영화가 내게 주었던 그 흑백의 에너제틱한 감성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그곳은 술을 파는 바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테마파크인 셈이다. 사람들은 켄토스에서 돈을 지불하고 추억을 산다.

     


오키나와에 있는 동안 차를 렌트해서 일을 했다. 운전방향이 반대라 처음 차를 몰 때 좌회전을 하고 한동안 우측도로에서 역주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다른차가 얼굴을 들이밀면 마치 수천볼트의 전압에 감전되기라도 한 듯이 화들짝 놀라 급회전을 하기도 했고, 당황해 깜빡이를 켠다는 게 와이퍼를 요란스럽게 작동하기도 했다. 한편의 슬랩스틱을 찍었지만, 다행히 휘발류 렌터카에 경유를 콸콸 쏟아붓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같이 여행을 한 지인은 여행 내내 자식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느라, 나는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식들하고도 같이 여행한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오키나와를 찾은 것은 4월이었다. 어정쩡한 시기다. 일 때문이었지만 그런 시기에 오키나와를 가면 어정쩡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수영을 할 수도 없고, 열대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서 올 수도 없으니까. 한여름 오키나와의 섬, 케라마 제도에 가면 오키나와다운 섬를 만날 수 있다. 전 세계의 다이버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2시간 비행으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에메랄드빛 바다이다.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 그곳에 들러볼 계획이다. 물론 지인과 그의 말썽꾸러기 자식들은 떼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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