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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l 28. 2016

강원도는 나의 힘

예전에 몰랐던


강원도는 비밀을 묻어두고 오면
좋은 곳이다

1년에 한두 번은 강원도를 찾는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년 강원도에 간다. 그곳에 딱히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강원도가 어마어마한 판타지를 주는 것도 아니다. 해마다 강원도에 가서 바다를 둘러보거나 하다못해 메밀국수 한 그릇이라도 먹고 온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내 기억으로는 요즘 온몸으로 대중의 지탄을 받고 있는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란 영화를 보고 난 후였을 것이다. 그전까지 강원도는 지도상 동쪽에 위치한 산과 바다의 고장이란 지리부도적인 의미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영화 속의 강원도는 비밀이 많은 고장, 아니 비밀을 묻어두고 오면 좋을 것 같은 곳으로 그려졌다. 지역 전체가 은밀한 숲 같은 매력에 헛꿈 많던 청년이 스르르 빠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 무작정 정동진행 표를 끊어 강원도로 갔다. 미래는 불안했고 마음은 무너져 내린 시기였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있었다. 심지어 수년간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도 헤어진 상태였다. 한마디로 내 인생의 모든 불운이 한꺼번에 모여들어 '이런 건 처음이지?' 하고 엄지를 아래로 내리깔던 시기였다. 그때 넓은 수평선과 파도 소리 하나가 잔잔한 위안이 되었다. 물리적 법칙에 의해 쓸려갔다 쓸려오는 파도도 내 발목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그렇게 아득바득 쥐며 살아가고 있냐고 파도는 묻고 또 물었다. 부모형제와 친구들도 주지 못하던 위로를 바다에서 받은 셈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하나둘 생기고 삶이 어느 정도 평온해졌지만 그래도 강원도를 찾아간다. 아직도 산과 바다에는 어려웠던 시절 홀로 쓸쓸히 그곳을 배회하는 내 모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경포대에 가면 문득 그 시절의 나를 만날 것만 같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풀 죽은 청년을. 모든 것은 지나간다네, 걱정하지 말라고 어깨라도 다독여 주고 싶다.

     

강원도의 한 물놀이공원에서 워터볼을 타고 있는 장난꾸러기 아들녀석. 사실 강원도보다도 더 큰 내 힘의 원천이다.

 

강원도에 자주 간다고 해서 남들이 모르는 장소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포대와 선교장. 그리고 메밀국숫집을 높은 빈도로 찾아갈 뿐이다. 메밀국숫집은 송정해수욕장에 있는 곳으로 고 정주영 회장이 단골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곳에 가면 국숫집 사장님과 회장님이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걸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정 회장은 웃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를 어정쩡한 표정으로 사진 속에 서 있지만 어떤 연예인의 사인보다도 커다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입맛이 이상한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아무튼 그 집의 메밀묵도 내게는 정말 맛있다. 지금까지 먹어본 묵들을 모두 합쳐 명확한 경계를 그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사장님이 아침마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정 회장님에게 문안이라도 하고 향이라도 피우지 않을까 싶지만 확인해 볼 도리는 없다. 그곳에서 한 끼를 먹으면, 세상을 호령했던 회장님의 호기로움이 내게도 조금 오지 않을까 싶다.

     




선교장은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지나는 조선의 많은 풍류가와 시인 묵객들이 머물며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피우던 곳이다. 예전에는 바로 앞이 경포호수여서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고 하여 선교장(船橋莊)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연잎 위에 서 있는 활래정(活來亭)은 여름을 지내던 별당으로 선교장 건축의 백미다.





선교장은 내게 조금 특별한 곳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사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나를 사진의 세계로 이끌어준 곳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미생활류를 다루는 조그만 잡지사의 기자가 되었는데, 상황이 열악하다 보니 기사뿐만 아니라 사진도 직접 찍어와야 했다. 그 전에는 사진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마감에 맞춰 기사를 쓰는 게 우선이었고 사진은 귀찮은 일이었을 뿐이다. 피사체가 인간이라면 대충 머리만 붙어 있고 누군지만 알아볼 수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던 나는 선교장을 찍고 나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진의 세계에 몰입하는지 알게 되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 밑에 활짝 핀 연꽃을 배경으로 서 있는 활래정은 그때까지 '한옥'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알고 있던 우리 고건축을 다시 보게 했다. 무언가를 새롭게 보게 하는 것.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하는 것. 사진의 진정한 힘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강원도의 산과 바다에는 분명 힘이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강원도로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길 때문이기도 하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만나는 국도는 내게 또 하나의 목적지와 마찬가지다. 무작정 지나가다 마주하는 풍경이 뜻밖의 선물처럼 다가오곤 하는데, 시골길의 중앙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불량스러운 오토바이 한 대도 촬영의 좋은 소재가 된다. 물론 위험하니 절대로 따라 하면 안 된다. 교통규칙 따위 무시하고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운전 중에 사진을 찍는 것도. 내 경우는 고맙게도 와이프가 운전대를 잡아준다. 때로는 제대로 찍으라고 있는 힘껏 고함을 치기도 한다...라고 하면 큰 뻥이고 가끔 못마땅하다는 듯이 핀잔을 주기도 한다. 색감이 이상하다느니...  피사체가 너무 무겁게 박혀 있다느니... 운전대를 맡겨 놓았더니 점점 CEO 마인드가 되고 있다.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다 보게 되는 한적한 어촌 마을의 풍경은 내 사진의 영원한 소재다. 말린 오징어며, 버려진 듯 널브러져 있는 배며, 심드렁하게 앉아계신 어르신들이며. 때론 무작정 차를 세워놓고 마을을 배회하기도 한다. 햇살이 강하면 강한 대로, 우중충하면 우중충한 대로 주민분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있는 그대로의 마을을 담으려고 한다. 강원도는 물론 이런 산길로 이어지는 평지도 괜찮다. 사실 요즘 길에 빠져 있다. 진열장에서 물건을 고르듯, 지나가며 길의 생김새를 유심히 보곤 한다. 뭔가 여행의 향수를 짠하고 던져줄 것 같은 길을 마주하면 좋은 재료를 만난 요리사처럼 흐뭇한 기분에 빠지는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그런 길을 흔치 않게 만난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노을 아니면 컴컴한 밤이다. 노을은 하루 종일 먹고살기 위해 수고한 것들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 같다. 강원도에서 사진을 비롯해 수산물 등 많은 것을 얻어온 것 같지만, 나는 오히려 걱정이나 근심 따위를 그곳에 버려두고 온다. 물론 내가 버린 것들 때문에 강원도가 피폐해지거나 오염되지는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산과 바다는 인간의 불안 따위 수도 없이 정화해 나갈 수 있을 테니. 물리적인 쓰레기만 아니면 된다. 내 젊은 날의 방황을 잡아주었던 그곳에서, 나는 요즘도 심심한 위안을 얻는다. 강원도의 산과 바다에는 힘이 있다. 고랭지의 무처럼 박혀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사람을 위무하는 힘이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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