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희대 Aug 17. 2016

길 위에서 찍다

내 사진의 영원한 테마


네이버 담당자가 낮술을 했던가,
아니면


처음 DSLR 카메라를 손에 쥔 건 10년 전이었다. 그전까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조작하기 어렵고 게다가 무겁기까지 한 카메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게 그다지 나와 맞지 않은 것이다. 작가가 찍어온 사진으로 편집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여행가이드북을 여러 해 만들다 보니 사진을 구해야 할 일이 종종 생겼다. 작가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용과 일치하는 사진이 없는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다 보니, 내가 직접 찍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걸하는 것도 한두 번이고, 또 사업비가 있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당시 초보자용으로 나온 캐논 400D를 덜컥 사고 말았는데, 그날 충무로에 있던 카메라 상은 아마 호구도 저런 호구가 없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처음 만져보는 묵직한 카메라로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노출이고 조리개 우선이고 알 리 없는 초보자가 의존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책밖에 없었다. 주위에 친분이 있는 작가들이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책으로 배우는 게 진정한 배움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텍스트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작가의 영혼까지 담은 무언가가 깊이 박혀있으리라는 착각이었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용어를 꾸역꾸역 구겨 넣으며 누가 봐도 실소가 나올 사진들을 찍어와 책상 앞에 걸어놓곤 했는데, 직장의 동료들이 으흠, 괜찮은데, 라며 ‘거짓된’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카메라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운 좋게도 네이버 '오늘의 사진'에 선정되었다. 그야말로 뜻밖의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는 네이버에서 사진 부분을 키울 때라 친절하게도 사진을 인화해서 집으로 보내주었고 상금으로 '거금' 10만 원까지 통장에 꽂아주었다.






선정된 사진은 그다지 훌륭한 것이 아니었다. 그날 네이버 담당자가 낮술을 했던가, 호주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있던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진은 포트스테판의 모래언덕을 찍은 것이었는데, 대충 구도만 잡으면 누구든지 그럴듯한 장면을 건질 수 있는 풍광이었다. 파란 하늘과 보색 대비를 이루는 황금색의 모래언덕, 그리고 어딘가 이상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가이드. 때마침 적당히 배경을 만들어 준 양 떼 같은 구름들은 네모 틀 안에 별생각 없이 배치해도 오우, 하는 감탄사를 뽑아낼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그 후 내 사진 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작가로서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게 아닐까 라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품고서 카메라와 장비들을 조금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은 거금을 쓰고 있다는 불안감을 적당히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또 상금으로 받은 10만 원은 미래가치라는 얼토당토않는 자기 설득에 넘어가 100만 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연히 나날이 씀씀이는 커지고 카메라 교체 주기도 짧아졌다. 하지만 그런 투자에도 불구하고 행운은 내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공모전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보내봤지만 내 메일함에는 스팸만 잔뜩 쌓여갈 뿐이었다. 흔히들 행운의 여신이라 하지 않는가. 변덕이 심한 여자가 수많은 사람 중에 나를 잠깐 사랑스럽게 쳐다봤을 뿐 이내 매몰차게 시선을 거두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나는 기를 쓰고 올라오려고 하는 귀찮은 두더지 중의 하나일 뿐이었고 여신은 가끔씩 생각났다는 듯 방망이를 휘둘러 내 의지를 꺾어놓았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판을 벌려주지나 말 것이지.



 



AI에 의해 가장 먼저
정복될 사진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불현듯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올바른 길이 어디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은 아닌 것 같은 혼란스러운 느낌이 불쾌한 가스처럼 내 내부에 가득 차올랐다. 인생 나침반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감추고 다른 사람이 좋아하리라 생각하는 것만 꺼내놓고 있었다. 예를 들어 꽃에 대한 아무런 흥미도 없으면서, 봄에는 사람들이 꽃 사진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그런 것만 찍으러 다녔다. 나를 자극하는 것은 비 오는 날 관에서 나온 것 같은 인물이거나, 안개가 가득한 멜랑꼴리한 바다인데, 남들이 화사한 사진이 좋다고 하니 그러한 사진을 흉내내고 있었다. 다른 이의 박수소리가 들리는 곳에 뒤뚱거리며 서려고 한 것이다. 또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월등한 장비가 필요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남들이 선호하는 것들을 좇아가는 방법은 기술적으로 사진을 배울 때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내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으로 만들어놓은 틀에 나를 가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진심이 담길 리 없었다. 내가 애정을 가질 수 없는 대상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며놓는다 한들, 다른 사람에게 좋게 보일 리 없지 않겠는가. 결국 누가 찍어도 다르지 않을 문방구 엽서 사진 같은 것만 잔뜩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좋은 장비에 대한 집착은 나를 버리는 일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사진은 내가 찍는 게 아니라 비싼 장비의 일일 테니.

     





물론 그 후로 천지개벽 같은 깨달음에 이르러 전인미답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가는 공모전마다 상을 휩쓸었다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여전히 나는 긴가민가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때론 불방망이에 뒤통수를 후려 맞은 것처럼 남들이 찍어놓은 사진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타인들의 갈채가 없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찍으러 간다는 것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의 인생 테마는 길이 되었다. 특히 차를 타고 지나치다 만나는 풍경은 나를 매혹시킨다. 삼각대를 놓고 심사숙고해서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스치는 잠깐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기에 그 찰나의 순간이 더욱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한번 여행을 다녀오기라도 하면 길 사진은 수백 컷에 이른다. 물론 대부분 쓸 수 없는 사진이다. 흔들리거나, 초점이 맞지 않거나, 무엇을 찍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그나마 건진 것들 중에도 우연히 찍힌 것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 노력들을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연히 찍힌 것이면 어떤가. 내 손으로 찍은 것을. 사진사에는 유명한 말이 있다. 흔들린 사진이 한 장이면 실수지만, 수백 장이면 스타일이 된다고. 다음에 그러한 것을 또 못 찍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겠지만, 세상에는 다시 찍을 수 없는, 우연이 만들어내는 유일무이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마음의 미궁 속에서 꺼낸
그 무엇


지금 사진의 길로 들어선 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림, 소설, 음악 등을 비롯해 어쩌면 예술의 분야 중에서 AI에 의해 가장 먼저 정복될 분야는 사진이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눈에 좋아 보이는 사진을 수백, 수천만장을 데이터로 축적해 놓은 인공지능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또 그런 인공지능을 장착한 드론이 풍경을 찍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드론은 실시간으로 축적된 데이터와 비교하며 비슷한 형태와 빛의 각도, 광량, 컬러 등을 조합해 빠른 시간 안에 대중이 선호할 최적의 결과물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우연이 개입할 여지도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그 우연마저도 작품화할 수 있을 것이다. AI는 머지않아 기술적인 부분에서 사람이 따라가지 못할 사진을 뽑아낼 것이 분명하다.





사진을 가지고 바둑을 두듯이 기계와 경쟁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 이상 사진을 데이터베이스적인 것, 장비 우선적인 그 무엇으로 접근하기에는 인간의 한계가 뚜렷하게 보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감성을 담고 사진에 스토리를 부여하고,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아직까지,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인공지능이 따라오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 아닐까. 갓 태어난 아기에게 느끼는 아빠로서의 감정, 첫 데이트에서 만나는 연인의 눈빛, 회한을 느끼는 노인의 얼굴 등 인간의 감정이 개입한 사진은 어쩌면 기계가 영원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를 테니.





두서없이 풀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이다. 자기만의 감성과 스토리를 담은 사진을 찍을 것. 그리하여 사진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되게 할 것. 기술이 가닿지 못하는 궁극적으로 마음의 미궁 속에서 꺼낸 그 무언가가 될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생 테마를 정해야 할 듯하다. 끊임없이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시류에 흔들리며 남을 따라가서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 앞서 간 자들의 충고였다.
당연히 이 말은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주는 조언이다. 취미를 넘어 진정한 실력을 쌓기에 아직도 갈 길이 먼. 그런 이유로 내게 남은 건 마음의 조리개를 더 조이는 일. 그리고 내 인식에 망원렌즈를 다는 일이다. 사진이라는 길 위에서 나는 아직 무던히도 서성이고 있으니까.  

     




자, 이제 당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테마는 무엇인가?





www.facebook.com/heat.kwon
heat0508@naver.com


매거진의 이전글 강원도는 나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