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물속에서 즐거울 것이고
나는 배위에서 허망했다
얼마전 세부에 다녀왔다. 필리핀은 처음이다. 장시간을 리조트 안에만 있어 사실 외국에 온 듯한 느낌은 없었다. 아이들과 수영을 하고 먹고 마시며 놀았다. 가끔씩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도 했다. 죽 이런 날들이 흘러가면 당분간은 살맛이 날 거 같았다. 하지만 그 뿐이다. 삶의 의미 같은 건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하리라. 휴양지의 삶이란 파란 하늘밑 구름처럼 나타났다 스르르 사라져가는 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프니를 타고 지나가다 필리핀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지프니를 멍하니 쳐다봤고 꼬질꼬질한 개도 멍하게 쳐다보았다. 지프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관광객과 자신들을 무의식적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듯한 눈빛이다. 무딘 양심이지만 새카만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아이들은 방치된 듯 자라고 있었다. 인간의 행복을 객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먼 바다로 호핑 투어를 갔다. 스노클링을 하고 낚시도 했다. 여전히 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즐거울 것이고 나는 배위에서 허망했다. 각자가 가져가야 할 몫으로 나쁘지 않았다. 파란바다의 비밀을 들여다보듯 스노클링을 즐겼다. 그러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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