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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l 31. 2017

사이렌, 나를 일깨우다

절박한 삶의 소리


앰뷸런스는 느린 적혈구 사이에서
혈관을 빠르게 지나가는
강렬한 메디신처럼 보인다.

처음 동대문에 왔을 때 특이했던 것은 반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앰뷸런스의 사이렌이었다. 그 소리는 이 거리의 아이덴티티 같았다. 오후의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소리에 나는 가끔씩 업무를 보다 말고 사무실인 7층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곤 했다. 앰뷸런스는 중앙선을 넘나들며 긴급하게 어디론가 가고 있거나 서울대병원을 향해 질주했다. 내가 오후를 나른하게 보내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생과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한동안 하루에도 서너 번씩 회사 앞에서 들려오는 사이렌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소리가 그처럼 절박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 내 머릿속에서 교차했으며 앰뷸런스가 지나가고 난 거리의 공기는 이전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회사는 10층 건물에 있다. 언덕 위에 있어 밑을 내려다보면 한 30층에서 조망하는 풍경을 보는 듯하다. 천천히 흐르는 교통의 흐름을 깨고 대학로 저 멀리서 달려오는 앰뷸런스는 느린 적혈구 사이에서 혈관을 빠르게 지나가는 강렬한 메디신처럼 보인다. 처음 몇 달 내게는 인상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감각은 무뎌지고 앰뷸런스를 봐도 더 이상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수송되는 사람의 생과사는 오로지 당사자와 지인들의 몫이었다. 나는 그 차가 무수히 스치는 여러 사람 중 한명일뿐. 앰뷸런스를 보고 어두운 감상을 보태건 그렇지 않건 그 누군가의 생사에는 일말의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어찌 되었건 앰뷸런스는 이 거리의 명물처럼 오고 간다. 지난주 금요일에도 앰뷸런스 두 대가 회사 앞을 지나갔다. 메트로놈의 한 주기처럼 오전에 한 대, 오후에 한 대. 앰뷸런스는 어느 때 보다도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렸다. 이상하게도 주말이 다가올수록 그 소리는 크게 들려온다.


당연히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사고를 당한 젊은인지, 병사가 임박한 어르신인지. 누군가에겐 그 길이 숨이 붙어 있을 때 지나가는 마지막 길이 될 것이었다. 서울대병원의 응급실로 들어가기 전 어쩌면 언덕 위의 10층 건물과 하늘은 누워있는 이가 차창을 통해 마지막으로 보는 인상 짙은 풍경일지도 모른다. 하늘을 배경으로 공원 위에 서 있는 제법 커다란 흰색 건물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


동대문 주변의 하늘은 유난히 구름 하나 없이 파란 날이 많다. 사계절 내내 그런 날이 자주 펼쳐진다. 꺼져가는 생명에게 생에 대한 애착과 의지를 심어주리라 믿는다. 그 덕분에 몇 분은 조금이라도 늘어난 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을 바라보며 가능한 좋은 쪽으로 생각할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 거리에서 죽음을 예고하는 사이렌이 내게 들려주는 교훈이다.








heat05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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