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인들을 떠올리면,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 그들에게 꼭 먹여주고 싶은 음식이 각자의 이름 옆에 꼬리표처럼 붙어있다.
아빠와 나는 갓 내린 예가체프처럼 항상 서로의 기분을 환기시키고 영감을 주는 관계이며,
남편과 나는 어떤 재료를 넣어도 따스하게 품어주는 만두 같은 관계다. (우린 일주일 내내 삼시세끼 만두만 먹어도 살 수 있는 만두 귀신이다.)
이런 내게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관계가 있는데, 바로 엄마와 나의 관계다.
우리 관계는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처럼 구수하지도,
한 겨울 후후 불어 먹는 설렁탕처럼 뜨끈하지도,
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까먹고 귤처럼 곰살맞지도 않다.
세상에서 어쩜 가장 가깝고 애틋한 사이가 모녀 지간인 것을.
우리 모녀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삼 남매 중 막내딸이다.
장남을 아끼는(사실상 내 눈에는 섬기는) 보수적인 할머니와 함께 산 탓에 에 '후남이'로 포지션 된 언니와 나는 항상 뒷전이었다. 가령 자식과 손녀의 특권인 세뱃돈, 귀한 닭다리 같은 것 말이다.
할머니와 엄마가 뱉는 모진 말은 우리 자매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기보다 그저 한없이 엄마의 따뜻한 시선과 말 한마디를 기다렸다.
30대 후반이 되어도 여전히 나는 엄마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가슴이 아팠고, 그때마다 내 안에 지독하게 외롭고 움츠러있는 내면 아이를 보듬으며 같이 울고, 하염없이 걸었다.
2018년 5월.
곧 독립을 앞두고 있어선지, 아니면 나도 이제 한 성인 여자로서 엄마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시기에 접어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극적으로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엄마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배경으로 엄마는 왜 이런 상황에서 내 마음에 비수를 꽂는 것일까? (내 마음에 비수가 꽂혔다는 건 알고나 있을까?)
물론 가장 빠른 방법은 엄마와 단 둘이 시간을 가지며 오붓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이었다.
단둘이 모녀 여행 같은 걸 떠나 속풀이 하는 시간.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우린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아빠와 둘이 하는 여행은 상상이 되어도, 엄마와 둘이 하는 여행은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았으니까.
"엄마, 엄마는 나 사랑해?"
라는 말 한마디 묻지 못한 채, 그렇게 난 할 말을 삼키며 눈물만 뚝뚝 흘리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9년 4월.
그렇게 우리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지 못한 채 나는 미국에 왔다. 장거리 연애만 하다 이젠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신혼의 달콤함도 좋았고. 드디어 나만의 놀이터, 작은 주방이 생긴 것도 감사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방으로 출근한 날 아침.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운 멸치부터 꺼내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무와 파 따위를 적당히 썰어 두었다. 당장 점심에 먹을 메인 요리를 지지고 볶아도 모자랄 판에 나는 멸치 육수를 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 멸치 육수가 냉동실에 없으면 불안증 증세를 보였던 엄마가 지금 내 앞에 있다.
항상 주방을 떠나지 않고 멸치 국물을 우려내던 그녀, 마늘은 꼭 집에서 직접 깐 뒤 절구로 콕콕 빻아 소분해서 쓰던 그녀. 그런 우리 엄마의 영혼이 나에게 빙의라도 한 듯... 나는 어린 시절 주방에서 항상 움직이는 엄마가 되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을까. 엄마의 삶이 갑자기 가여워졌다. 그리고, 그동안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있던 내 마음이, 엄마와 나 사이의 큰 얼음벽을 녹아내릴 방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