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요리가 비싼 소꿉놀이었던 딸의 고백
20대 초반의 나는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가 되겠다며 요리를 배우러 다니고, 대학교 4학년 2학기때는 국제통상학 전공의 길은 때려치우고 푸드 쪽으로 커리어를 바꾸겠다며 거금 700만 원을 들여 10개월짜리 푸드 코디네이터 과정에 등록했다. (엄밀히 말하면 부모님께 졸랐지).
그런 나에게 요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생활 노동이 아닌 '비싼 놀이'였고, 옷을 사고 화장을 하는 것과 같은 '사치 행위'였다. TV에 나오는 셰프들처럼 멋진 주방에서 깔끔하게 준비된 식재료를 착착 프라이팬과 팬에 넣으며 마치 춤을 추듯, 예술하듯 지지고 볶는 행위는 나에게 로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살림을 시작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내 로망은 산산조각 났다. 나의 놀이터였던 주방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파이팅 해야 하는 피트니스 클럽이었고, 주방을 움직이는 건 내 머릿속 로망이 아닌 엄청난 체력과 지구력이라는 걸. 재료 손질, 조리, 세팅, 그리고 어마어마한 설거지, 남은 반찬 정리, 음식물 쓰레기 처리까지 이 지난한 매뉴얼을 하루에 최소 3번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노동이었다. 여러 가지 단계 중 내가 생략할 수 있는 단계라곤 "예쁘게 세팅해서 천천히 음미하기"였다.
이렇게 놀이였던 요리가 노동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떠오른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아, 우리 엄마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겠구나.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알콩달콩하며 요리하지만, 남편이고 자식 셋이고 시어머니까지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이 빚쟁이처럼 밥상 차려 달라 아우성치기만 했던 그 시절 우리 엄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때 엄마는 육체적 고단함만큼이나 심리적 고립감이 더 크진 않았을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옛날 엄마에게 늦게나마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담아 깐 마늘을 사지 않는다. 우리 가족은 내가 두 돌이 갓 지난해였던 1984년, 내 고향 충청남도 당진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삼 남매에 할머니까지 모시고 사는 대가족이라 당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살림이 빠듯했다. 그때 엄마와 할머니는 집에서 마늘 까기 부업을 하셨다.
어린 나에게 며칠에 한 번씩 배달되는 마늘 망태기는 재미있는 장난감이었건만, 할마니와 엄마의 손 끝은 항상 마늘 껍질로 뒤덮여 있었고, 거칠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우리 엄마는 지금도 마늘을 직접 깐다.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가서 신선한 마늘 최소 반 접 정도 망태기 가득 사 오셔서 거실 한편에 신문지를 펴 놓고, 하루종일 바스락바스락 마늘 껍질을 벗겨낸다. 그리고 드르륵 믹서기에 갈아서 일부는 유리병에 넣어 요리할 때마다 쓰고, 일부는 얼음팩에 넣어 냉동실에 넣는다. 급할 때 하나씩 톡까서 국에도 넣고, 살짝 녹여 양념에도 넣고 말이다.
남편은 마늘보다는 파와 생강을 많이 쓰는 편인데, 내가 코스트코에서 통마늘을 사자 하니 난감한 표정이다.
마늘을 까는 게 얼마나 힐링인 줄 알아? 갓 깐 마늘은 또 얼마나 향긋하다고.
나도 이제부터 엄마처럼 직접 마늘을 까서 얼려 쓸 거야.
그날부터 깨 볶는 냄새가 진동해야 할 신혼집 주방에 마늘 전쟁이 시작됐다. 남편은 껍질 까기 편한 도구들을 계속 사들이며 조금이라도 내가 편하게 마늘을 까기 바랐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도구도 쓰지 않았다. 작은 과도로 뿌리 부분을 탁 잘라내고 도마에 천천히 굴리면 잘 까진다. 미국 마늘은 알이 작아질수록 껍질도 얇아 어찌나 까기가 힘든지, 내 손톱이 마늘로 보이기 시작할 시점에 드디어 마늘 까기 미션이 끝났다.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마늘 까기에 집착했을까?
시중에 파는 깐 마늘보다 위생적이라 믿었을 것이고, 엄마의 노동력이 투여되는 만큼 통마늘이 더 저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짧게나마 마늘 대첩을 겪으며 느낀 건, 엄마에게 마늘 까기는 고수의 몸풀기이자 숭고한 의식였다. 비록 마늘의 아린 맛이 코끝을 강타하고, 손끝에 밴 마늘향이 최소 하루는 갈지언정, 우리 가족에게 '음식의 기본'이 되는 양념을 내가 스스로 준비하는 것, 그건 제야의 고수가 거사를 앞두고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의식이었으리라.
마무리하며,
엄마에게 쓰는 한 줄 편지
엄마, 엄마가 마늘 까는 날마다 집에서 마늘 냄새난다며 잔소리하던 막내도
이젠 집에서 마늘을 까. 가끔 밀린 드라마 보며 손이 심심해서 마늘을 까기도
하고, 우리 아들 임신했을 때 불면증으로 잠 못 잘 땐
한밤중 나의 소소한 일거리였지.
엄마가 온몸으로 보여준 살림의 기본이자 숭고한 의식, 이제 내가 하고 있어.
좋은 습관 물려줘서 고마워. 그리고, 한 번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