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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Mar 26. 2024

패싱

글을 읽는 중 입니다

 올해는 최대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하는 고전 문학 읽기 동아리에 참석 중입니다.

 도서관은 사는 곳과 같은 구에 있지만, 대중교통 편이 편하지 않아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방문한 도서관은 외진 곳에 있었지만, 수목원 안에 있어 독서하며 사색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일 년 동안 진행하는 동아리의 첫번째 책은 넬라 라슨 작가의 패싱이었습니다.

 작가의 삶이 작품을 따라가는 것인지, 작품이 작가의 삶을 반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혼혈 흑인 중산층으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녀가 작품 속 아이린과 많은 부분 겹쳐 보여 더 마음 아픈 작품이었습니다.

 1929년 발표된 이 작품은 흑인은 백인이 출입하는 곳에 출입할 수 없던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더불어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사람도 흑인으로 취급받던 시대였죠.

 주인공 아이린의 시점으로 진행하는 소설은 첫 장에서 아이린의 작은 일탈로 시작합니다.

 흑인 백인 혼혈인 아이린은 백인에 가까운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은 채 백인들의 공간에 드나들 수 있습니다.

 폭염의 어느 여름 날, 아이린은 더위를 피해 백인만 출입 가능한 호텔 라운지를 방문합니다.

 이곳에서 그녀를 알아보는 듯한 백인 여성을 만나 긴장하던 아이린은 곧 그녀가 어릴 적 친구인 클레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클레어 역시 혼혈로 백인에 가까운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린이 보기에는 그녀보다 더 완벽한 백인에 가까운 외모를 말이죠.

 아이린은 가족들과 함께 흑인들이 사는 할렘가에 자리를 잡고, 백인을 증오하는 흑인 브라이언과 가정을 꾸립니다.

 반면 클레어는 그녀가 흑인이라는 걸 보여주는 증표라 할 수 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렘가에 뿌리내릴 수 없었고, 백인 대고모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하지만 클레어의 백인 대고모들은 깜둥이는 깜둥이다운 생활방식을 해야 한다며 조카인 클레어를 하녀부리듯 합니다.

 이에 클레어는 백인으로도 흑인으로도 인정받을 수 없는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패싱', 클레어는 백인으로 위장하여 흑인을 멸시하는 백인 존 벨루와 가정을 꾸립니다.

 백인에 가까운 외모를 가진 두 명의 혼혈 여성이 자신의 주변 환경에 따라 삶의 궤적이 이렇게 달라진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길수록 제 머릿속에서 아이린은 흑인의 외모로, 클레어는 백인의 외모로 조금씩 바껴가는 겁니다.

 스스로도 눈치 못채게 말이죠.

 그러다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고 다시 책을 처음부터 읽었습니다.

 그때서야 제가 할렘가에서 생활하는 아이린은 흑인으로, 백인 남편과 사는 클레어는 백인으로 생각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토론 시간에 이 말을 했더니 지도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인간은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그룹화 한다고 말이죠.

 남자인지 여자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서양인인지 동양인인지 등등

 그리고 이렇게 명확하게 그룹화가 되지 않는 대상에 대해 불편함과 적대감을 느낀다고요.

 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제 안에 있는 편견과 마주한 것이죠.

 그리고 발표하는 순간에도 눈치채지 못한 또 하나의 제 모습이 있었습니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클레어는 백인 남편에게 흑인이라는 정체를 들키고 창문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이 클레어의 죽음 부분이 자기 남편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의심하는 아이린이 그녀를 살해한 건지, 클레어가 자살을 선택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놀란 클레어가 뒷걸음질치다 사고로 떨어져 죽은 것인지 모호하게 처리되고 있습니다.

 저는 클레어가 자살을 선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흑인 세계에도, 백인 세계에도 돌아갈 수 없는 그녀가 유일하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선택은 자살을 통해 자유를 찾는 길 밖에 없었다고 말이죠.

 지도교수님은 자살을 선택의 문제라고 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다음날 산책길에 사색해 보았습니다.

 나는 왜 자살을 자유라고 표현했을까?

 자살은 사실 타의적 압력으로 벼랑에서 떨어지는 거라는 것을 피부로 느껴봤으면서 왜?

 그것은 복합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먼저 문학작품에서 죽음이 상징하는 바가 영혼의 자유라고 해석하는 것에 제가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

 그리고 개인적으로 클레어가 그 장소(할렘가 흑인 파티에서 남편이 들이닥침)에서 그녀를 이질시 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으로 그녀의 정체성을 보여주길 원했다는 것,

 남은 사람들이 그녀 죽음에 상처 받고 무언가 깨닫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개인의 욕망을 클레어라는 인물을 통해 이루길 바랬던 것이죠.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만은 아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발표한 분들 중에 몇 분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습니다.


 첫번째 분은 한국의 평범한 50대 가정주부였습니다.

 그 분이 스스로 조선족이라고 밝히기 전까지는 말이죠.

 한국에서 25년 정도 생활한 그 분은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의 조부모는 충청도 분들이지만, 그 분의 부모와 그분은 중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어릴 때 학습한 문화적 감수성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클레어가 아이린이 자신을 반기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통해 계속 흑인 할렘가 파티에 참석하고 싶어했던 부분이 많이 공감간다고 했습니다.


 두번째 분은 20대 젊은 여자분이었습니다.

 숏컷 헤어스타일에 중성적인 외모와 목소리를 가진 그분은 학교다닐 때부터 겪었던 고충을 들려주었습니다.

 남녀 공학에 다닐 때 화장실만 가도 친구들이 남자로 착각해서 소리 지르곤 했다고요.

 성 정체성에 대해 무례한 질문도 받아보고, 반대로 성 소수자 친구들이 편하게 접근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숏컷이 유행하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반에 숏컷 친구가 적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성별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지도 교수님도 처음에 그 분의 성별에 대해 헷갈렸다고 고백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에는 이런 문화적 배경들이 적지 않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 번째 분은 70대 아버지였습니다.

 그분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클레어의 남편인 존 벨루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인종에 대한 차별은 그 시대에는 보편적인 것이었고, 그녀 남편은 자수성가한 은행가로 가정을 잘 돌본 성실한 가장이었는데 클레어가 인종을 속이고 결혼 사기를 저질렀다고 말이죠.

 오독의 즐거움이 이런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여자인 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색다른 시각이었거든요.

 그러면서 아이린의 남편인 브라이언의 시점에서도 다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가봐도 흑인인 그는 그 당시 미국 흑인들에게는 인종 차별이 덜 하다고 알려진 브라질로 이민가는 걸 원했으나 아내 아이린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접은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는 아이린에게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이린이 의심한 것처럼 정말 클레어에게 사심이 있었을까?

 

 여럿이 함께 읽으니 이토록 생각이 확장되며 다른 시각으로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을 들여다 봅니다.

 이것이 소설이 주는 재미이며, 소설이 추구하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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