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에도 준비물이 필요하다.
바로 운동을 할 수 있는 몸이다.
몸이 건강하려고 하는 게 운동인데 어떻게 몸이 준비물일까 싶을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의지가 없을 뿐이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할 수 있는 게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라는 말에는 한계 없는 무한한 시간이 담겨 있다.
그래서 운동을 미뤘다.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무한하니까.
운동은 늘 시간이 부족한 일에게 시간을 양보했다.
그런데 한 번 몸에 지속적인 통증이 오니 어떤 운동도 할 수 없었다.
먼저 터진 디스크부터 수습해야 했다.
한의원에서 침과 물리치료를 받으며 생활습관부터 작은 변화를 주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사랑하는 구들장과의 이별이었다.
어릴 때 몇 년 침대 생활했던 것을 빼고 항상 뜨끈한 요 위에서 몸을 지지며 자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이제는 요 위에 허리를 숙이고 눕는 그 짧은 동작마저 부담스러웠다.
집 근처에 매트리스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을 방문했다.
"허리디스크에 편안한 매트리스가 있을까요?"
"아, 고객님도 허리디스크시군요. 저는 허리 뼈가 남들보다 하나 적거든요.
그래서 디스크가 있는데 제 경험으로는 좀 하드한 매트리스가 좋더라고요."
직원분의 말에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정형외과에서 생애 처음 MRI를 촬영하고 알게 된 내 몸의 비밀은 허리 뼈가 하나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천적으로 허리에 무리가 더 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허리 뼈가 하나 부족하거나 하나 많은 건 생각보다 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왠지 그냥 위로하는 말로 들렸다.
그런데 처음 방문한 침대 매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나와 같이 허리 뼈 하나가 부족하다 말하니 몇 억 광년 떨어진 외계에서 같은 지구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어떻게 디스크를 관리하고 계세요?"
"운동해서 근력 키우고, 체중 줄이고, 그 방법 밖에 없어요."
담백한 직원분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직원분의 추천은 큰 도움이 되었다.
허리디스크에는 소프트한 매트리스보다 하드한 매트리스가 허리를 받쳐주어 한결 편안했다.
나는 모처럼 매트리스 위에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따로 책상에서 식사를 하며 재활을 위한 간단한 의자 운동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씩 통증 있는 몸에 적응하며 체념하는 법도 배웠다.
신호등이 바껴도 이삼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면 다음 신호를 기다렸고, 가능한 천천히 걸었다.
약속 시간도 어느 순간부터 삼십분씩 일찍 나갔다.
처음으로 노화라는 단어가 가깝게 느껴졌다.
이렇게 남은 삶동안 계속 통증이 지속되며 몸이 쇠퇴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정신이 미쳤을 때는 그래도 건강한 몸이 있으니 버틸 수 있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신이 돌아오니 건강하다 생각했던 몸이 고장나 버렸다.
삶의 중심을 잃고 계속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기우뚱거리다 보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나는 멀미가 날 때처럼 몸을 편안히 하고, 통증을 신경쓰지 않으며 일상을 보내려 노력했다.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몸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오늘은 10KM를 달리고 왔다.
며칠 전부터 코스를 짜고, 준비물을 챙기며 소풍가는 아이처럼 들떴다.
목적지는 옆 동네에 있는 수목원이었다.
수목원 도서관에서 하는 문화 탐방에 신청했는데 관련한 정보를 적으러 가야했다.
당연히 버스를 타거나 차를 가지고 갔을 장소를 이제는 뛰어서 간다.
폐기찻길의 선로를 따라 겅중겅중 뛰다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남들 보다 배는 느린 속도로 뛰면서도 조바심이나 창피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다시 달리고 있다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