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하다 못해 친숙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숱하게 많은 문학과 영상매체 등을 통해 마녀의 이야기를 접한다.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건네고 라푼젤을 탑 안에 가두며, 오로라 공주를 영원한 잠에 빠지게 하는 등 이 프로패셔널한 악당들은 참으로 공사다망하다. 이처럼 우리 주변의 수 많은 이야기는 마녀에 대한 어떤 확고한, 통일된 이미지를 제시해 왔다.
동화 속에 나타난 수많은 마녀들을 떠올려보라. 그들은 대개 늙고 사악한 여인들로, 검은 고양이를 기르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상상하기 힘든 재료로 스프를 끓인다. 이들은 대개 자신의 욕망을 해갈하기 위해 선량하고 무고한 주인공들을 끔찍한 주술로 희생시킨다. 전형적인 악역이다. 그리고 결국, 정의롭고 용감한 주인공의 손에 최후를 맞이 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어떤 상황 혹은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는 주체(전형적인 anti-hero)로써,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고자 하는 주인공(대개는 전형적인 선인(善人)이다.)에 의해 제거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Vinegar Tom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희곡에는 이러한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의할 만한 것은, 시종일관 화자되는 마녀사냥과 마녀 색출법, 그리고 마녀에 대한 소문들 등은 있으나 정작 가장 중심적이어야 할 ‘마녀’는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마녀로 내몰린’ 여인들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녀라고 명명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보잘 것 없다. 단지 가부장사회의 ‘정석적인 여인의 틀’을 벗어난 사람들일 뿐이다.
정말로 마녀다운 면모를 갖춘 것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여인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여인들을 마녀로 내몬 사람들, 즉, 가부장 사회의 남성과 그런 사회에 순응하고 의탁하면서 자기네들의 형편이 ‘마녀로 내몰리는’ 여인들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여성들이다.
이들은 마녀에 대항하고 또 마녀를 색출해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잭과 마저리 부부는 마녀의 저주를 풀기 위해 산 송아지를 불태우고, 또 마녀를 유인하기 위해 오줌을 끓여 악취를 낸다. 한편 마녀사냥꾼들은 마녀 용의자들 중에서 진짜 마녀를 가려내기 위한 방법으로, 바늘로 피가 나지 않는 부분을 찾을 때까지 여인들의 살을 찌르는 등의 끔찍한 고문을 자행한다. 결국 그들은 조운과 엘렌이라는 무고한 여인 둘을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 넣고, 나머지 여인들의 가슴에는 평생 회복되지 못할 것이 분명한, 참혹한 트라우마를 새겨 넣는다. 이들 남성은 정의와 신앙의 이름으로 혼란의 주범인 마녀를 처단하겠노라 외쳤으나 정작 가장 '마녀적인' 행위를 일삼는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이다. 끔찍한 아이러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역시 나타난다. 제 21장에서 마녀 색출 방법서인 “말레우스 말레피까룸”*의 저자인 스프렝거와 크래머는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은 불완전한 동물이므로 비이성적이며 색욕적'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희곡에서뿐만 아니라 당시의 남성들이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관념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주장에 따르자면 남성들은 비이성적이거나 색욕적이지 않은 ‘완벽한’ 존재여야만 한다. 그러나 희곡에 나타나는 남성들의 행태는 그다지 이상적이지 않다. 알리스의 애인인 ‘남자’는 자신과 내통했던 그녀를 마녀, 창녀, 매춘부라고 명명하며 그녀를 멸시한다. 자신도 그 내통의 주체였음에도 말이다! 또 잭은 부인인 마저리가 있음에도 알리스에게 자신과 관계를 맺어달라고 넌지시 부탁한다. 부탁이 좌절되자 “너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난 가난뱅이가 아냐.”라며 경제적 원조를 빌미로 으름장을 놓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색욕의 동물이라 명명했던 여성과 다를 바가 없다.
또 한편으로, 엘렌과 남자의사의 예를 꼽을 수 있다. 두 사람은 모두 환자를 치유하는 역할을 도맡으나, 그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엘렌이 다정하게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약초를 처방해주거나 합당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상담가이자 치료사 역할을 하는 반면, 의사는 환자의 의견은 묵살하고 그의 지식을 강요한다. 그가 치료 명목으로 베티를 묶어놓고 피를 뽑는 장면은 엘렌의 상담 장면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원시적이고 비이성적이다. 그러나 권위 있는 사람으로 존경을 사는 의사와는 다르게 엘렌은 마녀로 지목당하여 처형당하고 만다.
이 밖에 잭이 그의 부인을 대하는 천박한 방식이나 마녀사냥꾼인 펙커가 ‘마녀’들을 대하는 야만적인 태도는 그들이 말하는 '완벽한 존재로서의 남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야기 속의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대단히 우월하거나 이성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도리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여성이 더 뛰어난 구석이 있다! 이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마녀'라는 색안경을 통해 여성들을 쉽사리 재단하고 폄하한다. 그 과정에서, 사려 깊은 이웃과 현명한 치료사, 그리고 인간성을 잃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토록 여성혐오적인 이중잣대를 끌어안게 된 것일까? 이는 그들이 살아가던,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부장사회에 기인한다. 남성만이 권력을 가지는 사회에서 사회적 강자인 남성들은 그들의 구미에 맞는 규범을 만들어냈고, 이러한 규범 안에는 (남성에게) 이상적인 여성상 역시 포함되어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상적인 여성이란, 젊고 아름다우며 (남성에게) 순종적인 여성으로서, 적절한 성욕 분출대상이자 아이를 생산해주는 매개, 또 가사 일을 비롯한 각종 노동에 대한 노동력을 제공해줌과 동시에 필요에 따라서는 분풀이의 대상까지 되는 존재를 말한다. 즉,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주체성과 자유의지와 같은 인간 본연의 가치라기보다는 그저 육체, ‘껍데기’에 국한되는 것이다.
조운, 알리스, 엘렌, 수잔, 베티 등의 여인들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제각각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거나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손쉽게 비난할만한 대상이 되었다. 17세기의 혼란스러운 영국 사회(전쟁, 종교적 위기와 경제적 위기 등)에서, 이들은 모든 혼란의 원흉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렇듯 마녀사냥이란 대규모 여성억압의 역사며, 마녀란 이러한 억압받은 여성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희곡을 읽는 내내 어떤 기시감이 든다는 점이다. 한 번 자문해보자. 왜? 어째서 이러한 여성억압사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이러한 여성 억압과 차별, 그리고 혐오는 21세기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잔존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형태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여자는 이래야지!’라는 고전적인(가부장적인) 여성성에 대한 강요를 받고 있지 않았던가? 여성인권이 상당히 신장되었다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독신녀'와 '이혼녀' 등에 대한 태도는 냉랭하고, 가난한 나라에서부터 부유한 나라로 팔리듯이 시집가는 여성들이 비일비재하다.
작가 카릴 처칠은 「Vinegar Tom」에서의 배우의 대사, 씬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노래, 여러 장면 등의 장치들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17세기 영국의 역사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게끔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씨앗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Vinegar Tom」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때론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하나의 예술이 사람의 마음과 의식을 움직이게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 말레우스 말레피까룸(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이 책은 15세기 후반에 쓰인 책으로 이후 2세기가 넘도록 마녀사냥의 성서 역할을 했었는데, 이를 통해 6만 명이 넘는 ‘마녀’들이 살해 당했다. 이는 이 책이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 미루어보아 당시의 많은 사람들(특히 남성들)이 이 책의 내용에 동조했으리란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