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는 왜 혁명가가 되었나?

뮤지컬 <하데스타운> 관람 후기

by 토리

* 이 글은 뮤지컬 <하데스타운>에 대한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관람 예정이신 분께서는 다 보고 나서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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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뮤지컬 티켓을 구매했다. 한바탕 바쁘고 정신없던 시기에 그 바쁨을 어떻게 해서든 해소하고 싶었고, 마우스 위의 손가락은 그 와중에 자유분방했던 까닭이다. 어떤 작품을 볼 지 고를 것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보라고, 보라고 그렇게나 외치던 작품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하데스타운>이었다. 그러니 보는 수밖에. 어쩌면 나도 정신 없는 톱니바퀴 속의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이상의 세계로 몸을 담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미있었다. 어떤 점이 그랬냐면, 오르페우스와 하데스의 관계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면모를 엿보고, 오르페우스의 노래에서 혁명의 불씨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면서 그것에 대한 필자의 두서 없는 해석을 늘어 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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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길어지고 모두가 굶주리며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순수를 노래하는 청년, 오르페우스. 사람을 더는 믿지 않던 에우리디케를 감화시키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너무 굶주린 그녀는 악덕 자본가인 하데스의 손에 이끌려 불공정 계약을 맻고 만다. 그녀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녀를 그렇게 하게끔 만들엇기 때문이다. 에우리디케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오르페우스가 내세운 가치인 순수를 사랑하나 배를 곯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순수는 그녀를 배불리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하데스타운으로 향하고 만다. 순수를 등진다.


하데스는 자본가다. 그 또한 이상을 부르짖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봄의 정원에서 페르세포네에게 사랑에 빠지던 시절이 그랬으리라. 그러나 그는 봄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봄의 여신이 저승을 따분해 할수록 그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저승을 지상과 같이 꾸미려 애쓴다. 톱니와 증기, 그리고 그것을 두들기고 돌리는 인간 영혼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는 행여나 자신이 만들어낸 어떤 자유를 빼앗길까 두려워 벽을 세운다. 지상과 저승을 잇는 열차는 그 오가는 간격이 점점 짧아진다. 순수는 인위와 집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결국 저승의 왕이 사랑하던 봄은 점차 그에게서 멀어진다. 여신은 그에게 배금주의적인 자본가가 되어버린 자신의 남편에 신물을 느낀다. 그 철과 증기의 세계에서 여신을 위로했던 것은 오직 한 잔 술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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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틀에서 본다면 결국 지상의 고통-기나긴 겨울-을 야기한 것은 다름 아닌 하데스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서 봄을 빼앗아갔다. 봄은 순수의 계절이다. 자유와 무질서, 그리고 풍요의 계절이다. 그것은 어떤 인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과 인간 본성에 몸을 내맡길 때 비로소 얻어진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벽을 치고 가두려고 들면 들수록 그것을 잃게 된다는 소리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살아가는 현실은 바로 이러한 상실의 시대이다. 오르페우스가 노래하는 사랑과 순수, 혹은 인간 본성으로서의 회귀는 분명히 매혹적이지만 이미 봄이 부재한 세계에서 배곯지 않게 할 수는 없으며, 사랑하는 연인을 지켜낼 수 있을만큼 견고하지도 않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누군가는 굶주리고 또 누군가는 저승의 세계로 길을 떠난다. 아주 더디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결국 오르페우스는 이상을 부르짖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


이상을 노래하다 사랑을 잃은 이 청년은 어리석은가? 글쎄, 그럴지도 모른다. 가장 아끼는 것을 곁에 두고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우리가 몰두하는 무언가에 의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잊어버리곤 한다. 그것은 심지어 신인 하데스조차 마찬가지였지 않나. 그러므로 우리는 오르페우스를 비난할 수 없다. 허물이 없는 자만이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리라.


오르페우스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탁월한 재능이 아니라, 어쩌면 그가 잊은 것을 가장 빨리 깨달은 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상실의 자각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노래한다. 그가 깨달은 사랑과 자유에 대한 노래를. 그가 잊어버렸던 소중함에 대한 노래를. 그 뿐만 아니라 인간과 신 모두가 잊어버린 순수에 대한 노래를. 그것은 그로 하여금 거대한 강과 벽을 넘게 하고, 심지어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마저 감화시켜 그들이 잊었던 사랑을 되찾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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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운명은 잔인하며 인간은 불완전한 법. 그는 잔혹한 저승 신이 내세운 과업을 통과하지 못한다. 연인도 무엇도 함께하지 못하는 그 길을 홀로 걸으면서 그는 두려움과 의심, 좌절에 휩싸인다. 그것은 처절한 고독이고, 가장 순수한 것도 타락시키는 독이다. 마침내 지상에 다다랐을 때 그는 기어코 에우리디케를 되돌아보고 마는 것이다. 하데스와, 에우리디케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 싹 트고 자라나 이윽고 그의 소중한 것을 옭아 맨다. 그는 되찾은 줄 알았던 희망을 도로 빼앗기고 만다. 차디찬 지옥에게!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과업에 실패한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부르는가?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간적인 영웅이 가져다준 성취를 기리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는 가장 인간다웠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잊었던 인간성을 되찾아주었고, 또 가장 인간다웠으므로 그가 가장 아끼는 이를 잃었다. 비록 연인을 잃었지만 그의 사례는 자본의 세계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망각한 이들이 지옥으로부터 걸어나올 수 있는 길을 터 주지 않았나. 오르페우스의 노래 덕분에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에 대한 사랑을 되찾았고, 봄의 여신은 지상으로 나아갔으며, 사람들은 비로소 봄을, 그 순수의 계절을 되찾았다. 고작 한 인간의 노래가 이 모든 것을 야기한 것이다!


순수를 노래하는 한 청년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톱니와 증기의 세계를 세웠지만 그로 하여금 도리어 자유를 잃은 이들을 구원했다. 노예로 살던 이들의 삶을 되찾아주고 그들이 잃었던 봄을 돌려 주었다. 그것은 지극히 숭고하다. 마치 인간 전체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그리스도가 그러했듯이. 그 바보같을 정도로 낭만적이고 순진한 이상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그것은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인간적이고, 얼마쯤의 희망이 되살아날 여지를 남긴다.


우리가 이 슬픈 노래를 언제까지고 다시 부르게 되는 이유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희망이 남았듯이, 언제고 다시금 타오를 이 혁명의 불씨를 기억하기 위함은 아닐까? 무언가 용기와 희망, 이상을 열망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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