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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Feb 25. 2021

왜 우리는 서울로 가는가?

서울살이 몇 핸가요? 00

   엠마 스톤에게 '라라랜드'가 있다면, 한국의 많은 지방 청년들에겐 '서울'이 있다.

어른들은 툭하면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좁아터진 한국 땅에서 그나마 큰 물이라고 할 만한 곳은 서울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처럼 서울로, 서울로 상경한다.


말하자면 서울은 동경과 기회의 땅이다. 숱한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많은 미국인들이 '헐리웃 드림'을 품는다면 한국인들은 '서울 드림'을 품은 셈이다. 우리의 앞날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기꺼이 서울의 작은 방 한 켠을 빌리고 '인서울' 대학에 목숨을 건다. 어떻게든 서울에 적을 남기고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서울과 연을 맻어 무엇이든 얻어보기 위해서. 꿈을 펼치기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그렇다면 서울은 우리에게 왜 그토록 매력적인가?


본격적으로 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겠다. 나 또한 서울이라는 '라라랜드'에 뛰어든 부나방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숱한 지방 청년들과 장시간 토론(이라고 쓰고 '수다 떨었다'고 읽는다.)한 결과를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서울' 그 꿈과 환상의 땅!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매체는 서울을 가리키고 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 라디오 너머의 세상은 십중팔구 서울이다. 텔레비전 채널을 조금만 돌려보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서울 말씨를 한 남녀가 서울 어드매의 길을 거닐며 서울 지리에 대해 논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브라운관 너머의 연인들은 강남에서 커피를 마시고 인기 연예인은 한강에서 치킨을 뜯으며, 내로라하는 가수들은 고척돔에서 노래를 부른다. 실내를 무대로 하는 토크쇼 따위를 보아도 그렇다. 서울에 적을 두고 사는 연예인들은 자연스레 서울 이야길 한다. 그만큼 우리는 거의 매일 같이 서울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방 청년들은 지방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수많은 매체가 그토록 부르짖는 서울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할지언정 마음 깊이 공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신도림 역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게 얼마나 과감한 짓인지 알지 못하고 (자우림의 '일탈') '그대' 없이 홍대, 상수동, 신촌, 이대, 이태원을 걸어 다니는 기분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10cm의 '은하수다방'). 박재상 씨가 백날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고 외쳐봤자 강남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데 그 오빠가 어떤 스타일인지 알게 뭐냔 말이다.


그래서 서울은 더더욱 꿈과 환상의 땅이 된다. 그곳에는 연예인이 살고, 지방에는 없는 찬란한 인프라가 펼쳐져 있다. 가령 각종 공연, 전시라든가, 이색적인 음식점, 고급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들 따위가 그렇다. 요즘에는 사정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서울 시민들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오페라, 발레, 음악회, 뮤지컬, 사진전, 미술 작품 전 등 각종 문화 예술 산업은 지방에서는 여전히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지방 청년들은, 우리는, 우리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을 갖춘 땅에 대한 동경을 키우게 된다.




2. 가라, 그리하면 그 곳에 일자리가 있을지니!


어디 그 뿐인가? 서울은 소위 많은 성공한 사업가들과 '이름 있는' 회사들이 숱하게 밀집한 곳이기도 하다. 많은 회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일자리가 있다는 소리고, 많은 일자리가 있다는 것은 수많은 구직자들이 몰린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서울 인구의 증가를 야기한다. 인구가 많다는 것은 많은 수요가 있다는 뜻이며 많은 수요가 있다는 것은 다시 많은 회사가 설립될 토양이 되고 그것은...(도돌이표)!


...그래서 많은 수험생들은 '인서울'을 고집한다. 서울에 있는 학교를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서울 땅에 발을 디디고 있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그리하면 일자리를 얻을 확률도 올라가니까. 지방으로 돌아간다 손 치더라도 '서울'이 가지는 이름 값을 톡톡히 써먹을 수 있으니까.


당신이 지방 출신이라면, '서울에서 학교/회사 다닌다'는 말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때론 막연한 성공의 지표이자, 실제하지도 않는 가상의 '벼슬'이 된다. 그리고 2023년인 요즘에도 그 벼슬은 꽤 잘 먹혀 들어간다. 이 나라에서 서울이란 도시는, 그 곳에 얼마쯤 적을 두었다는 사실은 그런 것을 의미하므로.


다시말해, 서울은 서울 안에서든, 서울 밖에서든 '돈이 된다'. 돈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기본 조건이므로 이 '서울'이라는 땅은 그만큼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울은 기회와 동경의 땅이다.

그것은 다분히 운명적이다. 신이 아니라 사회가 치밀하게 설계한 지방 청년들의 운명.

그 운명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아서 우리는 서울로, 서울로 향한다.


막연한 '서울 드림'을 안고서.





미리 말하건대, 나는 이 글에서 서울살이하는 지방 청년의 비애라든가, 거지 같은 서울살이에 대한 한탄을 늘어 놓을 생각은 그다지 없다. 그렇다고 또 '환상의 땅 서울'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을 생각이냐면 그 또한 아니다.


나는 다만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 내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나의 지난 몇 년 간의 서울살이를 되짚어 보고, 수 많은 '상경러'들이 경험했을 그 삶의 단편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볼 것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이 시리즈는 대학원 진학부터 초보 한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담을 것이다. 얼마쯤의 자취 이야기라든가, 계약직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서툰 고찰을 담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서울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 시리즈의 제목을 '서울살이 몇핸가요?'로 정하기로 했다.


'서울살이 몇핸가요'는 뮤지컬 <빨래>의 사운드 트랙 중 하나에서 따왔다. 서울에 상경하여 생활하는 많은 인물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 노래의 가사가 2021년 서울을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의 공감과 희망을 안겨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글 역시 그런 힘을 가졌으면 한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을 위해 유튜브 링크를 하나 달아 놓았다.

여러분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기를 빌며..!

https://youtu.be/uskWsTaXg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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