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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Nov 09. 2020

미르의 역사

안녕, 미르마리 02. 미르라는 이름을 가졌던 개들(1)

우리 집에 머물고 갔던 미르라는 이름을 가진 요크셔테리어 강아지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맨 처음에는 미르 1세가 있었고, 그 다음에 다시 또 다른 미르(즉, 미르 2세)가 왔다. 말하자면 두 마리의 서로 다른 요크셔테리어 강아지가 같은 이름을 공유한 셈이다. 이 이야기에는 좀 뻔하지만 또 한참 장황한 사연이 숨어 있다. 우리집에 가장 오래 머물었던 것은 미르 2세였으므로, 바로 그 애의 이야기로 넘어가도 괜찮겠지만, 그 전 미르도 우리에겐 소중한 존재였으므로 여기서는 역대 미르들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자 한다. 말하자면, 미르의 역사인 셈이다.


1. 미르 1세


    아직도 나는 그때 만났던 작고 검은 강아지를 기억한다. 키가 채 130센티도 되지 않던 초등학생이던 나보다도 한참이나 작았던 그 새끼 강아지를. 정말 작고 연약해서 함부로 다루었다가는 큰일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던 그애는 중앙동의 한 펫숍에서 엄마의 다소 계획적이면서도 충동적인 카드 결제를 통해 우리집으로 왔다. 


    엄마는 우리보고 강아지 구경을 가지 않겠느냐고 했고, 아빠 자가용을 타고 강아지를 구경하러 가더니, 얘 우리 데려갈까? 했다. 자, 당신이 동물을 엄청 사랑하는 어린애라고 생각해보라.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당연히 대답은, YES!였다! 


    아빠는 무슨 이런 일을 상의도 없이 결정하느냐고 투덜거렸지만, 잘 돌이켜 생각해보면 강아지를 데려오는 일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전 해에 우리 가족은 모두 알러지 테스트를 통해 개털 알러지가 없다는걸 확인했고,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개집과 개 목걸이, 개 밥그릇 세트를 받았거든. - 산타클로스도 무심하시지! 어린 나는 생각했다. 대관절 선물로 개를 달라고 했는데 개집만 덩그러니 주는 산타가 어디있냔 말이다. 그게 산타의 큰 그림이었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미르 1세가 우리집에서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은 안방이었다. 아기 강아지가 한번에 너무 넓은 공간을 마주하게 되면 겪을 스트레스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약간의 핑계고, 정확히는 조부모님의 눈길을 피해 거기에 숨겨뒀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분들은 옛날 분들이셔서 개와 인간이 한 지붕 아래 산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 구성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개를 분양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엄마는 아마 이대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허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면 평생토록 반려견을 들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방식의 게릴라 입양(?)을 감행하셨으랴. 큰 집으로 이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여섯 식구하고 작은 개 한 마리가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도 하나의 계기였으리라. 

    

    아무튼, 그러한 연유로 미르 1세는 며칠 동안, 할머니가 그 작은 강아지의 짖는 소리를 듣게 되기까지 안방에서 숨어 살다가 조부모님이 집을 비우시면 방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방식을 통해 점차,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이 조그마한 새끼 맹수에게는 귀여움과 앙증맞음이라는 대단한 무기가 있었고, 그가 적의 마음을 함락하기까지는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가족들처럼 물고 빨고 하시진 않으셨지만 어쨌든 집안의 일원으로 받아들여는 주셨다.-. (그러나 이런 입양은 파양 및 유기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무척 위험하다. 옛날 일이니 기록하는 것이지만, 이 방법은 결코 권장될 수 없다. 조부모님이 조금이라도 개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계셨더라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름을 가진 많은 것들이 그렇듯, 미르가 처음부터 미르였던 것은 아니었다. 한창 세일러문을 사랑하던 초딩이었던 나는 다이애나나 루비는 어떻느냐고 했고(세일러문에 나오는 고양이들 이름이다.) 엄마는 그것도 좋지만 기왕 한국에서 살 개라면 순우리말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우리가 부르기도 쉽고, 강아지도 알아듣기 쉬운 이름으로. 나는 조금 고심하다가 동물농장에 나오던 강아지 이름인 '마루'를 떠올렸고, 거기서 획을 하나씩 빼서 '미르'를 떠올렸다. 그렇게 대단한 뜻을 떠올린 게 아니라 그냥 지은 이름이란 소리다. 뭔가 여러 뜻이 의미부여된 건 그 다음이었다. 엄마가 미르를 소개할 때는 미르의 거창한 이름의 뜻에 대한 소개가 빠지지 않았는데, 대충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얘 이름은 미르예요. 그런데 미르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순 우리말로는 '용(龍)'을 의미하고, 러시아말로는 '공동체'를 뜻하며, 일본어로는 '보다(みる)'라는 뜻이랍니다. 이 조그마한 개치곤 참 거창한 이름이죠!"


   이 레파토리는 거짓 하나 덧붙이지 않고, 그로부터 약 16년 간 이어지게 된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미르는 비로소 미르로 불리게 되었다. 벌써 15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그 애는 명랑하고, 사냥 놀이와 공놀이를 좋아했고, 입은 좀 짧은 공주님같은 애였다. 처음 왔을 때는 막 2달을 넘긴 강아지였기 때문에 성견과 달리 세 끼 밥을 챙겨줘야 했는데, 나는 그 핑계로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점심 시간에 미르 밥을 챙겨주러 나오곤 했다. 미르는 창가에 앉아 있다가 내가 도착하면 나를 반겨줬고, 나는 미르 사료를 한 그릇 부어줬고, 그게 한동안 내 점심시간의 일과였다. 비록 미르가 입이 짧아서 밥을 잘 안 먹는 게 서럽기는 했지만 어쨌든 작고 귀여운 내 동생을 만나러 가는 일은 즐거웠고, 남들이 모두 학교에 매여있을 때 개 밥 주러 간다는 핑계로 소소한 일탈을 즐기는 것도 재밌었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런 미르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교통사고였다. 밤산책 중 엄마와 미르가 단둘이 우리 사는 아파트 단지 아래쪽의 횡단보도를 길을 건너는데 택시 한 대가 앞서 나가던 미르를 확인하지 못하고 뺑소니를 친 것이다.


    어느날 아침 엄마는 미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고, 정확히 그 날 오후, 엄마는 굳은 얼굴로 나와 동생방으로 들어와 '얘들아 미르가 죽었대...'하고 운을 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애를 다시는 볼수 없었다.


그것은 아마, 나와 동생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최초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당부의 말씀>

이 글은 약 15년 전을 회상하며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못해 지금으로서는 다소 문제적인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1. 펫숍: 펫숍은 생명을 상품처럼 '공장'에서 '생산'해 '유통'하고 ;진열'하는 곳입니다. 게다가 저 좋을대로 폐기해 버리기까지 하죠. 펫숍에서의 동물 분양은 결코 권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나중에 더 써 볼테지만, 이런 강아지 공장 시스템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은 무척 예민한 성격을 가지게 되거나, 끔찍한 유전병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2. 가족구성원의 동의 없는 분양: 저희 집의 경우 무척 운이 좋게도 너그러운 조부모님 덕택에 갑작스러운 입양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례도 무척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체질적으로 특정 동물과 맞지 않을 수 있고, 혹은 생활 습관 상 반려동물과 살아간다는 것이 힘겨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사는 반려동물 역시 평생을 고통과 불편함 속에서 살아가야겠지요. 혹은 최악의 경우, 파양되거나 유기될테고요. 그러니 부디 많이 알아보시고, 가장 좋은 조건과 환경을 갖추었을 때 반려 동물을 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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