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docs] <숨겨진 편지, 그리고 사랑> 리뷰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으니 관람하지 않으신 분은 읽으실 때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영화리뷰
<숨겨진 편지, 그리고 사랑>
Ultraviolette and the Blood-Spitters Gang
감독: 로뱅 훈징어 Robin Hunzinger
시놉시스:1920년대 중반, 엠마와 마르셀은 학교에서 만나 은밀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르셀이 결핵에 걸리면서 두 소녀는 오랜 이별을 맞이한다. 그로부터 100여 년, 로뱅 훈징어 감독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조용히 간직해 온 편지들을 발견한다. 요양원에 들어간 마르셀이 엠마에게 보낸 편지들. 영화는 다양한 아카이브 영상과 아방가르드 영화, 음악을 합쳐 그 속에 가득한 소녀들의 들끓는 열정과 생명력을 되살린다. (출처: 제14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홈페이지)
리뷰
1.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
우리는 때때로 일탈을 꿈꾼다. 일상이 나를 짓누를 때, 사회가 내 앞길을 가로막거나, 내가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느낄 때, 나의 생이 정체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사회와 일상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고, 우리가 몸 담은 우물 밖으로 도약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물론, 거기까지 가게 되는 여정은 쉽지 않다. 누군가는 그 여정을 시작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설령 일상의 길을 이탈했다고 한들 우리가 꿈꾸어 온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는 감히 보장할 수 없다. 인생이란 언제나 예측불허한 것이며,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불확실의 세계로 기꺼이 발을 내딛곤 한다. 그 일탈이 안겨주는 치열함과 싱그러움을 그리워 마지 않으므로, 그것으로 하여금 비로소 자유를 얻고 싶기 때문에, 혹은 제 몸을 모두 불사를 정도로 열정적인 사랑을 다시금 맛보고 싶어서.
영화 <숨겨진 편지, 그리고 사랑>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수천 통의 편지를 써내려 가며 그 자신의 대담한 일탈을 기록으로 남긴 마르셀과 친구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 옛사랑을 그리워한 젊은이
1925년, 여름. 서로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던 엠마와 마르셀은 각자 다른 진로를 택하게 되면서 서로 다른 삶의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학업을 이어간 엠마와는 달리, 마르셀은 생계 유지를 위해 교사가 되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기는 했으나, 본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마르셀은 그 생활이 갑갑했다. 그래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편지에는 자신의 사랑과 우울과 두려움, 이상이 담겨 있었다.
“우리의 상아탑이 그립다.”
“넌 공부를 하지만 난 진짜 삶을 살아.”
“어른인 내 모습이 상상이 안 돼.”
마르셀이 보낸 아주 많은 편지에서는 어쩌면 엠마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그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가 묻어나는 것 같다. 그 안에는 갓 사회로 나와 좀처럼 갈피잡지 못하는 20대 초반 젊은이가 자리하고 있다. 열정적이고, 미숙하고 불안정한 그 어느 시절, 마르셀은 힘겨워했던 것이다. 특히나 그처럼 꿈 많고 창조적인 영혼을 가진 이에게는 그에게 주어진 현실이 갑갑하기 그지없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대단한 답장이 오지 않는 연애 편지를 써 보내는 입장이라면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런 마르셀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교사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기 시작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은 다시금 그에게 시련을 떠안긴다. 소위 ‘낭만적인 젊은이를 괴롭히는 병’, 결핵에 걸리고 만 것이다.
3. 자외선과 피를 통하는 소녀들
엠마는 마르셀의 병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를 결핵 환자들을 수용해 놓은 요양원으로 보낸다. 지금이야 결핵은 완치가 가능한 병이라지만, 1950년대 전까지만 해도 뾰족한 치료법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무척 치명적인 병이었다. 도스토옙스키나 이상, 김유정 같은 유명한 작가들 역시 모두 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폐가 굳어가는 병은 잠재적 죽음의 다른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창백한 낯으로 병상에 누워 죽음 혹은 회복을 기다리는 바로 그곳에서, 마르셀은 우울하던 것도 잠시, 그는 그 갑갑한 수도원 같은 곳의 한복판에서 비로소 생생해진다. 1928년 여름, 요양원 사람들과의 여름 휴가에서 만난 마르그리트, 비주, 엘렌을 조우하고, 그들과 발랄하고 기상천외한 일탈을 일삼은 것이다! 그들은 병실을 뛰쳐나갔다. 혹은 함께 병실에 모여서 파티를 벌이기도 했고, 그 중 몇과 연애하기도 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피를 토하는 소녀들’로 불렀다. 그리고 그를 주도했던 마르셀의 별명은, 빛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살뜰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자외선’이었다.
자외선과 소녀들은 이후 요양원에서 쫒겨나 저희들끼리 브리앙송의 어느 저택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들은 생사를 가르는 시련-결핵-을 통해 조우했고, 우정을 쌓았고, 사회가 규정한 것이 아닌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았다. 그 당시 사람들의 삶, 특히나 여성들의 삶을 떠올려봤을 때, 그것은 기적 같은 자유였다. 죽음이 눈 앞에 바짝 다가와서야 비로소 얻어진. 혹자가 보기에 그것은 무질서하고 무모한 열정의 결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령 세상이 그들을 긍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곳에도 어김없이 삶은 있었고, ‘자외선과 피를 토하는 소녀들’은 그들의 생의 끝자락에서, 끝없이 닥쳐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온몸으로 밀어내고 저항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4. 자, 이제는 현실로 돌아갈 시간
마르셀이 ‘피를 토하는 소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그는 그가 사랑하던 옛 연인, 엠마와 2차례 조우했다. 한번은 다른 소녀들 모두가 함께하던 때였으며, 다른 한번은 다른 이들은 모두 떠나고 오직 마르셀 한 사람만이 남아있을 때였는데, 그 두 번의 만남 모두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의 종식을 깨달았다. 그들이 그토록 그리워 마지 않던 연인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아직은 같은 길을 걷고 비슷한 생각을 나누던 바로 그 시절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서일지도 모른다. 오랜 단절의 시간은 한때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생각을 나누던 연인을 변하게 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으레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변화무쌍하기 그지 없어서, 서로 비슷하다가도 상이해지고, 이질적이다가도 동질적인 성질의 것으로 변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필자는 이것을 비극으로 보지 않는다. 마르셀이 엠마와의 두 번째 만남 이후 ‘우리 사랑은 재가 되었다’고 말하며 절필 선언을 하게 된 것은, 오히려 그가 오래도록 차마 놓지 못했던 낡은 낭만과 열정을 드디어 떠나 보내고 새롭게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은 비단 나만의 착각일까? 사람마다 감상은 서로 다르기 마련이므로 그것은 다른 감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 후 마르셀은 동성 배우자를 만나 딸을 입양하였고, ‘낙원’이라는 젊은 결핵 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엠마는, 나이가 들어서까지 마르셀이 보낸 수많은 편지들을 소중하게 간직하였다. 그것은 어쩌면,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의 일탈을 추억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관람 포인트>
1. 이 영화는 수천 통의 편지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 당시에 따로 찍어놓은 영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아방가르드 영화 및 영상을 적절하게 끼워 맞추어 감각적인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2.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의 단편을 그리는 다큐멘터리이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920년대의 전반적인 역사적 상황을 간단하게 알아보고 검색하거나,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개인들의 삶이나 행보에 초점을 맞추고 관람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관람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2022.09.23(금) 11:00 메가박스 백석점 3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2일 - 09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