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았지만, 결국 나의 일이 된 것들

정서적 지지 없이 자란 내가 나에게 보여주는 삶의 증거

by 헤더

어렸을 때,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믿어주고,

“괜찮아, 너는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을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을

성인이 된 내가 나에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나는 ‘좋아서’ 시작한 일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늘 뭔가를 ‘해야만 했기 때문에’ 시작했다.

샤워하러 가기도 힘겨웠던 어느 우울한 날,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일을 시작했다.

즐거움보단

그냥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어느새,

나는 사진을 찍고 편집을 하고,

스스로를 설명하는 자막을 붙이고,

글을 쓰고, 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처음엔 너무 어색해서

음식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불편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원래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다.

운 좋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주변엔 외국에서 자란 친구들과

2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동기들이 많았다.


나는 영한사전, 한영사전, 영영사전 세 권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필사적으로 따라잡아야 했다.

왜냐면

돌아갈 집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라잡았고,

결국 영어를 조금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감이 없어 주눅 들고,

누군가 앞에 서는 게 무서웠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기에 시작했고,

조금씩 감이 생기고,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애정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일들이

내 삶에 반복해서 일어났다.


처음엔 어색했고,

싫었고,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던 일들이

나만의 리듬으로 익숙해지기까지.


그리고 나중엔

조금 좋아지기까지.


그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 받지 못했던 정서적 지지를

나 스스로에게 증명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무도 나를 칭찬해주지 않았던 순간들마다

실은 나는 나를 지켜내고 있었음을

조용히 인정하고 싶은 마음.



나는 좋아하는 것을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익숙해진 뒤에야

그것을 좋아하게 되는 사람.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시간이 걸려도 안다.

나는 결국,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조금씩 익숙하게 만들어 가며

나를 지지하며 살아가고 싶다.


“괜찮아, 이건 처음이니까.

조금만 더 해보자.”


그 말을

내가 나에게 계속 들려주며 살아가고 싶다.


☁️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당신은 어떤 일을 억지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좋아하게 되었나요?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나를 닮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당신도 스스로에게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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