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내 목소리를 찾습니다.

요가 티칭 - 염소 목소리 탈출기, 그리고 비슈다 차크라

by 헤더

내겐 너무 뻣뻣한 당신, '남편, 요가할래?'


급하게 우스트라아사나(낙타 자세)를 피크 포즈로 하는 15분짜리 시퀀스를 짰다.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예전 필라테스 시퀀스를 짜던 요령으로 후다닥 구성을 마친 후, TV를 보고 있던 남편을 불렀다.


"잠깐 데모 좀 도와줄 수 있어? 오빠가 회원이야."

"어?… 응…"

그렇게 신나 보이진 않지만, 이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평소 동경하던 요가 선생님들의 톤을 떠올리며 입을 뗐다.


"자, 자리에 편하게 앉아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힘을 들이지 않은 듯 자연스럽고 차분한 목소리. 나도 어렴풋이 그들을 흉내 내보았다. 평소 경상도 억양이 살아있어 매력이라 생각했던 친근감과 너스레는 잠시 접어두고, 너무 들뜨지 않게 '선생님스러운' 분위기를 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동작을 이어가던 남편이 갑자기 아무런 반응 없이 멀뚱히 앉아 있는다.


"어디 불편한 데 있으신가요?"

"전체가 불편해요.ㅎ.."

"아, 그러시구나… (무시) 자, 다음 양팔을 옆으로 뻗습니다."


역시 출퇴근을 운동 삼아 사는 사무직 직장인의 몸은 많이 굳어 있다. 아주 초보자에 맞춘 시퀀스인데도 남편의 몸은 주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몸 전체가 불편하다"는 남편의 두루뭉술한 불평을 들으며, 나는 묘하게 용기를 얻었다.


'그래, 실제로 현장에 나가면 생각보다 몸을 잘 쓰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거야. 몸에 대한 감각이 두루뭉술한 것도 당연해. 하지만 그건 차차 일깨워질 부분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머리 서기를 못 한다고 주눅 들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정말 긍정적이란 말이야. 비록 준비한 시퀀스는 반도 진행하지 못하고 끝났지만, 내일 만날 동기 선생님들에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테니 오히려 티칭이 쉬울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마저 생겼다.


염소 목소리의 귀환


다음 날, 내가 만든 시퀀스로 원장님께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되었다. 짝꿍에게만 조용히 연습하는 줄 알았는데, 아뿔싸. 한 명이 앞에 나와 4~5명의 동기들에게 실제로 수업하듯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시끌시끌한 분위기 속에 묻혀 짝꿍에게만 속삭이는 것과, 모두가 나만 바라보는 앞에서 티칭하는 건 천지 차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난 지도자 교육 과정이 이번이 두 번째니까. 이런 걸로 쫄아 있을 수만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선생님의 피크 포즈는 뭐죠?"

"저, 우스트라아사나요."


드디어 내 차례. 건너편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는 5명의 동기 선생님들과 눈을 맞췄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선생님들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할 순 없었지만, 부디 너그럽게 봐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눈빛으로 보냈다.

"…양 뒤꿈치 회음부 앞에 모아, 편안하게 앉은 자세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수카아사나. 먼저 호흡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어젯밤 남편 앞에서 했던 것처럼 차분하고 우아한 선생님을 흉내 내보려 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염소처럼 가늘게 떨리고 말았다.


'아니, 아직도 이런 걸로 떨다니. 나 참.'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지만, 나만 아는 수치심이겠거니 생각하며 티칭을 이어갔다. 다행히 동기 선생님들은 내 떨리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작을 이어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나'대로 하자


앉은 자세에서 네발 기기 자세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결심했다. '우아한 척'은 포기하자. 대신 3년 차 크리에이터의 '짬'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평소 인스타 라방을 하듯, 혹은 친구에게 설명하듯 힘을 뺀 말투가 툭 튀어나왔다.


"자, 다음은 저를 좀 보고 하실게요. 무릎으로 선 다음, 뒤꿈치가 낭창낭창하지 않게 (feat. 경상도 억양) 발가락 전체 써서 바닥을 꾹 누르기! 자, 다 같이 한 번 해볼게요."


'낭창낭창'이라는 뜬금없는 표현 때문이었을까? 선생님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굳어있던 표정이 살짝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보여주는 뒤꿈치에 집중하는 눈빛들을 보자 자신감이 붙었다. 그동안 요가 크리에이터로서 소통하고, 라방으로 수다를 떨던 경험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에이. 연습을 안했다구요?


"자, 여기까지 보겠습니다."


첫 공식 티칭 데모가 끝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원장님의 질문이 훅 들어왔다.


"연습은 얼마나 하셨어요?"


순간 당황했다. 연습이라곤 어젯밤 남편을 엎어놓고 10분 끄적거린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연습이요…? 그닥 안 했…습니다…;;"

"안 했는데 이럴 리가? 너무 자연스러운데요? 예전에 강사 일을 하셨어서 그런가요?"

"아… 이 시퀀스는 연습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는데, 남편을 엎어놓고 종종 입을 떼봐요… 하핫."


원장님은 "입 떼보는 것 자체가 큰 연습"이라고 하셨다. 동작의 연결성도 좋고, 흐름을 이어나가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였다는 피드백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얼떨떨했다. 혹시나 해서 원장님께 다시 여쭤봤다. 뭔가 부족한 점을 들어야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오늘 내가 별말 안 했다는 건, 정말 괜찮아서예요 쌤! 지금 당장 수업 나가도 될 것 같던데요?"


그럴 리가 있나? 의아함과 동시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내가 잘한 건 '완벽한 티칭'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티칭'이었을까? 남의 목소리, 차분하고 성스러운 베테랑 강사의 톤을 흉내 내지 않고, 조금 버벅거리더라도 솔직하고 친근한 내 목소리를 냈을 때 비로소 '프로'다워질 수 있는 건 아닐지, 감히 짐작해본다.


내 목소리가 곧 나의 경쟁력


가끔 나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예전의 영어 강사 경력, 필라테스 강사 경험이 다 어디로 갔나 싶어 자책하곤 했다. 하지만 늘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필라테스와 요가를 통해 몸을 움직이고 현장에서 티칭을 해보며 배운 지혜다.

요가에는 목구멍에 위치한 에너지 센터, '비슈다 차크라(Vishuddha Chakra)'가 있다고 한다. 이는 '진실된 소통'과 '표현'을 관장한다. 아까 내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렸던 건, 어쩌면 내 안의 비슈다 차크라가 보내는 경고였을지도 모른다.


"그거 네 목소리 아니잖아, 흉내 내지 마!"


우아하고 성스러운 요가 선생님의 톤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뒤꿈치가 낭창낭창하지 않게!"를 외치던 그 순간의 목소리는 분명 가장 '나다운' 소리였다. 3년 차 크리에이터의 너스레와 필라테스 강사의 쪼가 섞인,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목소리.


과거의 경험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내 목소리의 결을 만드는 겹겹의 나이테가 되어주고 있었다. 나는 이제 남의 흉내는 그만두기로 했다. 나의 투박하지만 솔직한 목소리가, 누군가의 굳은 몸과 마음을 두드리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및 다음 화 예고]

나만의 목소리를 찾으며 한껏 고무되었던 기분도 잠시, 진짜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음 주, 저는 동기들 앞에서 진짜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대본 없이, 오직 눈앞의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 티칭 테스트. 과연 저는 긴장감 속에서도 '나다운 티칭'을 해낼 수 있을까요?


다음 화, <21화. 암기한 대본을 버리기 - 가제>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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