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로 입금 알림이 울린 날

180만 뷰보다 짜릿한 '가치'의 정산

by 헤더

띵동, 자존감이 입금되었습니다


"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바로 입금해 드릴게요!"


스마트폰 화면에 뜬 입금 알림. 내가 먼저 제안했던 콘텐츠 대행 일의 정산금이었다. 큰 금액은 아닐지라도, 남편의 월급에 기대거나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까먹던 '마이너스 인생'에서, 내 힘으로 만들어낸 '플러스'의 순간이었다.


지난 3년간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협업과 광고, 숙소 지원, 출판 제안까지 과분한 기회들이 찾아왔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온라인 세상에 나를 드러낸 덕분에, 세상은 이런 나의 존재를 알아봐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갈증이 느껴졌다. 언제까지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려야 할까? '내 것'이 없다는 불안감은 나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곤 했다. 남들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말고, 내가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며 정당한 대가를 받는 일. 나는 그렇게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그 갈증이 조금은 해소된 기분이다. 내가 기획한 솔루션이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했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은 단순한 수익이 아니라 내 효능감을 증명한 것 같았으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밝히면 안 되나요?


프리랜서 강사로 10년을 살며 뼈저리게 배운 것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일을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


처음엔 나도 사명감 하나로 불타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의 성적과 정서가 나아지는 것, 회원님들의 몸이 건강해지는 것 자체가 보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스스로 '착한 선생님'이 되기를 자처하며 저렴한 수업료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여기에 뼛속 깊은 자격지심도 한몫했다. 수강생들의 피드백과는 상관없이, 나는 늘 나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발음이 좋고, 학부모와 살갑게 소통하는 다른 선생님들과 끊임없이 나를 비교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남들이 어렵게 번 돈을 다 받아도 되나?' 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낮은 자존감이, 결국 내 노동에 헐값의 가격표를 붙이게 만든 셈이다. 타인의 지갑을 걱정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내가 수업 준비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는 그대로였지만, '착하고 책임감 있는 선생님'이라는 소문이 날수록 내 스케줄은 괴로운 수업들로 채워졌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학부모, 시간 약속을 어기는 학생들. 자기 검열과 번아웃 사이를 오가다 보니 일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라는 자조 섞인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그때 깨달았다. '착한 강사'보다 필요한 건 '선이 있는 강사'라는 것을.

사명감과 보람은 일을 시작하게 만드는 불꽃이 될 수는 있지만,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계속 불의 힘을 유지하게 하는 '장작'이었다.

그 후 나는 과감하게 방식을 바꿨다. 터무니없이 수업료를 깎으려는 제안은 정중히 거절했고,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수업은 과감히 정리했다. 처음엔 "이러다 밥줄 끊기는 거 아냐?"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기우였다. 2달 정도가 지나자 비워진 자리는 전보다 더 높은 수업료를 인정해 주는, 나와 결이 맞는 학생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필라테스 강사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초보 강사치고 수업 많이 주는 거 알지?"라며 열정 페이를 강요하던 원장님 앞에서, 나는 동료들이 침묵할 때 홀로 계약서 작성과 정당한 시급 인상을 요구했다. 누군가는 나를 별종이라 했을지 모르지만, 내 인생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과 시간뿐이라는 걸 알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요가 업계에 와보니, 묘한 기시감이 든다. 실력이 뛰어난 선생님들이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거나 "아직은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며 턱없이 낮은 대우를 감내한다. 마치 요가와 돈은 섞이면 안 되는 물과 기름인 것처럼.


하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돈을 밝히는 게 아니라, '가치'를 밝히는 것이라고.


크리에이터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광고나 대행 제안이 들어올 때, 가격을 제시하는 순간이 여전히 떨리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내 노동과 경험의 가치를 시장 가격에 맞춰 합리적으로 산정했는지에 대한 고민 쪽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사람과는 일하고 싶지 않다. 여전히 누군가의 선택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나 또한 선택할 권리가 있는 '프로 크리에이터'이니까.


180만 뷰는 밥을 먹여주지 않지만.


불행히도 180만, 80만 조회수의 릴스들은 조회수가 높다고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유튜브처럼 조회수 수익이 나오는 시스템에서 나는 간택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좌절하는 대신, 꾸준한 콘텐츠 업로드를 통해 나의 성실함을 증명했다. 나를 설명하는 분명한 키워드와 강점을 어필하고, 이를 바탕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쌓아 올렸을 때 비로소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 콘텐츠 대행도 마찬가지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는 단순한 일기장이 아니라, 내 콘텐츠의 결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포트폴리오였다. 성장하는 모습 그 자체가 신뢰가 되었는지, 평소 내 계정과 꾸준히 소통하던 선생님은 나의 제안을 선뜻 받아주었다.


브랜드가 필요한 기획과 시간, 요가원과 강사들이 브랜딩을 위해 쏟아야 할 에너지를 내 콘텐츠로 대신 해결해 주었을 때, 그것은 비로소 '수익'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쌓아 올린 콘텐츠에는 지난 3년의 실패와 성공, 실력과 안목이 모두 녹아있다. 그러니 내가 받는 돈은 단순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상대방이 나에게 신뢰는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역시 이전의 거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외할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문을 닫았기에,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진짜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다.

나는야, 프로 1인 기업가


올해 콘텐츠로 번 수익 중 일부를 떼어 남편에게 생일 선물을 했다. 3년 차가 되어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은 구멍 난 가계를 메우거나 미래를 위해 아끼기 바빴는데, 이렇게 온전히 내 능력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챙길 수 있다니. 가슴 한편이 묵직하게 차올랐다.


콘텐츠는 나에게 치유이자 기쁨이었다. 우울증을 앓던 시절, 나를 살린 것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던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 기쁨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장작'이 필요했다. 나의 장작은 '나의 가치를 밝히는 일'이었던 것이다.


돈을 받으니 더 잘해주고 싶은 기분 좋은 책임감이 생긴다. 내 콘텐츠에 확신이 생기고, 요가 강사님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아마추어는 즐기는 것으로 족하지만, 프로 크리에이터는 받은 만큼 증명해 내야 하니까.


'주어진 다르마(소명)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으라.'


바가바드기타의 가르침은 여전히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요가 강사님들의 지속 가능한 업을 돕는 것’이라는 지금의 내 다르마는 언젠가 또 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지금 그 과정에 기꺼이 뛰어들고 싶다.


나는 이제 그저 재미삼아 기록하는 ‘방구석 요가러버’를 넘어, 내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가격을 매기는 주체적인 ‘1인 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에필로그 및 다음 화 예고]

입금 알림이 준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드디어 티칭 실습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온라인에선 1.6만 명 앞에서도 떨지 않던 제가, 고작 동기 한 명 앞에서 얼어붙어 염소 소리를 냅니다. 3년 차 크리에이터의 짬은 어디 가고..?

다음 화, <20화. 선생님 흉내는 그만, 내 목소리를 찾습니다-가제>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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