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티칭 시험보기]
오늘은 TTC 티칭 시험을 보는 날이다.
연습이라곤 어젯밤 남편을 엎어놓고 15분 정도 해본 게 전부. 하지만 지난주 데모 때 받았던 칭찬 때문일까, 아니면 "될 대로 되라"는 마음 때문일까. 이번엔 왠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맴돌았다.
아침의 요가원은 묘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선생님 연습 많이 했어요? 나는 많이 못 했어..."
동기들은 저마다 너스레를 떨며 순서를 기다렸다.
"자, 골라보세요!"
원장님이 순번이 적힌 종이를 하늘 높이 던졌다. 나비처럼 흩어지는 종이를 낚아채듯 주워 확인해 보니, 나는 딱 중간 순서.
"제발 앞 순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단 말이야..."
속으로 외쳤지만 어쩔 수 없다. 마지막이 아닌 게 어디냐며 위안을 삼았다.
벽을 따라 앉아있는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문득 예전 필라테스 자격증 시험을 떠올렸다. 그때 우리는 왜 그렇게 날카로웠을까. 서로가 경쟁자라도 되는 양 날 선 눈빛을 주고받고, 누군가의 실수를 보며 안도하거나 비웃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크로스핏 강사, 플라잉 요가 강사, 전 요가 강사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진짜' 전문가들이 모여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엔 따뜻한 응원이 담겨있다.
'그래, 여기서 잘한다고 현장에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삐끗한다고 내 요가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필라테스 강사의 현장에서 많이 보았다. 시험에서 잘 한다고 좋은 강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 시험에서 못한다고 오래 일하는 강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생각으로 너무 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다. 이 한 번의 시험에 목숨 걸지 않기로 했다. 그냥, 하던 대로 하자.
드디어 내 차례.
동기 두 명이 내 앞에 나와 '회원' 역할로 마주 앉았다. 제출한 시퀀스가 짧다는 이유로 나는 유일하게 웜업(Warm-up)부터 시작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혼자 튀는 것 같아 걱정됐지만, 에라 모르겠다.
"매트 중앙에 편안하게 앉아 수업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엉덩이 들썩들썩해서 내 몸의 무게가 균등하게 느껴지는지 확인해 봅니다."
나도 함께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행히 떨리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이 기세를 몰아 앉아서 하는 스트레칭 동작을 이어갔다.
"오른발 뒤로 접어 '인어공주 자세'! 왼팔 길게 뻗어 옆구리를 늘려봅니다. 마시는 숨에 몸을 길게, 내쉬는 숨에는 아래 옆구리로 윗 옆구리를 받쳐 올려봅니다."
어느덧 수업은 중반부. 네발 기기 자세(Table Top)를 취한 동기들의 등을 보니, 날개뼈 사이가 푹 꺼져 있다. 이대로 체중을 실으면 손목이 아플 텐데. 교과서적인 큐잉("손바닥을 밀어내서 윗등을 들어 올리세요")은 이들의 귀에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직관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나는 필라테스 강사였을 때의 경험을 살려, 가장 효과가 좋았던 심상을 사용하기로 했다 (필라테스에서도 이 동작을 많이 한다)
"자, 어깨 아래 손목! 바닥에 장풍을 쏘듯이 밀어내며 윗등을 채워봅니다!"
장풍? 뜬금없는 단어에 주변 동기들이 술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회원역할의 동기는 진짜 손바닥으로 장풍을 쏘듯 바닥을 밀어냈다. 그러자 푹 꺼져있던 날개뼈 사이가 볼록하게 솟아올랐다.
통했다! 내 언어가 그들의 몸에 닿은 것이다.
분위기를 타고 피크 포즈인 코브라 자세(부장가아사나)로 넘어갔다. 상체를 일으키는 동기들의 쇄골이 오그라들었다.
'쇄골은 항상 양옆으로 길게 쓰세요'라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내 입에선 뇌를 거치지 않은 날것의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쇄골은 항시적으로(!) 길게!!"
"풉!"
엄숙했던 시험장에 웃음이 터졌다. '항상'도 아니고 '항시적으로'라니.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내 입에 붙어버린 그 단어가,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튀어나올 줄이야.
하지만 부끄러움도 잠시, 동기들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내 쇄골을 활짝 펴는 게 보였다.
'알아들었으면 된 거 아냐?'
나는 뻔뻔하게 미소를 지으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시험이 끝나고 이어진 원장님의 피드백 시간.
"선생님, '장풍' 이런 표현은 어디서 배운 거예요? 아니면 혼자 생각한 거예요?"
"아, 저 혼자... 하핫."
"그리고 나는 '항시적으로'가 무슨 전문 용어인 줄 알았어. '한시적으로'도 아니고. (웃음)"
원장님은 웃으며 덧붙이셨다.
"근데 이런 의태어나 비유가 선생님만의 확실한 캐릭터가 되네요. 귀에 쏙쏙 박혀요. 요즘은 이런 게 개성이니까 잘 살려보세요. 지금 당장 수업 모집해서 나가도 될 것 같아요!"
3년 만에 남들 앞에서 해본 티칭. 그것도 전문가들 앞에서 '장풍'을 쏘고 '항시적으로'를 외쳤는데, 나에게 있어 최고의 칭찬을 받았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요가 강사의 언어는 고상하고 우아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깨달았다. 요가는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전달'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아듣고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면, '장풍'도 훌륭한 요가 용어가 될 수 있다.
나는 이제 남의 우아한 언어를 흉내 내는 대신, 나의 투박하지만 솔직한 언어로 요가를 번역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사실 TTC 초반만 해도, 나는 다시 강사로 일할 생각이 없었다. 과거 필라테스 센터에서의 고용 불안과 인간관계에 지쳐, 다시는 그 에너지 소모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공통된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부대끼며 나는 나도 모르게 치유받고 있었나 보다.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주고, 엉뚱한 실수에도 "괜찮아, 잘했어"라며 웃어주는 사람들. 따뜻한 눈빛 속에서 나는 다시 꿈꾸게 되었다.
'이 좋은 걸,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상처는 사람에게 받지만, 결국 치유도 사람에게서 온다는 말을 이제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말(티칭)로는 장풍도 쏘고 날아다녔는데,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다음 주는 대망의 '아사나(동작) 시험'이거든요. 머리 서기(시르사아사나), 까마귀 자세(바카사나), 아치 자세(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
이름만 들어도 현기증 나는 고난도 동작들을 10초 이상 유지해야 한다고요? (참고로 저는 아직 머리 서기도 못 하는 예비 강사입니다만...)
과연 저는 제 몸으로 자격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다음 화, <22화. 내 몸이 증명하는 시간-가제>에서 처절한 몸부림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