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방구석. 안녕(Hello), 나의 요가

고치는(Correction) 삶에서 연결하는(Connection) 삶으로

by 헤더

"그런데, 왜 하필 요가야?"


일요일 밤, 지인들과의 줌(Zoom) 모임에서 툭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필라테스 강사였잖아. 그 일도 꽤 좋아했고 잘 맞았는데, 왜 지금은 요가에 더 빠진 거야?"

화면 속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나는 왜 화려한 기구 대신 텅 빈 매트 위를 택했을까. 나는 30대 중반,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과 마음의 병으로 방구석에 멈춰 섰던 때를 기억한다. 몸과 마음을 기계처럼 고쳐서라도 다시 사회로 복귀하고 싶었던 '고장 난 계란 후라이'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진 걸까.


너무 깊은 생각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지금 당장 떠오르는 직관적인 답을 건넸다.


"음... 필라테스는 훈련(Training)이고, 요가는 수련(Practice)이라서. 필라테스는 몸을 기능적으로 교정해 줘서 좋았지만... 요가는 내 몸의 감각과 감정을 계속 관찰하게 하거든. 그게 저한테는 진짜 치유가 되더라고. 그리고 티칭 면에서도, 필라테스는 정렬이나 안전 때문에 끊임없이 지시하고 고쳐줘야 했다면, 요가는 좀 더 포용적인 느낌? 몰아세우지 않아서 저한테 더 매력적인 것 같아."


지인은 내 성향과 잘 맞는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이 꺼진 뒤, 나는 그 대답의 빈 공간을 채우는 진짜 이유를 며칠 전 있었던 수료식의 풍경에서 찾았다.


TTC(지도자 과정)의 마지막 날.


메인 이벤트는 '프로필 촬영'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준비한 예쁜 요가복을 입고 전문 조명 아래 섰다. 난이도 있는 아사나(동작)를 취하는 우리 모습은 제법 그럴싸한 ‘전문 요가 강사’처럼 보였다. 사진 속 우리는 완벽했고, 화려했다. 마치 내가 운영하는 180만 뷰 채널 속의 세상처럼.

하지만 진짜 울림은 카메라 셔터 소리가 멈춘 뒤에 찾아왔다. 촬영을 마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긴장이 풀린 우리는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서로의 눈을 맞추고 웃었다. 화려한 조명은 꺼졌지만, 그곳엔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공기가 채워졌다.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나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두려움을 꺼냈다. 1화의 그 시절, 너무 아파서 세상과 단절되고 싶었던 내가 이제는 타인과 연결되려 하니 생기는 두려움이었다.


"원장님, 강사는 에너지를 늘 주는 입장이잖아요. 저는 누군가 저에게 어려움을 얘기하면 집에 가서도 자꾸 생각나고 마음이 아파요. 공감하는 게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라는 걸 아는데... 앞으로 수많은 회원을 만나면서 어떻게 에너지를 관리해야 할지 겁이 나요."

원장님과 지도자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해 주셨다.


"에너지 관리는 정말 중요해요. 하지만 우리가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는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딱 거기까지만 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빨라서, 강사의 분위기에 맞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는' 법이랍니다."


경계를 세우라는 조언에 안도하던 찰나, 뒷풀이 자리에서 한 동기 선생님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평소 구김살 없고 자존감이 높아 보였던 분이었다.


"저는 오히려 헤더 선생님의 고민을 듣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저는 살면서 깊은 우울감이나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회원들이 마음의 아픔을 이야기했을 때, 제가 깊이 공감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돼요. 마음을 건드리는 위로를 해줄 수 있을지... 요가 강사라면 그런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것도 필요한 건 아닌가 싶어서요."


그 말에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30대 중반, 이유 없이 아파서 침대에만 누워있던 시절. 나는 나의 예민함과 우울, 병약한 몸을 약점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곳, 요가라는 세계에서는 그 아픔의 기억이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며칠 전 남편과의 다툼을 떠올렸다.


타지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남편뿐인 상황에서 느꼈던 깊은 고립감. 그때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 나에게 따뜻한 눈빛으로 '괜찮냐'고 한 번만 물어봐 주길 바랐다.


인스타그램 속 180만 뷰의 나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오프라인의 나는 여전히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건 완벽한 동작 영상이 아니라, "나 사실 오늘 좀 힘들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틈, 그리고 "괜찮아요?"라고 물어봐 주는 ‘진짜 연결’이라는 것을.


필라테스가 비틀어진 몸을 맞추는 '교정(Correction)'이었다면, 내가 선택한 요가는 부서진 마음을 잇는 '연결(Connection)'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몸을 고쳐주는 기술자가 아니라, 그들의 아픈 마음에 공명하는 치유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멈춰있지 않았다. 방구석에서 가장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제 방문을 연다. 화면 속 숫자가 아닌, 내 앞의 사람과 눈을 맞추기 위해.


안녕, 나의 방구석.

그리고

안녕(Hello), 나의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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