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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Jan 24. 2021

내 일상의 중심을 바꿀 때가 되었다.

김윤아 심리상담사의 <또, 먹어버렸습니다>를 읽고.

장기간 당신 일상의 중심이 다이어트였다면, 이제 그 중심을 바꿀 때가 되었다.


김윤아 식이장애 전문 상담사의 <또, 먹어버렸습니다>라는 책을 인스타그램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받았다. 한창 미국에서 먹는 행위에 대한 스트레스로 고통을 겪을 때 식이장애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봤다. 때문에 제목이 아주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여느 식이장애 책에서 하는 그런 비슷한 말이겠지, 하며 큰 기대는 없었다.


책의 처음 반절 정도는 내 예상이 맞았다. 수년간 다이어트와 식이조절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미 접해 봤을 호르몬 이야기, 다른 식이장애 책에서도 꼭 한 번은 다뤄지는 감옥에서 성인 남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 이야기 등등. 저자의 조언도 그다지 새로운 것은 없어서 책의 중간까지는 그냥 스윽 읽었다. 책의 초반에서 중간까지는 우리가 감정을 먹을 것으로 어떻게 푸는지, 그 모습을 잘 묘사해주어 읽는 이로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가끔 저자 본인의 예시를 들 때, 자신이 이 책을 쓰면서 글쓰기를 미루려고 먹었던 간식이나 원고 마감기한에 대한 부담감을 회피하기 위한 유튜브 보기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독자-저자 관계에는 안 좋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가끔 글이 쓰기 싫었고, 일처럼 느껴진 글쓰기를 회피하기 위해 간식을 찾거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정신을 맡겼다는 말은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TMI이다. 본래 독자가 어떤 책을 읽으려고 집었다는 것은, 그 글을 쓴 작가의 작업 과정과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열망에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책의 나머지 반절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내가 읽었던 식이장애 관련 도서 중 가장 진정성 있었고,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을 너무 철학적이지도 않게 쉽게 잘 풀어 썼다. 미국에서 내가 식이에 관한 고민을 하며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 했을 때 다다랐던 결론과 얼추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표시해 두었던 문장 몇 가지를 가져왔다.


(p. 103) 저는 누가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하면 되도록 시작조차 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식단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키스의 실험처럼 다이어트 시도 자체가 음식에 대한 집착과 갈망을 불러일으킬 테니까요. 어쩌면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다이어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살다 보면 살은 찌고 빠지기 마련이다. 만약 눈에 띄게 찐 살이 불편하다면, 극단적으로 식이 자체를 아예 바꾸는 것보다 내가 살이 찌게 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제일 좋다. 본래 살이 찌게 된 원인은 작은 것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카페테리아에서 끼니 후 과자 한 개씩을 더 집어먹었다던지, 퇴근 후 맥주 한 캔씩 마시면서 과자를 먹었다던지 하는, 내 몸에 불필요한 열량의 섭취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찐 살을 빼겠다고 아예 식사를 닭가슴살과 고구마로 바꾸기보다 먹었던 과자나 쿠키, 맥주 등만 먹지 않는 습관을 들이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급하고 단기간에 변화를 원한다. 또, 다이어트는 "새로운 도전"이나 "자기 관리"라는 명목 아래 우리에게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 너무 의욕적인 다이어트는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p. 109) '아빠가 나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살을 뺀다고? 살 빼고 공부하고 일할 시간에 나랑 같이 시간을 더 보내고 더 많이 이야기하지!'라는 생각이 이제는 드나요? 여러분의 가족, 친구, 애인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게 인정이나 관심, 사랑받고 싶어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이어트를 시작한 후 많은 친구들과 가족들, 특히 엄마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 칭찬을 놓고 싶지가 않았다. 나의 가치는 주로 내 외모에서 온다고 믿었고, 아직도 그런 믿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욕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관계지향적인 마음일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관계를 더 깊게 하기 위해서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그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받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느라 친구들과의 외식이 두려워 약속을 취소하고, 가족과 밥을 먹지 않는 대신, 그들과 함께 더 많은 유대감을 쌓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p. 188) 저는 우월감과 열등감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준을 타인에게 두고 비교하며 느끼는 감정들이니까요.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열등감을 느끼고 기준을 달성하면 우월감을 느낄 거예요. 우월감을 언제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질 겁니다. 결국 열등감이든 우월감이든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므로 필연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죠.

이 구절을 읽고 아차 싶었다. 본인이 스스로 남보다 잘났다고 믿고 있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우월감을 느끼고 있는 그 기준이, 언젠가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에게 견디기 힘든 열등감을 줄 수도 있다. 사회 속에서 살면서 타인과의 비교를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이 우월감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위험하다. 나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형용사에는 비교의 의미를 내포한 단어들이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예쁜 사람이야"라고 정의한다면, 예쁘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나보다 덜 예쁜 사람도 있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정의했을 때, 이것은 단순한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연결된 정의가 아니기 때문에, 나로서 독립적인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나는 예쁘다, " "나는 날씬하다” 와 같은 정의는 나의 근본적 정체성을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 귀속시킨다.


(p. 217)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냐고요? 질투하고 질투받고 미워하고 미움받으면서 일로 도망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관계가 버거울 때도 당연히 많죠. 하지만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관계 안에서의 친밀감이지, 혼자서 얻는 성취감이 아님을 이제는 압니다. 다이어트도 공부도 일도 누군가의 관심이나 인정이 없다면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p. 220) 저는 이 불편하고 지질한 감정들이 너무 싫어서 오랜 세월 고상해 보이는 것들로 제 삶을 채우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으면 계속해서 공허함이 쌓이고, 믿 빠진 독에 물 붓듯이 계속 스스로를 갈아 넣을 뿐 남는 것은 없습니다. 성깔도 부리고 미움도 받고 질투도 하고 서운한 감정도 드러내면서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보세요. 다이어트 말고, 일 말고, 관계로 한 발짝 나아가 보세요.

인간관계는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아들러의 말처럼, 다이어트나 일 또한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위 두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와 참 닮았던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심지어 지금도 나는 타인과의 친밀함 속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불편한 감정들이 너무 싫어서 알게 모르게 먼저 거리를 두고 마음의 벽을 쌓아왔던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이레 겁을 먹어 먼저 거리를 두면서 스스로를 방어했다. 하지만 이 거리두기로 인해 겪었던 공허함은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나를 아주 힘들게 했다.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도 되돌아보면 항상 어딘가 공허했다. 정말 친하다는 친구들도 내가 내 마음속에 쌓은 방어벽 때문에 나는 진정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 문제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게도 했다. 지금 나는 다이어트에 집중해야 할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마음을 여는 법, 타인을 믿고 마음을 맡기는 법을 먼저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말대로, 지질한 감정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한번 부딪혀 보는 거다. 인간관계의 소용돌이에 한번 휩쓸려 보는 거다. 그래도 괜찮은, 생각보다 강한 존재일수도 있으니까!


이제 나는 내 일상의 중심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나침반의 화살표를 조정할 때가 되었다. 수년간 정말 중요한 문제,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세를 보이면서 오히려 애꿎은 다이어트만 해댔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나는 더 고립되어 갔다. 맘속 깊이 원한 것은 관계의 친밀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조언대로 나는 이제 다이어트 말고, 일 말고, 관계로 한 발짝 나아가 볼까 한다.


정말 흔하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다. 저자가 본인의 경험을 진솔하고 솔직하게, 또 이해하기 쉽게 전해주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 어느 식이장애에 관한 책 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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