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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Feb 26. 2021

어린이에게 돈이란

어린이에게도 경제권이 있어야 할까?

최근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서 어린이 인권에 대해 생각해봤다. 대학 생활을 하고 졸업 후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어린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혼자 걷고 있는 아이, 엄마와 함께 나서는 아이들이 새롭게 보인다.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소영 작가의 신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어린이 인권도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는데, 이 모든 대화에 중요한 것이 하나 빠진 것 같다. 바로 ‘돈 얘기’다.


돈은 인생에 있어서, 특히 자존감과 자기 결정권에 있어서 중요하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부모님의 경제력에만 의존하고 있을 때는 내 자유 의지가 완전히 실현되기 어려웠다. 가지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부모님이 안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지출이 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해도, 부모님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안정감이 생겼다. 대학생 때 조교 아르바이트로 벌었던 돈과 회사 생활을 하며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은 양과 질이 다르다. 모아둔 돈이 있으면 믿는 구석이 생긴다. 전 세계 어디에 떨어지더라도 일단 살아남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조금 더 용기가 생기고 자유로워지기도 한다. 특히 부모님 앞에서 당당해진다. 이만큼 키워주셨으니 이제 나도 우리 가정의 일원으로서 돈을 외부에서 끌어오겠습니다, 하며 듬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내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힘이 함께 쌓여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얻는 노동 수입이 없는 어린이들은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까? 어린이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우리 할머니는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항상 내가 백화점 장난감 코너 바닥에 드러누워 울며 떼를 쓴 이야기를 하신다. 매번 똑같은 스토리지만, 할머니의 생생한 묘사와 그때 할머니가 느꼈던 당혹감을 전해주시는 것이 재밌어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온 가족이 웃는다. 세, 네 살 밖에 안된 어린 아기가 용캐도 자기 물건이 있는 코너를 알고 찾아간다. 그리고 인형을 사달라고 의견을 표출하다가, 조르다가, 떼를 쓰기 시작한다. 떼를 쓰다가 결국 바닥에 드러눕고 엉엉 운다. 온 백화점이 떠내려갈 정도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돈을 주고 얻어야 하는 사회에서, 어린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어른을 통해서 얻어야 한다. 돈을 가지고 있는 어른이 사주지 않으면 절대 가질 수 없다는 것인데, 어린이를 단순히 '나이가 어려서 지도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 본다면 그들에게 경제권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부당하게 느껴진다. 어린이들이 '떼'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어린 시절, 돈이 없어서 가장 서러웠던 때는 기타를 배우지 못했을 때였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테일러 스위프트의 엄청난 팬이었다. 14살 때 테일러 스위프트가 첫 내한 공연을 왔는데, 콘서트장 맨 앞줄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 몇십 개가 넘는 테일러의 노래 가사를 다 외울 정도로 자주 부르고 친구들과 노래 연습도 많이 했는데, 그때 사촌 오빠들이 배우던 기타를 나도 너무 배우고 싶어서 엄마에게 기타를 사달라고 오랜 시간 설득해본 적이 있다. 결국 실패였지만. 그때 기타를 못 배운 것이 아직도 아쉬운데, 슬프게도 지금은 딱히 기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때 배웠다면 지금 취미가 하나 더 있을 텐데 말이다.


어린이가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출이 뭔지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라고 해서 불합리적인 떼를 쓰기만 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돈은 단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거래 수단에 불가하지, 돈을 벌지 못하는 능력이 개인으로서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판단하는 능력과 직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작가님이 어린이와 돈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 실지는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아서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를 '어린' 사람으로만 보지 않고 나와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보려고 할 때, 그들이 경제권이 없다는 사실이 치명적인 장애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은 노동 소득이 없고, 본인의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권리가 더 다치기 쉽다. 누구나 사회에서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제권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 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나도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은 없지만, 어린이와 돈의 관계는 참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다. 어린이들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 꼭 다뤄져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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