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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Jan 03. 2021

집 안의 소음을 피하는 방법.

코로나로 인해 무너진 공간의 분리. 그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을까.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없어서는 안 되는 나의 필수템이 있다. 바로 귀마개이다.


그 흔한 노란색의 말랑말랑하고 귀에 넣으면 모양에 맞게 찌그러지는 귀마개 말고, 고성능의 아주 비싼 소음 차단용 귀마개이다. 시카고에서 싼 월세집을 찾느라 감안할 수밖에 없었던, 매일 새벽 아침마다 드나드는 큰 쓰레기차의 컨테이너 박스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간혹 거슬리는 룸메이트들의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구매한 귀마개이다. 아마존에서 무려 30불 가까이 되는 금액을 주고 구매했던 것 같다. 그만큼 나는 조용한 환경이 간절했다. 나의 생활 리듬이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나는 가족들과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하지만 회사는 미국에 있기에, 나는 미국 시차로 생활을 해야 했다. 미국 시간에 맞추어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한 시에 근무를 시작했고, 대낮에 일이 끝났다. 규칙적인 생활을 중시하는 나였기 때문에 수면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많은 신경을 썼다. 시카고에서 가져온 나의 귀마개는 더욱 소중해졌다. 가족들과 생활 패턴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더 예민해졌다.


부모님이 집에 계시는 한, 우리 집의 텔레비전은 꺼지지 않는다. "테레비," 그놈의 테레비. 평일에는 부모님의 퇴근과 동시에 켜지고, 주말에는 아침 일찍부터 켜져서 가족들이 잠에 들 때까지 온갖 예능과 뉴스, 영화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아침, 점심, 저녁밥 먹을 동안에는 휴대폰에게 잠시 자리를 내주고, 그 외의 시간에는 계속 켜져 있다. 식사 시간 동안 이마 바로 옆에 놓인 휴대폰에서 나오는 정신없는 예능 소리 때문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가 많다. 수능이 끝난 동생도 계속 핸드폰만 보고 있다. 누워서, 엎드려서, 소파에 기대서. 자세만 바뀔 뿐 계속 핸드폰만 손에 쥐고 있다.


일도 집에서, 쉼도 집에서. 코로나로 인해 밖에도 나갈 수 없는 나는 모든 생활을 집에서만 하고 있다. 나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동생의 수능이 끝나기 전에는 우리 집의 가장 작은 방에서 이 모든 것들을 해결했다. 일하는 책상 바로 뒤에 옷장이 있는데, 그 옷장 문을 열면 책상에 거의 닫는다. 그 좁은 공간에서 나는, 일이 끝나면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다. 잠결에 뒤척이다가 발을 책상에 부딪히거나 손을 옷장에 부딪혀서 멍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저 놈 수능만 끝나면.....!'이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던 것 같다.


드디어 12월 3일, 수능이 끝나고, 동생이 공부하던 방을 차지했다. 그 방의 지저분한 것들을 모두 치우고, 동생 책도 다 버리고 (재수는 안 할 거라고 했기 때문에) 내 업무용 모니터와 노트북을 이 방에 다 설치했다. 내 옷과 화장품도 다 옮기고, 홈트 할 때 쓸 전신 거울도 두었다.


내 공간이 생겼지만, 가족들이 모두 집에 있을 때는 내 방에 있어도 분리된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거실의 테레비 소리. 그 끊임없는 테레비 소리, 몇 시간이나 계속되는 그놈의 테레비 소리가 내 공간을 계속 침범한다. 이때 나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귀마개를 착용한다. 그리고 나의 정신이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한다. 책을 읽거나, 브런치에 글을 쓴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만 생활을 하면서, 공간의 분리와 그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간의 전환과 환경의 변화가 나와 나의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공간에 내린 정의가 나의 일이나 휴식에 좋은 원동력이 되어 준다는 것.


코로나 때문에 이러한 공간의 분리는 무너졌다. 방 하나에서 모든 것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지금, 나는 귀마개와 독서, 글쓰기에 의지하여 나만의 공간을 지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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