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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9. 2017

41. 초라할 무렵의 한마디

뭐긴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죠.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을테니까

미안해 엄마 오늘…조금 늦을 거 같아요
그래 됐어 니 볼일 보고 와. 혼자할 수 있어. 엄마도. 엄마다


 엄마도 엄마다 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다행히도 퇴근시간이 지난 불 꺼진 회의실 안이라서 다행인 순간이었다. 혼자 울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게 새삼 고마워진다. 


 미안했다. 죄책감이 밀려 들어왔다. 동시에 쌍둥이를 케어 한다는 것. 그게 쉽게 견딜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러나 그것도 한때라는 걸, 그래서 즐기라고들 하니 나는 즐겨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아이가 아프고 버거운 각종 사사로운 일들이 밀려오는 일상이면, 사실은 말이다. 정말 때론 피하고 싶어진다. 난 어제 오늘 특히나 그랬다. 피하고 싶었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두 어린 아가를 돌봐줄 수 있다면, 몇 시간만이라도.. 


 아이가 열이 나고 아팠다. 그럼에도 정말 일이 있었고 야근을 해야 했고 신랑은 바빴다.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하원 시키고 씻기고 멕이고 재우는 과정을 우리 부부는 바보 같이 엄마에게 모든 걸 잠시 맡겨버렸다. 그녀의 힘듦과 노고가 너무나도 그려져서 그런걸까. 내가 견디기 힘든 ‘감정’이 다시 밀려왔다. 죄책감. 

 

 아이를 내 힘으로 데리고 올 수 없는 날.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날, 그런데 그 누군가의 마음에 죄책감 때문에 괜한 헛소리 같은 말들로 상처를 주고 말았던 날은 더더욱. 


 퇴근 시간에 맞춰 반 제 정신 나간 미친년처럼 어린이집에 헐레벌떡 달려가는 날

 매일은 아니지만 매번 그렇다. 사실 대부분 그런 일상엔 죄책감 따위는 사실 내게 들어올 틈이 없다. 정말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머리와 여유가 없어서. 그러나 오늘 같은 날은, 육아 핑계가 아닌 내 마음의 문제라는 걸 더 알게 된다. 내게 작은 사건이 일어났으니까. 


오늘, 모 잡지의 작은 수기 공모전에 당선된 내 글이 실린 책자를 받았다. 

 그리고 해당 잡지의 편집장님으로부터 원고료와 소정의 책 선물을 위한 주소와 계좌번호를 불러달라는 소리를 들었다. 기뻤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 들어왔다. 


 나의 현재 상황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다는 건. 이 모든 건 내 곁의 가족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그들, 내가 정말 힘들 때 매달리는 유일한 나의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면서도 시간을 허락 받아가며, 내가 나 좋자고 낑낑대며 부단히 밀어 붙이는 참으로 이기적인 마음과 맞바꾼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일까. 마냥 기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이상하게 저려왔다. 아팠다. 

 엄마를 찾는 아이들과, 같이 있지 못하는 이기적인 내 마음이 만들어 낸, 나쁜 선물 같은 느낌이어서. 그래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밀려온 건지도 모르겠다. 


 5년만에 다시 글을 쓰기로 했고, 담담히 여러 이야기들을 나만의 문체로, 두서 없이 적어 내려가던 이야기 중에 한 편이었다. 담담히... 아니 사실 담담하지는 않았다. 고작 A4 한 페이지 정도의 작은 공모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느릿한 호흡으로 천천히 적어 내려간 두 시간 동안 내내 신기하게도 간절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사실 요즘은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거나 글을 써 내려감에 한 문장 한 단어 글감과 감정을 다스리는 데 이상하게 간절함이라는 감정이 앞선다. 

앞이 보이지 않을 거 같을 때, 그럼에도 간절함이 빛처럼 찾아오면, 그거 하나 믿고 또 움직여 볼 수 있잖아.


간절하다는 건... 감히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 깊이와 온도는 나만 알 수 있을 테니깐 


 나이가 들어 버린걸까. 아니면 여전히 나약해서 그런 걸까. 잘 모르겠다. 


 마음이 오늘은 새삼 더더욱 북받쳐 올랐나 보다. 소식을 들어도, 아이들과 엄마와 여러 생각들 탓에 여전히 울고 말았다. 여전히 나약하고 자존감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듯 하다.  


 그러던 중 오늘 내가 들었던, 기막힌 타이밍과 기막힌 순간의 대화는, 잠시 없어진 용기를 다시 불러 일으키게 만들어 주셨다. 


마음이 좀 그래서 필사를 하고 있습니다. 책도 읽어야 하고..
글 잘 쓰셨는데 왜 울적하세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뭐라고… 아이둘을 내버려 두고 글을 쓰고 있는 제가 한심해서, 죄책감이 밀려와서요. 
그런 게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글이 더 좋지 않나요 
제가 어른이 아닌가 봅니다. 아직 정말 한참 남았습니다. 
여러 가지 길이 있겠죠. 조금 천천히 가는 것도 있고 힘내서 같이 가는 길도 있고. 영원히 지금 상태가 지속되는 건 아니예요..
제가 좀 바보 같아서요..제가 정말 뭐라고……


그리고 그가 말했다. 그의 마지막 말에서 나는 다시 울고 말았다. 


 뭐긴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는데.
우리는 모두 각자 세상의 주인인 것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다고 했다. 

 눈물이 났다.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나를 믿는 그 끈이 느슨해지고 닳아지고 있었을 뿐. 그래서 부서질 듯 아파했던 짧은 순간, 내가 아닌 타인의 한마디에 뒷통수가 맞은 듯한 얼얼함과 찌릿함이 동시에 전해 들어왔다. 


 때론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막막하지만 또 사실은 이미 우리 안에 답이 있다는 걸, 우리들은 살면서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삶이 워낙 헤쳐 나가는것 만으로도 때론 무거워서. 그렇게 주저 앉아서 방황하고 힘들어 하고 지쳐가고 있을 때, 마음이 이미 그 답을 알고 있고 듣고자 하는 말을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사실 듣고자 한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하는 본능적인 자기 방어기제와 인정의 욕구가 충만한 인간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기다리던 소식, 누군가는 받고 싶지 않은 말들, 그 모든 것들이 섞여져 있는 게 삶인 지 모르겠어. 그러니 그냥 받아들이고 가보자고, 내내 핸드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기막힌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안에 들어왔을 때. 듣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 줬을 때. 혹은 막무가내 겉포장이 아닌 때로는 진심이 담긴 공감으로 때로는 냉정한 온도의 이성적인 판단을 곁들인 조언으로. 그 형태가 무엇이 되었든 우리들은  내 마음이 지금 이 순간 듣고자 하는 목소리를 누군가의 목소리로 확언 받았을 때, 위로와 감사라는 걸 느끼는 걸 지 모르겠다. 


 아이를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글을 쓰고 있는 다분히 이기적인 나는, 퇴근시간이 꽤 지난 시간, 혼자 회의실에 앉아서 한참을 속으로 숨죽여 울고 말았다. 궁상을 또 떨구어 내고 말았다. 궁상의 연출 각본 감독 주연 모두 나 라는 걸 아는데도, 그래졌다. 어떤 이유에서건,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서 잠시 지쳐서 울고 있었던 나였다.


 그러나 내가 들었던 오늘의 말 한마디들 덕분에 다시 어리석고 어렸다는 반성과 동시에 다시 힘을 내 본다. 아니, 오늘은 한껏 긴장해 있었던 힘을 빼 보고 싶다. 그래서 뺴 보기로 결심하면서도 어떤 욕심은 더해 본다. 


 누군가 오늘의 나와 같았을 때, 내가 받았던 것처럼. 우연이든 운명이든 그에게, 그녀에게, 나 또한 그들의 울음을 그쳐내게 작은 울림의 한마디를 건네줄 줄 아는 어른이 되어 보기를 말이다. 


 때론 냉정의 온도를 가지고, 동시에 귀중한 진심이 담긴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는, 오늘 내게 차를 넌지시 건네 주신 귀하고 감사한 분처럼 진짜 어른이 되어 보자고. 


응원 차, 차 한잔 배달했어요 


 어른이 어른으로 산다는 게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도 한 걸음 두 발자국 앞으로 나가보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담담하게 건네줄 줄 아는 멋진 마음의 어른으로 좀 더 다가가보고 싶어지는 오늘이다. 


그리고 늘상 그렇듯, 곁에서 모든 슬픔과 기쁨을 한껏 공유하며 '공감'을 해 주는 나의 천사 JH 에게 고마운 오늘이다. 

 받은 원고료는 늘 그래왔듯 초록어린이재산에 기부를, 아주 약간은 JH 와 차 한잔의 배달을 건네주신 그 분께 보답해 드릴 생각이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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