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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30. 2021

칠드런 액트

많은 일들이 북적거리는 가까운 과거의 기억은 오히려 불러내기 힘들다. 


- 칠드런 액트 - 



종교와 법은 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할까. 그 두 개는 다른 듯 닮았다. 믿는 자들에게, 혹은 믿고 싶은 자들에게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 그것들에 학습되어 인식이 깊어질수록 헤어나기 쉽지 않은 것. 자기 세상의 기준점이며 또한 전부가 될 수도 있는 것. 연약할수록, 필요하다 생각될수록 거침없이 매혹적으로 다가가 결국 기대게 되는 것. 답이 없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확고한 답이 되어 버리고도 마는 것. 그리하여 주의할 것을, 너무 빠지지 않도록. 그 영역이든, 그 영역 안의 '사람' 이든...



한밤중에 시 쓰기를 좋아하는 지적으로 조숙한 소년 애덤은 죽음이 코 앞이란다. 수혈을 받지 못하면 죽는다. 그러나 그에게 '죽음' 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듯 보인다. 어떤 확고한 신념이 그를 사로잡았을까 아니면 그 나이 때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스스로 연출해봄직한, '그저 자극이 부족해 지루해한다는, 그래서 자기 생명을 위태롭게 만듦으로써 매혹적인 드라마를 연출' 하고 있는 걸까. (p.144) 



그런 소년 앞에 나타난 피오나는 곧 예순을 맞이하는 찬사 받는 판사이며 35년이라는 결혼생활이 지난 후 남편의 거침없는 고백에 의해 휘청거리는 중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잠자리를 한 게 언제지?' (p.9) 라면서 외도 사실을 넘어 '개방 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는 그녀를 떨리지 않게 만들어 주는 건 위스키뿐이었을까. 아니, 위스키 조차도 그녀를 편히 만들어주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아이 없는 부부로 '하루에 열네 시간씩 일하며 가족법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고 그동안 집에 놀러 온 조카들을 보면서도 자신의 가족 생각은 뒷전' 이 되어 버렸으며 '이른 나이에 판사직에 임명되어 순회재판에 다녀야 할 거라는 소문' (p.65) 대로 그야말로 '일'과 '생활'에 치열했던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은 결국 그들을, 그리고 자신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현실이었다는 걸 조금씩 자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테다.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는, 틈새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모르는 것처럼. 



개방 결혼을 제안하려면 결혼 전에 했어야지. 서른다섯 해가 지난 후에 그럴 수는 없다. 잠깐의 관능적 흥분을 되살려보겠다고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위태롭게 만들다니! 자신이 그것을 원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녀에게는 '마지막 바람' 이 곧 최초의 바람이 될 텐데)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혼란과 밀회와 실망과 곤란한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뿐이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잠자리에 적응하는 불편함, 새로이 고안해야 하는 애정 표현, 그 모든 속임수들. 결국 다가올 필연적인 사태 수습의 과정, 마음을 터놓고 진심을 다하기 위해 요구되는 노력. 정리하고 돌아와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는 모든 것. 아니, 나는 불완전한 삶이 나아. 지금 내게 주어진 바로 이 삶. p.14, 



그랬다. 피오나의 아이 없음은 그 자체로 푸가였고 도망이었다. 그녀가 머리에서 몰아내려 애쓰는 습관적인 주제였다. 바른 운명으로부터의 도망. 그녀의 어머니가 이해하는 의미의 여자가 되는 데 실패한 것이다. 피오나는 이 상태에 이르기까지 이십 년 동안 잭과 함께 느린 패턴의 대위법 음악을 연주했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불협화음은 가끔씩 불안을, 심지어는 공포를 느끼는 순간마다 다시 음악에 섞여들며 그렇게 가임기는 흘러가 결국 끝이 나고 말았지만, 그녀는 너무 바빠서 그 사실조차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p. 65


@네이버 영화, 칠드런 액트, 두 사람의 처음.



'송가의 긴 구절도 암송하는 사람. 애덤은 진정 뛰어난 아이' (p.118)라는 생각을 하는 피오나에게 애덤은 어떤 존재였을까. 우선 '의무' 였겠다. 법정의 의무, 판사의 책무는 무릇 보호받아야 할 인권을 - 특히 가정법에서 정의되는 아이들은 -  자기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자유와 복지를 지켜주는 것. 생명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그리하여 너무 이른 죽음은 막을 수 있다면 막아내야 하는 것. '자기 앞에 놓인 죽음을 대략적으로 조금은 낭만적으로 생각'(p.118)  하고 있는 소년과 진지하게 대면해서 설득해 볼 것. 어쩌면 그녀가 애덤을 직접 만나 듣기로 결정한 그 시작이, 자기 자신의 내면과 그간의 살아온 시간들을 반추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작' 은 아니었을까. 헤아려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내가 아닌 타자를 통해 미처 몰랐던 나를 새롭게 알아가는 법일 지도 모를 테니까... 




본 소송의 특이한 상황을 감안하여 저는 애덤 헨리의 말을 직접 듣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성경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지 알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제가 병원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릴 경우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또한 애덤은 인간미 없는 관료체제가 자신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본인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저라는 것을 제가 애덤에게 직접 설명하겠습니다.  p.124



그런데 맙소사. 그 소년은 소년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어른인 그녀를 꽤 흔들어 놓고 만다. 어쩌면 '그녀를 다른 영역으로, 자신이 그녀 주위를 돌며 맘껏 춤출 수 있는 더 거친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다시 부적절하거나 흥미로운 말을 뱉게끔 유인' 하는 데 탁월하다 (p.144) 애덤의 '마이 레이디'가 되고 마는 피오나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일조한다. 물론 그를 의무적으로 구하기 위한 대화와 시간과 만남이었겠지만. 어쩌면 특수한 부모의 엄숙한 세계관이나 폐쇄적인 종교관이 한 소년의 세계를 가둬두고 흩트려놓고 있을 때, 세상은 그렇게 갇힌 세계가 아니라 더 큰 무언가가 있노라고,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바르고 단단한 어른은, "부모님의 종교는 독이었고 판사님은 해독제였어요." (p.222)라고 천진한 문장을 건네는 애덤에게는 아마도 피오나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단 하나의 사람, 처음 만나는 세계처럼. 



저기요 판사님은 제 생명을 구해주셨어요. 그런데 그뿐이 아니에요. 아빠는 안 보여주려고 하셨지만 제가 판결문을 읽었거든요. 제 종교로부터 절 보호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게 하신 거 맞아요. 전 구원받았거든요. p.216, 


판사님이 가진 어떤 것. 그것이 결국 특별한 무언가가 되었어요. 굳이 말로 하실 필요도 없이,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방식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 가서 장로님들 말씀을 들어보시면 돼요. 그리고 우리가 그 곡을 연주했을 때...  p.222



구원의 대상은 매혹적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고 마는 그 대상들을 그러나 우리는 인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세계 속으로 확실하게 들어갈 때, 우리가 마주하는 트리거 중 접촉이 먼저일까 기억이 먼저일까 아니면 우연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저 예의 치레로 볼에 입을 맞출 생각이었던 피오나에게는 훗날 '그렇게 충동적이고 어리석은 짓을. 직업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미친 짓인 것을. 기억 속에서 살과 살이 맞닿은 접촉의 순간은 실제보다 더 길게 ' (p. 233) 느껴질 수밖에 없는 짧고도 강렬한 사건이 생겨 버리고 만다. '한순간의 접촉이지만 키스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 어머니가 장성한 아들에게 하는 입맞춤을 넘어서는 것' (p.230)과 같을 정도의 단숨에 훅 들어오고 마는 영향력은 피오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이 초 정도, 아니 어쩌면 삼 초 정도의 접촉. 말랑한 입술의 부드러움 안에서 두 사람이 떨어져 있던 모든 세월, 모든 삶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 그러다 서로에게서 물러났을 때, 그렇게 가벼이 살을 맞댄 순간이 두 사람을 다시 가깝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깥에서 자갈마당과 돌계단을 지나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피오나는 그의 옷깃을 놓고 다시 말했다. 


'넌 가야 돼'   p.230-1



무모하게도 달콤했던 키스, 회피하지 못하고 마는 죄책감. '판사에게 그런 일이 아예 불가능하단다. 애덤. 난 유다가 아니야. 늙은 송어인지는 몰라도'라고 (p.246) 생각해버리고 마는,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하고 싶다는 강한 현실적 자의식과 동시에 모든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나이를 먹었어도 자신조차도 처음 겪는 그 생동감 넘치는 감정. 여기서 잠시 궁금해진다. 그녀의 배우자가 말했던 '진짜로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피오나도 아주 조금은 했을지에 대해서. 아니면 여전히 배우자의 '우연한 사랑'은 그저 지저분한 바람기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정당화했을까. 누가 그러던데. 새로운 사랑이 결혼을 끝내는 게 아니라, 이미 끝난 결혼에서 새로운 사랑이 피어난다고도... 




- 그 애는 내 능력이... 정말 진지했고, 삶에, 모든 것에 정말로 목말라했던 아이야. 그리고 난. 

- 그래서 당신은 키스를 했고 그 애는 당신과 함께 살고 싶어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 그 애를 돌려보냈어


- 백혈병이 재발해서 병원에 입원했대. 병원에서 수혈을 하려 했는데 애가 거부했어. 본인 결정이었고 이제 열여덟 살이 됐으니까 누구도 어쩔 수가 없었대. 그 애는 수혈을 거부했고 폐에 피가 들어찼고 그래서 죽었어.

- 신앙을 위해 죽었군

- 내 생각에 그건 자살이야

- 그 애를 사랑했던 거야 피오나?


p.284-5. 



애덤이 정말이지 섹시하게 멋졌던 건 시종일관 비췄던 그의 '진지함'이었다. 시를 향한, 자신의 세계관을 향한, 그녀를 향한..




그녀는 무너지고 싶지 않아 했지만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감하게 용감하지만 무모하고 천진하게 순수한, 속세의 먼지가 덜 묻은 소년이었던 애덤은 삶을 재고 돌아가며 우회하는 법을 몰랐을 테니까. 그리하여 자신보다 어쩌면 인생을 대하는 데 더 어른이었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이 소년의 열정에 대해서. 그런 뜨거운 소년이 죽음까지 가는 길목에서 자신이 맡아야 하는 '의무'와 '책임' 은 그녀를 무너뜨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본디 우리들은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하며 사는가. 때로는 저지르고도, 혹은 저지르지도 못한 채로. 만약 피오나에게 기네스 4캔을 먹은 나였다면 미친 척하고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편지를 보내지 그랬어요... '늙은 송어'인 당신에게라도 기적처럼 발견된 사람이었다면. 저질러본다는 건 죄에 가까운 셈인걸까요. 법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법치주의에서는 사회적 제도적 기준이라는 게 그렇게 확고한가요. 항상 돌아갈 길만 안전하게 찾았던 우리에게, 생각해보니 남은 삶이 그렇게 길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면 말이죠. 그냥 뚫고 가는 게 낫겠다 싶던데. 당신은 어땠나요...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자신을 구하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난 이제 구하고 싶은데. 자주 수렁에 빠져버리는 나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이라고...  


#나도 모르게 서평이 아니라 편지로 마무리를... 받고 싶어서 그랬나 싶다. 그런 편지. 나도.... 



영화도 원작 소설도 나로서는 매력적이었던 건 그들이 주고받은 글과 편지 덕분이었다...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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