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Aug 28. 2021

판타지와 함께 살아가는 법

사랑은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다. 현실과 이상을 혼동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요 며칠, 나는 '그'와 '그 목소리'에 중독되어 있었다. 하물며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3분 만에 유혹당할 수 있는 강력한 예술매체는 언제나 '음악'이라 보는 편인데 여전히 그 생각은 어긋나는 법이 없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매일 10킬로씩 두 시간가량을 걷고 뛰면서 반복적으로 듣던 그 노래는 사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지경에 처할 줄이야. 스스로도 적잖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책을 읽다가도 한 페이지를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어느새 그 노래를 따라 부르다 급기야 안무까지 연마하게 되는 우스운 장면을 연출하고 말다니. 아이들은 물었다. 엄마 뭐 하냐고. 나는 아이들에게 능청스럽게 손을 내밀며 대답하고 말았다. '우리 집으로 가자' 고. 


 

중독은 무섭다. 게다가 소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중독은 얼마나 압도적이던가. 나로서는 상당히 섹시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음성이 3분 내내 시종일관 흘러나와서 혼을 빼놓고 말았는데 급기야 잘 보지도 않는 유튜브를 호기심에 찾아보게 되었다는 것. 그런데 거기서 멈춰야 했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난생처음 태어나서 '입덕 직캠'이라는 걸 보고 한번 빠져든 영상에 압도적으로 유혹당해버리고 말았다는 것.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틀어 놓고 '하고 싶다' 고 징그럽고도 주책맞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 



그렇게 선이 섹시한 남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이 나이에 알게 되고 - 각성당해버린 것 같은 - 나는 부끄러웠지만 사실 그에게 당당히 말해보고 싶었다. 지금 내가 '이런 나'로 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이와 어떤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던 걸지 모른다. 유자녀 기혼남녀로 부부가 된 '우리'는 언제나 이성과 자기 절제의 신인 아폴론을 숭배하는 인간으로서 일상의 대화를 나누기 일쑤였지만, 그렇게 안전하고 생활적이고 이타적이며 경제적인 대화는 이제 가끔은 집어치워 버리고 싶다고. 대신 어색하고 위험하고 아슬아슬할 수 있으나, 그래서 강렬하고 내밀하며 한편 상당히 진지해야 가능한,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살아온 즉흥적 감각적 감정적인 모든 것들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찾아보자고. 당신과 나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에로스에 대해서. 더 늦기 전에 우리는 그래야 한다고. 



@Francesco Hayez ,The Kiss, Il Bacio, 1859



아이들을 재워 두고 나는 보던 영상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종알종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요즘 책도 글도 심지어는 해야 하는 소박한 생활적 미션들도 - 아이들과 관련된 것을 제외해 놓고 -  모두 후순위로 뒤쳐지게 만들어 놓은 노래가, 인물이, 연출된 장면이, 이렇게나 섹시하다고. 이게 현실일 수 있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엉뚱하지만 대화는 자꾸만 숨기지 못한 채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당신의 섹시함은, 나를 흥분시켰던 그 목소리는, 내가 욕망했던 당신의 와이셔츠는, 나를 갈망했던 당신의 눈과 손, 몸과 마음은 도대체 전부 어디로 갔냐고. 우리의 에로스는 종말 버튼이 이미 눌려져 버린 것이냐고. 왜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를 욕망하지 않게 되어버렸던 거냐고. 이런 대화를 나누며 거실에 누워 있는 당신의 몸 구석구석을 엄지발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소극적인 장난을 쳐 볼 뿐인 나는 그 이상의 선을 왜 넘어서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웃으며 시작한 이야기에 꽤나 혼자 열을 올리며 진지하게 흥분해버리고 마는 내가 사실은 우습기 짝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그깟 노래가 뭐라고. 그러나 내가 그 노래를 부르는 '비현실'의 인물에게 이렇게  빠져들면서도, 현실에서 어떤 '판타지'를 동시에 꿈꾸고 있다는 걸, 그게 상당히 진지한 태도라는 걸 부디 그가 알아주기를 바랐으니까. 어떤 타자를 열망하기 시작하는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당신이 부디 질투하기를 바랐기에. 질투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 않은 것이며 질투야말로 우리가 서로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인간의 복잡한 단면일 테니까... 



진지함은 결국 통하지 않았다. 물론 내 탓이라는 걸 안다. 종알종알 혼자 흥분하며 문장을 연이으며 웃다 찡그리다 어깨를 들썩이다 노래를 부르다 하면서 참 우습게 떠들어 댄 내 모습이 아마도 꽤 재밌었던 모양인지 그이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이를 이렇게 키워보자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해내 보자! 그러면서 우리 둘은 빵 터졌다. 서로 박장대소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묘하게 슬픈 안도감이 생겨버리고 말았던 건 왜였을까. 당신과 나, 우리 사이에는 유머라는 것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이상한 안도감. 그러나 동시에 이미 없어져버린 것 같은 서로를 향한 열정과 갈망, 영원히 잠에 빠진 욕망... 



@John Collier, Lady Godiva, 1897



결혼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이익을 따지는 인생의 사건이다. 게다가 독점적 계약 관계로 인해 복잡한 본성을 지닌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결핍과 갈망을 뜨겁게 꽃 피우게 만드는 탁월한 제도라고도 생각한다. 기혼 제도 입성 후 4인 가족을 형성하고 지켜나가면서 우리는 어떤 생활적 패턴과 안정감, 일정 부분의 일관성을 얻었다. 그러나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더해지는 게 있다면 동시에 무언가 빼앗기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경제적 생활적 안정과 평화는 사적인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에로스를 앗아간다. 우리는 '실존' 하는 '인간'이라는 '주체' 로서의 주관적 성적 결정권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억눌러야 한다. 동시에 내 안에서도 '나'라는 사람은 조금씩 사라진다.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라면 더더욱. 타인을 돌봐야 하는 이들은, 특히 유자녀 기혼녀는 자신의 욕구에 집중하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며 성욕을 표현하고 심지어 무책임하게 굴기가 상당히 어렵다. 우리가 만든 구성원들을 지키고 살펴야 한다는 암묵적 부담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개인이 지닌 매혹적인 섹슈얼리티와 성 에너지를 확실히 소멸시켜버리기 쉬운 강력한 억제제가 되고 말 테니까. 



사실 섹스 자체보다 그 전후로 강렬히 느껴지는 어떤 섹시한 장면과 오감들이 더 즐거웠고 중요했다고. 여전히 중요하다고. 비록 '우리 집으로 가자' 고, '10분 뒤에 저 앞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라며 서로를 애타게 열망하는 관계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나는 대신 이 말을 건넸다. 와이셔츠가 잘 어울리는 당신이기를 바란다고. 난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 헤치는 재미를 아직 즐기고 싶은, 때로는 세이렌이자 카르멘이 되어버리고 싶다는 걸 꼭 기억하라고. 우리는 비록 독점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도 서로 상대의 섹슈얼리티는 절대 소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당신 몸의 주인은 당신이라고. 반대로 내 몸의 주인도 나 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익숙한 관계에서도 서로를 더 많이 알기 위해 새롭게 다가가야 한다고. 그 말을 하고 나서 당신의 와인색 와이셔츠를 검색해서 쇼핑카트에 넣어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그이는 모른다. 내심 마음속의 '판타지'를 위해 빨간색 가디건마저 사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는 것도. 



이미 서로 익숙해져 버린 관계에서 새로운 '타자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타자로 하여금 새로운 '나'를 발견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혼은 현실이며 사랑은 이상이라던, 그리하여 현실과 이상을 혼동하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될 거라는 괴테의 말은 정말 단 한 번도 어긋남이 없는가에 대한 궁금함을 품고서. 고막에서 시종일관 울려 퍼지는 리드미컬하게 섹시한 매력이 흘러넘치는 노래를 들으며 잠시나마 어떤 판타지를 상상했었다. 판타지와 함께 살아가는 유일한 나만의 방법은 결국 '상상' 일 뿐일 테지만. 



익숙함이라는 금기를 깨는 것. 한계를 밀어붙이는 것. 상상이더라도 꿈꾸는 걸 주저하지 말 것.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길 바라는 어떤 판타지에 대해서...



눈 안에 펼쳐진 바다는 나의 것이 된다. 비록 그 바다는 모두의 바다일지라도- 




작가의 이전글 배웅과 마중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