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권
단출한 생활이 반복되는 한 달이었다. 아마 다음 한 달도 그러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예상이 되는 요즘이다. 새벽 5시 10분. 미리 불려둔 쌀을 밥솥에 넣고 버튼을 누른다. 도시락이 완성되면 가방을 현관문 앞에 놓아둔다. 그리고 6시, 출근하는 그이를 배웅한다. 옅은 농담 혹은 스킨십을 하려다 나도 모르게 머뭇거리면서. 그리고 책을 읽거나 간단한 청소를 하거나 어젯밤 널어둔 세탁물을 정리하는 새벽 혼자의 시간. 그러다 부지런한 첫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면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오전 8시가 지나면 아이들의 등원 개시. 그리고 아르바이트 요일이나 취재나 원고 일정이 있는 날엔 해당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이동하거나 움직이는 요일을 제외하고선. 대부분 보통 혼자가 되는 평일 낮이면 오전 2시간은 으레껏 걷고 달린다. 러닝머신에서 땀을 흠뻑 흘리며 오전 시간을 채운다. 귀가 후 찬 물로 샤워를 하며 아보카도 샐러드를 만들어 입에 넣는다. 오물오물. 그러면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면서 한 시간, 그러다가 식탁 위에 펼쳐 둔 책을 읽으며 한두 시간, 그러다가 시계를 쳐다보면 어느새 늦은 오후,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다. 태권도장으로, 원으로. 그렇게 데리고 온 후 씻기고 간식을 먹이고 놀리다 저녁을 준비하고 다시 먹이고 씻기고 간식을 주고 놀다 재우고 다시 혼자의 시간...
생각해보니 운동과 독서와 가사와 양육만으로도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꽉 차게 채워지다 보니 좀처럼 감정에 휘둘리지 않은 내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기분이다. '상대적'으로. '예전' 보다 조금 더 무뎌진 나로서. 아이들도 요즘 엄마의 '온순해진' 면을 좋아하는 듯싶었다. 일단 운동을 매일 하고 나니 화 낼 기운 조차 빠지는 기분이랄까. 여하튼 요즘은 강박이라든지 집착이라는 감정이 약해지는 기분이다. 다만 너무 목적 없이 무상하게 (?) 살고 있나 싶어서 나름 계획주의적이고 완벽주의자였던 나로서는 약간의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묵직한 책 앞에서는 - 가령 도덕적 동물이나 상처 받지 않을 권리, 채식주의자와 같은 - 조금 무거운 생각들이 연이어지다 보니 그리 무상하지도 않은 것만 같고.
그런 일상들... 그런 9월의 책들을 나열해보니, 책 편식을 하고 있더라는...
이 책을 한번 들고서 손에서 놓지 않고 초반의 흥미진진함은 후반부까지 (겨우겨우) 완주할 수 있었다. 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와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와 결혼하면 사랑일까 (리처드 테일러)의 3종 세트의 교묘한 결합과도 같이 느껴지고 말았던- '남녀'를 이해하는 데 계속적인 지식이나 생각이 쌓이는 중이라 고마웠다...
덕분에 감정수업과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다시 읽어본, 그리고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책 속에 언급된 조르주 바타유나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어떤 작가님이 흐뭇하게 생각이 바로 났었던) 도 읽고 싶게 만들었던 (그러나 선뜻 도전하려는 용기는 직진하지 못하고 마는) 책..
이기적 유전자 ★★★★ (EBS 위대한 수업에서 육성으로 듣는 리처드 도킨스의 강의는 좋았다-)
해피 크라시 ★★★★ (에바 일루즈의 신간이라 기대를 너무 많이 했었나... 그래도 '행복산업'에 대한 그녀의 주장은 101퍼센트 공감이었던)
왜 여성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 ★★★
왜 다른 사람과의 섹스를 꿈꾸는가 ★★★
나쁜 그림 ★★★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 주고 싶은 그림 ★★★
아트 살롱 ★★★
그림 같은 여자 그림 보는 남자 ★★★
그림 처방전 ★★★
마음의 연금술 ★★★
끝까지 쓰는 용기 ★★★
소설, 여자의 인생에 답하다 ★★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
고전의 유혹 ★★
그림에 끌리다 ★★
욕망의 힘 ★★
명불허전 작가님의 신간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을 10월이 기대가 된다.
소년이 온다 ★★★★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 Blue ★★★★
지지 않는다는 말 ★★★★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 1, 2 ★★★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
단 한 번의 사랑 ★★★
사랑에 빠진 여인들 ★★★
바람이 온다, 가라 ★★★
사랑이 한 일 ★★
전업주부입니다만 ★★
밤의 유서 ★★
별게 다 행복합니다 ★★
별 것 아닌 선의 ★★
눈으로 만든 사람 ★★
어쩌면 스무 번 ★★
달까지 가자 ★★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 ★★★★
되돌아보니 9월의 대부분은 단순하게 흘렀다. 소소한 일이 있는 날엔 그 일과를 수행하고, 특별히 그렇지 않은 날인 대부분은 운동을 하며 오전을 보내고 오후는 대부분 책을 읽고 가사와 양육을 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간다. 주말에도 운동을 하고 가족들이 다 모이는 날인지라 점심과 저녁의 집밥을 챙기다 보면 또 하루가 지나가 있고. 그렇게 반복. (아. 9월의 주말엔 EBS 위대한 수업을 몰아보기 하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10월도 기대 중)
그러나 역시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물론 여전히 생각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것들을 집착하고 어떤 것들을 붙들고 산다. 대부분의 화두는 '가족'을 향한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좋은 부모가 될 것인지, 우리 부부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이것이 '나' 에게는 잘 살고 있는 형태의 삶인 것인지에 대해서. 그렇게 밤에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스스로 자기반성과 성찰이 이어지다가도 생활적으로 큰 흔들림이 덜 한 '현재'라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조금 더 고맙게 생각하려 노력할 뿐이다.
스스로 생각을 하며 움직이고, 견주지 않는 조용한 자신의 노력을 하는 그 과정에 조금 더 후한 점수를 주려 노력할 뿐. 사랑하는 '자신' 에게 관대하려고 노력하는 시간.
그랬던 9월이 지나가고 곧 10월이다.
기념하고 싶은 날이 담긴 10월엔 어떤 이야기와 어떤 장면과 마주할까...
부디 좋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그랬듯이. 조금 더 사랑하기를 바라기도.
그리고 조금 더 괜찮은 글과 이야기를 활자로 남겨보는 '나' 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