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헤어져도, 다시 만나게 되는

by 헤븐

잘 지내고 계실까요. 저 또한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거의 3주 만에 편지를 드리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제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저 저의 게으르고 방만했던 마음을 탓해봅니다. 편지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여전히 그러합니다. 그런데 신기해요. 그 어떤 글보다 누군가에게 적는 '편지' 앞에서는 늘 막막해지곤 해요. 마음을 어디까지 드러낼 수 있을까, 혹은 어디까지 나라는 인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걸까.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글 앞에 서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요 근래 '글' 앞에서는 예전과 다른 제 모습을 발견하게 돼요. 마음을 오래 숙성시키는 기분이랄까요. 사실은 무언가 잘 써지지가 않은 요즘이었어요. 물론 글을 못 쓰는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은 늘 달고 살기도 하고. 퇴고 없이 한 번에 쓰는 버릇없는 태도는 여전하지만요..



저도 머리끈을 자주 잃어버리곤 하는데 민님도 그러셨군요. 그래서 저는 언젠가부터 핀을 사용해요. 숱이 많지 않아서 6cm 정도 되는 집게핀 하나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제법 잘 묶여요. 그런데 그 핀마저도 자주 어디다 두었는지 종종 잊어버리곤 하는데요. 생각해보니 제게 머리끈이나 핀은 잊어버리고 나서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잊어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내가 그것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또 잃어야 그 존재가 나에게 어떤 것이었는지 새삼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는 것. 그러고 보니 인연이라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라는 존재는 무엇보다 그렇죠. 불쑥 나타나 다가오고 또 어찌하여 제멋대로 사라지는지.



어른이 되어 갈수록. 참고로 지금 제가 언급드린 어른이라 함은 신체의 노화와 나이에 비례하는 인간을 뜻하는데요. 아, 참고로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 은 아닌 것 같아서 그 단어 하나를 떠올림에도 이렇듯 다소 장황스러운 부연설명을 덧붙이게 되고 마네요. (제가 이렇게 글을 잘 못 씁니다...) 여하튼 다시 돌아가, 어른이 되어 갈수록, 즉 한 해씩 나이라는 것을 먹어갈수록 어떤 '인연'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정말 쉽지 않고 오히려 어쩌면 저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겠다 싶은 생각을 하곤 해요. 뭐랄까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이 될수록 인연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하게 떨리고 끌리는 그런 느낌. 그 단어와 어울리는 연결은 좀처럼 쉽지 않고 대신에 소위 말하는 느슨하게 연결되고 마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어지게 되는 그런 관계들이 조금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퇴사를 하고 나서는 더더욱 외부 관계를 스스로 차단하다시피 거의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는 게 대부분이었으니 그만큼 누군가를 챙기든가 누군가와 연결된다든가 하는 시간들과는 소원해졌죠. 물론 거리두기 시대니 누구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러지 않았더라도 저라는 인간은 그랬을 듯싶어요. 스스로 '진짜'라고 느끼지 않는다면 이제는 그 어떤 연결을 쉽게 맺으려 하지 않는, 즉 마음을 절대 열지 않을, 그렇게 변해가는 저를 발견하거든요...



최근에 어떤 후배에게 반가운 안부를 받았어요. 대학교 후배인데 그녀와는 꽤 친하다 생각하며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연락을 종종 주고받고 몇 달에 한 번씩 회사 근처에서 밥도 먹었던 그런 '벗'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어느 순간 서로 조용하게 지내게 된 것이죠. 생각해보니 보통 제가 안부를 묻는 편이었는데 그녀에게 언젠가부터 안부를 주지 않고 있는 저였더라고요. 주지 않으니 받지 못하는, 받을 수 없는, 받아지지 않았던 관계였던 걸까요. 그래도 오랜만에 '받은' 안부는 서운함보다는 반가움이라는 감정이 앞섰어요. 문득 드라마를 보다가 언니와 닮은 배우를 보았다면서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는 그녀의 말에 미소가 번지기도 했고요. (그 배우가 부디 예뻤기를 새초롬한 마음으로 바라기도 했고요 :) ) 안부를 주고받은 그 짧은 순간엔 많은 문장을 기어코 그녀에게 말하고 싶어지는 제가 보였죠. 물론 예전처럼 아무렇게나 던지듯 함부로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그녀 입장에서의 저는 여전하다고 생각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여러 문장이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여전한' 제가 보였을지도요.




@John White Alexander, Memories, 1903



'우리는 모두가 완전히 이기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만 얻는다면 모든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p.118) 최근 푹 빠져서 읽은 소설이 있어요.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인데요. 그 덕에 다른 책을 쉬이 읽지 못하고 마는 함정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런데 그게 행복인가.

- 모르지,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물론 불행한 거지.

- 생각을 해봐야겠는데.

- 원하는 것을 한 번도 얻지 못하면 그건 불행이겠지. 하지만 앞으로 얻을 가능성만 있다면... (p.118)



'원하는 것을 얻는다'. 사실 이것만큼 대단하고 또 어려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이 세상에는 원해도 얻어질 수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또 원해서 얻어졌다 한들 그 원했다던 처음의 마음이란 것은 좀처럼 영원할 수가 없고. 영원하고 싶었던 마음은 어느새 소실되어 어디로 숨은 것인지 찾을 수가 없어요. 그러다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원하게 돼요. 원하는 마음에 집착해서 고통스럽게 되고 마는 인간은 결국 불행이라는 늪에 자주 빠지고 말죠. 그래서 원하기를 포기하다가도 은연중에 원하게 되고 마는 자신을 다시 만나요. 만나고 헤어져도 또다시 만나게 되는 것, 바로 원하는 마음... 원하게 되고 마는 것. 닿고 싶은 것. 얻고 싶은 것. 원하는 걸 얻었을 때 행복해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것이 결국 편린에 가까운 착각일지라도.



제게 '인연'이라는 건 한때 절실하게 원했던 것이었어요. 평생의 인연을 만나길 바랐죠. 내 편이 되어줄 친구를 바라기도 했고요. 그래서 결혼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벗'이라 생각되던 소수의 이들에게는 제 모든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려는 제가 있었죠. 어쩌면 인연을 묶어두려는 저였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고 반성이지만. 나로부터. 그들로부터. '우리'가 '우리' 로서 서로 벗어나지 못하게...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저였었나 봐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저는 제가 한편으로는 어리석었다는 걸 점점 알게 됩니다. 제가 굉장히 예의 없고 무례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인연은 그런 태도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친구든 연인이든 아니면 정의할 수 없는 어떤 '연' 이든. 다가오든 마주하든 아니면 직접 만들든. 스스로 진짜라고 생각되는 어떤 인연적 관계 앞에서는 함부로 '원한다'는 마음을 가져선 안된다는 것에 대해서. 원하는 마음은 나의 것일 뿐 상대에게 억지로 그것을 주입시키고 투영시켜서도 곤란하다는 것을. 인연을 지키고 싶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하며 그 사람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John White Alexander, An Idle Moment, 1885 (한가로운 한 때라지만, 그 한 때에도 생각을 하게 되고 마는 것이 있죠)




가벼운 나날'은 '가족'과 '부부'라는 인연을 맺은 이들의 이야기예요. 지극히 다면적인, 설명이 좀처럼 되지 않는 그 인연들이 어떻게 세월을 따로 또 같이 지나가는지에 대해서 아주 신랄하게 보여주죠. 실존하는 인간의 온갖 다면적인 측면을 가장 확실하고 적합하게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것, 제게는 바로 문학인데요. 지나가는 이 가을, 조금 더 문학과 가깝게 인연 맺고 싶은 저로서는 민님과 편지로 다시금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처음 주고받았던 몇 십통의 편지가, 최근에 서로 엮으며 잠시 쉬어가듯 일단락 지어진 것처럼. 이 편지 이후에도 계속 서로의 이야기를, 책을, 글을 주고받기를 바라는 이 '원함' 은 어쩌면 민님이 제게는 '인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게 인연이란 은은하게 생각이 남아서 떨쳐내지 못하고 말며, 한편으로는 진짜라 생각되고 마는.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밀크티 한 잔을 했던 단 한 시간의 기억이나 누군가에게 적을 편지를 내내 생각하며 사는 시간과 같은.

그 소중한 생의 순간이야말로, 한 인간의 며칠, 몇 달, 몇 년이라는 삶을 구원할 수 있는..책, 글, 편지, 사람, 그런 고마운 연결, 결국 '인연' 같습니다.



만나고 헤어져도 다시 만나게 되는.



가을이 지나가는 시간


그동안 내내 걷고


아이들을 챙기면서 (할로윈기념 가내수공업현장)


계속 읽는 시간이었어요.





우리의 이야기가 어디로 닿아가든

이 이야기들을 읽는 분들의, 당신들의 이야기도 부디 안녕하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무엇보다 같이 써 내려가는 당신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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