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바깥에 나가보니 가을비에 젖은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어요. 단풍을 본 게 엊그제인데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혼자 길을 걸었어요. 마치 가을의 뒷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왜 뒷모습은 항상 쓸쓸하게 보이는 건지, 가을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보내는 기분이에요. 단풍이 머문 시간이 유독 짧게 느껴진 올해 가을입니다. 편지가 오고 가는 사이 계절은 또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흐르네요. 비가 오고 나니 겨울이 바짝 다가온 것 같아요. 두툼한 가디건을 걸치고 헤븐님과 뜨끈한 차 한잔 마시고 싶은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을 읽었어요. 푹 빠져서 읽은 소설이라고 하셔서 궁금했거든요. 제목은 ‘가벼운 나날’이지만 가볍지 않은 소설이었어요. 소설에는 수많은 인연이 나와요. 네드라와 비리 부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부부의 세계는 여러 부부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진 관계의 네트워크였어요. 다른 사람의 삶을 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곤 하는데, 부부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들의 삶을 거울삼아 우리의 삶을 보게 되는 것이죠.
네드라와 비리의 결혼이 왜 끝나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설명하기 어려워요. 어떤 대단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아서요. 아니, 어쩌면 대단할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소설은 그저 흘러가는 일처럼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의 거대한 흐름에서 벌어지는 일이요. ‘우리는 빠르게 검은 강에 다가간다’ 소설의 첫 문장이에요. 강이 나오는 장면으로 소설이 시작하고 끝난다는 건 시간이 강의 흐름과 닮았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아요.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붙잡을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것. 그렇게 소설은 20여 년의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어요.
네드라와 비리가 헤어진 건 예상된 귀결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워요. 미세한 균열이 돌이킬 수 없는 벌어진 틈이 되어 버렸어요.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고 부족할 것 없는 삶을 누리는 세련된 가족이었어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내가 한때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삶의 주변으로 밀려간다는 건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네드라와 비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벗어나고 싶어하니까요. 다른 부부들과의 빈번한 교류 속에서 상대의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그 틈 사이 생겼던 균열이 가속화되었는지도 모르죠. 제임스 설터는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다’고 말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다른 하나의 삶’ 설터는 사람들 생각 너머에 있는 다른 하나의 삶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쉽게 알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삶이요. 어쩌면 위험할지도 몰라요. 균열은 다른 하나의 삶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라서요.
두 사람은 헤어졌지만, 아이로 연결되어 있고 그 밖에 여러 가지로 얽혀있어요. 네드라의 친구가 비리의 친구이고 비리의 친구가 네드라의 친구여서 서로의 소식을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무엇보다 기억을 공유하고 있어서 끊어질 수가 없어요. 그렇게 서로의 기억 속에 존재하겠지요. 죽을 때까지요. 부부로 맺은 인연이 아니어도 모든 인연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특별한 것 같아요. ‘만나고 헤어져도 다시 만나게 되는’ 헤븐님의 편지 제목처럼 인연은 나의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일 같아요.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 가는 인연이라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게 아닐까. 그러다가 아예 멀어져 버리거나 아니면 바짝 가까워져서 인연이 연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겠죠.
헤븐님이 오랜만에 만난 후배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한 때 다정하게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어느새 소원해져 버린걸 알아버렸을 때, 그건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시간의 압력이 아닌가 싶었어요.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집중해서 살아내고 돌아보니 서로 다른 곳에 도착해 있는 걸 발견하게 된 것이겠지요.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저 서로의 안녕을 최선을 다해 바랄 것. 제가 시간으로부터 배운 것이에요.
장기간 외국 생활을 한 남편에게는 교포 친구들이 있어요. 부부동반 모임을 하면 저를 제외한 대부분은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외국에서 오래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죠. 외국에 대한 동경하는 마음이 있던 저는 처음에 기꺼이 만나면서 지냈어요. 그런데 만남이 잦아지고 관계가 두터워질 때 즈음 헤어지는 일이 반복 되었어요. 한국에 일시적으로 온 사람들이어서 다시 외국으로, 그들에게는 고국인 곳으로 가는 것이었죠.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면서 그러한 만남이 어렵게 느껴졌어요. 마음을 한껏 주었는데 떠나버리면 그 빈자리가 크게 다가왔으니까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자주 이주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장소에서 만난 사람이 곧 인연이고 기억이 되더군요. 그러니까 20년 동안 한 동네에서 사는 저로서는 알 수 없는 마음가짐이 그들에겐 있었어요. 호기심이 많았던 한 교포 친구는 짧은 기간 머물면서도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고 최대한 이곳에서 경험해보겠다는 의욕이 있었어요. 언제 갑작스럽게 떠날지 모르는 인연이라서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마음을 열고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시간이 다 가버리기 전에 뜻깊은 만남을 갖고 싶었던 것이죠.
그러니 삶의 역동적인 에너지 역시 인연으로부터 나오나 봐요. 헤븐님과 편지를 교환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요. 소개해주신 책을 읽는 것도 큰 즐거움이고요. 수많은 소통수단이 있는 시대에 편지라는 형식으로 인연을 이어간다는 게 재밌어요. (물론 편지지에 손으로 직접 쓰는 편지는 아니지만) 긴 호흡으로 써 내려가는 편지는 흐르는 시간을 잠시 붙잡아 두는 것 같아요. 이 시간만큼은 헤븐님에게 집중하면서 쓰고 있으니까요.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블로그와 책으로 이어졌던 인연이 편지를 교환하며 비로소 기록으로 남기고 있네요. 이러한 인연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건 여러 마음이 합쳐진 결과일 거에요. 책을 아끼는 마음, 글쓰기를 향한 열정. 그리고 헤븐님을 향한 진심이 모여 단단한 겹을 만들어갈 때 좋아하는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아, 요즘 전과는 달리 글이 쉽게 써지지 않는다고 하셨죠. 저에겐 익숙하지만, 헤븐님에게는 낯설 것 같아요. 제임스 설터가 쓴 글쓰기에 관한 문장이 있는데 소개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어디에서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사용해야 하고, 생활 대신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뭔가를 얻어내는 것은 아주 소소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전혀 효율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 많은 것을 바쳐도 얻는 것은 적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얻어내는 게 적은 건 원래 글쓰기의 속성인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만 한다면! 비효율적인 일을 사랑하는 헤븐님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냅니다.
오늘도 비효율적인 사랑을 하느라 진이 빠져버린,
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