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공채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IT 제조분야였고 R&D 재직자 비율이 많았으며 BM의 상당수는 B2B 중심적인 기업이었다. 고객 사양이 주어지고 그에 맞춰 Time to market 이 필요했다. 수주된 프로젝트의 요청 납기와 RFP에 준하는 고객 요구사항/기능의 완성도와 도달력, 무엇보다 가격 협의와 원가 절감이 중요한 곳이었다. 회사는 무릇 영리를 목적으로 하니 어찌 보면 엄준한 기본 원칙인 셈...
문학에 진심이던 '문송'으로
첫 커리어 포지션은 '해외 마케팅'이었다. 그러나 막연히 상상하던 그런 업무는 아니었다. 뭣도 모르던 그 시절의 나는 아마도 B2C 나 서비스 기획 혹은 브랜딩을 상상했던 것도 같다. 근무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었던 건 다름 아닌 '커뮤니케이션'과 '문서작업' 그리고 '말하기'였다. 회의가 많았고 해외 담당 RM (Regional manager) 인지라 C.C (Conference Call) 도 많았고 그 외 사내 다양한 직군의 분들과의 소통은 사실 필수였다. 딜 수주 전후로 각 현지 법인들과, 프로젝트 K/O 후엔 PM과, 양산 전후엔 공정 관련 품질 담당부서와, 그리고 론칭 후엔 기능 혹은 사소한 사양 변경 사항의 F/U 을 위해. 그렇게 내부 유관 부서들과의 연결이 잦은 곳이었다.
공부해야 했다.
일을 하려면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 소통을 하기 위해서 그 분야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몰라도 너무 몰랐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전부 다. 그래서 배워야 했다. 공부가 필요했다. 제일 어려워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게 다름 아닌 그들의 '언어'를 아는 것이었다. 각 직군/업무 영역별로 사용하는 '단어'가 너무 달랐다. 물론 당연한 것이겠지만. 아무튼 갓 졸업한 나로서는 신세계였고 망망대해가 펼쳐진 것이다. WBS 가 뭔지 BOM 이 뭔지 PL 이 뭔지 SW Release note 가 뭔지, 메인보드가 뭔지 SOP가 뭔지 MES 가 뭔지. BDM이 뭔지. PDM 이 뭔지. 기타 등등 등등. 제품군도 다양했기에 해당 제품에 대한 최소한의 기술적 기능적 이해도 없이는 불가한 업무였다.
특히 언어가 애를 태웠다.
개발자 언어와 디자이너의 언어, 품질 담당자과 구매담당자의 언어. 무엇보다 last mile 일 수 있는 외부 고객의 언어, 게다가 해외 고객들이라면 정말 사용하는 '외국어' 도 모두 제각각이었으니까. 그것은 마치 '점심'이라는 단어가 누구는 '밥'으로 누구는 '한 끼'로 누구는 '식사'로 사용하는 것과 같았달까. 혹은 같은 단어도 이해 수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했다. 하여튼 내가 가장 먼저 배우려 했고 또 계속해서 노력했던 건 생각해보니 무엇보다 '언어'였던 것 같다. '말'이었고 '글'이었다. 최소한 일을 하며 오해를 덜고 관계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생각해보면 모두 '언어'에서 출발했다.
어떤 '말'과 '단어'를 사용하느냐가 그 사람을 대신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하다 말과 언어는.
아이의 마음으로, 낯선 세계의 언어를 익히며 일을 시작했다.
신규 제품과 파생 제품. 그리고 장르가 다른 제품군의 RFI/RFP 단계 전후로 제안이 시작된다. 고객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모두 다르다. 니즈도 원츠도 제각각인 셈이고 그걸 표현하는 건 더욱 천차만별의 형태를 지닌다. 그렇게 소통하며 본격적으로 일은 시작되고 흐른다. 각종 가격/기능/제품 제안 작업을 거쳐 어워드 (수주) 레터를 입수 혹은 내부 PoC 과제 등 여러 사유로 프로젝트는 가동된다. K/O가 되면 그때부터 긴장을 좀 해야 한다. 특히 나로서는 각 제품 장르별 해외 담당이 나눠진 조직이다 보니 메인 RM (Resional Manager)이라는 직함을 달고 일을 하게 된 대리 시절부터는 제품군이 세상에 나오기 전과 후 그 탄생과 소멸 과정 전체의 LC (Life cycle)를 담당하는 일꾼 모드가 된다. 마치 패션계의 MD (뭐든지 다 한다) 느낌이랄까.
담당 지역과 제품들, 프로젝트가 해를 거듭하고 늘어갈수록
나의 노트북 속 MS 아웃룩은 시끌벅적해졌다. 일본 담당이었을 땐 일본어 메일이 잘 보이기도 하고 미국 담당이었을 땐 한국어보다 영문 레터가 편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태국말을 덕분에 배워보기도 하고 출장 가서 똠양꿍을 먹다가 진정 맛의 다국적 신세계를 체험하기도 하고. 아무튼 정말 다양한 고객들을 접했고 여러 부서들과 깊고도 얕게 잦은 소통을 하며 정말 많이 배웠다.고객사로부터 요청된 사양과 기능, 양산 납기를 지키도록. Time to market을 놓치지 않기 위해 프로젝트의 각종 이모저모를 챙겼다. 마치 살림 관리하듯. 주로 SW와 HW, 기구설계적인 부분과 전체 기술적 WBS 매니징은 TPM (Technical Project manager) 께서 챙기지만 그 외적인 부분은 거진 RM 이 챙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SW, HW, 기구, 제조공정, CS, UX/UI/패키지 디자인. 심지어 NDA를 비롯한 각종 법률 계약서도 챙겨야 했으니. 각 팀의 언어와 그들의 업무를 얼추 알고 있어야 일이 진행되었다. 비록 뎁스는 얕았으나 그야말로 '지대넓얕'의 기분으로 언어를 습하고 소통하며 나름 문송으로 생존하며 하드 트레이닝이 반복되듯 가열하게 밀도 있게 성장했다......... (고 생각한다.) 마치 종합 '고객창구'가 되는 셈으로.
12년 하고 2개월을 일개미로 지냈다. 퇴사 후 2년 정도 즐거운 방황(?) 끝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일'을 하게 된 지금 이 현실에. 그런데 아뿔싸. 이곳은 또 다른 웰컴 투 원더랜드 느낌이 아니던가. 디자인 에이전시의 서비스 기획자가 되다니. 이전 직장과는 거의 180도 다른 느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내게는 마치 어부로 바다에서 물고기 잡으며 망망대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다가 산촌이라는 다른 필드로 와서 물고기가 아닌 도라지를 캐서 그 도라지를 활용해서 무언가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아무튼
기획자로 다시 로그인했다.
입사 첫날. 셀프 온보딩 프로그램으로 그간 새 회사의 종료된 프로젝트들의 산출문서들을 살펴보며 시작했다. 입이 떡 벌어졌고 머리는 멍해졌다. 다시 신입으로 돌아간 기분. 괜히 조급함과 불안함에 휩쓸리려 할 때. 나는 나의 '처음'을 되돌려내려 했다. 처음의 마음, 처음의 태도, 처음 시작하는 그 시절의 백지 같은 내가 했던 그 처음은 다름 아닌 '언어'를 배우는 것을 먼저. 그들의 용어, 그들의 언어가 이젠 나의 용어고 나의 언어가 되기를 바라며. 결국 우리의 언어로 우리가 일을 해 나가게 될 이 멋진 일터의 여정을 다시 시작해보는 걸로.
기획의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해 볼 수 있기를
사실 처음부터 그러한 큰 기대, 절대 하지 않는다. 해서도 안 된다. 마음의 부담과 조급함만 쌓이게 되니까. 시작은 뭐든 작게 움직인다. 그래야 적응함에 수월하다. 다만 내적 욕망과 꿈은 언제나 넓고 크게 상상하려 노력한다. 그래지는 건 개인 성격 탓일 테다. 여하튼 B2C 브랜딩이 당장 시급히 필요한 곳이 아니고서야, B2B 외부 클라이언트와의 협업이 대부분으로 보이는 현재의 일터에서. 그럼에도 늘 미래 먹거리를 위해 어떤 무형의 무언가를 유형으로 만들어 내려하시는 회사의 취지 덕분에 내가 이곳과 연결되었으니. 나는 이곳에서 다시금 노동의 기쁨과 슬픔을 감사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분명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 분명 어떤 면에서는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기에. 시작은 비록 연약하고 업무적 퍼포먼스도 당장 낼 수 없을 테지만 언젠가 서로 간 시너지가 나기를 기원하며 그저 이것 하나를 믿고 출퇴근을 해보는 요즘...
해를 보며 매일의 감사함을 느끼며
애덜 재워놓고 밤에 틈틈이. 당최 제대로 읽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장르의 확장- 너무 감사하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재밌어서 다행;
고정되지 않기, 익숙함을 멀리하기, 그렇게 열려 있으려는 마음의 힘을
믿고 싶다. 모른다 해서 주저하는 것보다 습해서 익혀서 직접 해 보려는 나름의 깡과 무언의 잠재된 똘끼. 여러 장르의 책을 읽고 쓰는 습관. 그런 것들이 언젠가 이 필드에서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여전히 작게나마 삶에서 '잘 살았다'는 말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조용한 희망.... UX 가 뭔지 UI 가 뭔지, 그리고 대표님이 용병(?)으로 쓰시려는 듯 '여러 업무 포지션을 맡길 생각이에요' 라시며 첫 trial로 'UX writing'이라는 단어를 말하셨을 때. 알아야 할 게 산더미구나 싶었다. 두려움과 조급함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긴장과 동시에 묘하게 두근거리고 기뻤다. 다른 건 모르겠고 'writing'이라는 단어 덕분에. 글은 묘한 힘을 가진 걸까. 단어와 문장. 텍스트의 힘은 내게 여전히 위대하고 강력하다.
해도 해도 너무 몰라서
약간의 각오를 하며 평일 회사에서 로그인과 로그아웃을 반복 중이다. 오랜만에 회사 다니려니 여간 피곤하다. 퇴근 후 육아하면서도 몸이 지친다. 아이들 샤워와 저녁 육아 퇴근까지 마치고 책 좀 볼라자니 자꾸 눈이 감긴다. 그대로 자 버리다가 새벽 3시에 깬다. 다시 식탁 위에 앉는다. 읽다 만 책을 핀다. 5시가 된다. 출근 준비를 한다. 식구들 챙기며 일까지 하려니 역시나 쉽지 않은 길이다. 육아 병행은 가장 물리적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단시간 내 선택과 집중. 즉 몰입함을 훈련해야 한다. 입사 후 이제 약 2주 차가 되었다. 몇 권의 책들을 읽으며 매일 출근 후 관련 업계와 커리어 분야의 각종 뉴스레터를 새롭게 구독하며 정말이지 눈 똥그랗게 뜨고 토씨 하나 안 빼뜨리고 모든 관련 글과 문서를 반복해서 정독하는 요즘...(눈이 피곤해지지만 그 또한 즐겁게) 노션과 PPT 감을 다시 살리도록 노력하고 무엇보다 생전 처음 듣는 '피그마'라는 툴을 PC에 깔며 이것저것 눌러보다 또 동공 지진 멈춰버리고. 그러나 매일 출근이 다시 이렇게 두근거린다는 건 초심자의 감정과 운인 걸까. 모르겠다. 다만 기획자로 지내기 시작한 이 시절을 그저 고맙게 생각하며...
무엇보다 본질을 생각해보려 한다.
세상과 소비자와 사용자의 욕망과 우리들이 원하는 게 무엇일지. 무엇이 더 괜찮고 또 되도록 좋은 인간의 삶을 만들 수 있을지. 무엇보다 Why (왜)라는 화두를 기억할 것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최소한 기획자라면.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무엇보다 내가 '다 안다'라는 식의 (소비자, 잠재 고객, 사용자들을) 오만과 편견을 없애려 노력할 것. 그것이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 '을 낳을 수 있고 내가 무지하다는 걸 모르는 인식만큼 위험한 건 없을 테니. 여하튼 그런 생각과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감히 몇 권의 책 읽으며 생각해낸 파편적인 지식 속에 느껴진 참으로 오만하고 어리석은 사견 일지 모를 테지만.
기획자로 새롭게 로그인된 이 시절.
읽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실패한 모든 것들.
이 매거진엔 이 시절 그 모든 '여정'을 아카이빙해 보려 한다.
시작.
어느 날 기획자로 로그인했습니다.
망망대해를 신나게 유영하듯.
덧) 그래서 이 매거진의 글꼴은 평소의 저와 다르게 (저는 나눔 명조를 여전히 사랑합니다만) 헤베티카로 결정했습니다. 이 폰트로 말하자면 로마자 산세리프 글꼴의 하나로서 1957년 스위스의 서체 디자이너 막스 미딩거가 디자인한 서체라 합니다. 저도 이제 알았습니다; 그만큼 이 계통의 썡초보라는 반증이며 이 글꼴이가 아니 세상에 '중립적인 성격과 견고한 구조로 가독성이 우수하고 현대적인 인상을 준다' 고 합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 죠.... 역시 인간은 비이성적인 동물입니다. 합리적 사고와 의사결정을 하기 쉽지 않은 뇌구조를 가졌어요. 편향적이고 인지부조화도 상당하죠. 네 인간은 믿고 싶은 걸 믿습니다. 저는 왠지 나눔 명조가 아니라 헤베티카를 써야 할 것 같았어요.... 네 그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