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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31. 2017

#60. 12월 31일, 친애하는 엄마에게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생각에... 엄마. 새해엔 편지를 쓸 거예요. 당신

“어쩌자고 또 일을 만들었어. 안 힘드니” 


 늘 이 말로 걱정과 쓴 조언을 동시에 주시는 당신과 떨어져 산 지 벌써 꽉 찬 7년이 흘렀어요. 

 가족이란 그런 걸까요. 다 같이 붙어 살 땐 몰랐던 것들이 떨어져 있으니 조금씩 알게 되는 것들 말이죠. 불편하면서도 편하고, 기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그립고 슬픈 시간들. 

 

 어쩌자고 당신의 딸은 '쌍둥이 엄마' 이름표가 붙었어도 여전히 또 일을 만들어 내고 있네요. 엄마는 아마 모르실 ‘일’들이 사실 많답니다. 아니, 아는데 모르는 척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저 또한 엄마의 ‘일’들과 오늘을 그렇게 떨어져 사는 7년 동안, 사실 잘 모르게 되었어요. 그것이 요즘은 이상하게 슬퍼집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 사이는 그렇게 멀어져 갔나 싶은 마음에 마음 한편이 이상하게 뭉클해집니다. 다만 이제는 ‘쌍둥이’라는 공통분모가 남았으니, 엄마는 어느새 할머니로 다시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버린 걸 지도 모르겠어요. 


언제나 '일'을 달고 산 당신을 기억합니다. 

 보육에 교육에 훈육에 집안일에, 돈을 버는 것 이외의 모든 가사 노동을 겸하면서도 쉽게 힘들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엄마가 언제나 신기했어요. 그 모습이 엄마가 살았던 그 시대의 나름 깨어있는 신 여성임과 동시에 씁쓸한 대한민국 전통 여성 캐릭터로 살아오셔야 했던 걸까요.


 당신은 늘 주춤하는 딸을 걱정하시는 걸 압니다. 

오늘, 12월 31일의 카톡 메시지가 그걸 늘 알게 해주거든요. 

올 한 해, 쌍 디들 키우느라 고생 많이 했다. 늘 든든한 친정가족들이 여기 있다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해가 다가오고 있네요. 이 문장을 쓰는 지금 어느새 몇 시간도 채 남지 않았어요. 올해 참 여러 일들이 있었죠. 그중에 팔 할은 아마 직장과 육아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분히 고의적으로 다른 세계의 ‘일’들을 만들기로 작정한 딸이 있었으니. 여전히 저는 이런 캐릭터로 흘러가 보고 있어요. 어디까지 일을 벌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비단 오늘뿐만은 아니었단 걸 엄마도 모르진 않으실 듯해요. 원래 그랬잖아요. 


 당신이 제게 알려 준 고마움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책’이었어요. 

  그러나 첫 직장은 그토록 바라던 출판사가 아닌 꽤 탄탄한 중견 대기업의 해외 마케팅이라는 이름 걸출한 곳을 선택했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닌 그냥 평범한, 아니 사실 우리 가족은 평범에서 조금 더 모자라 그냥 평범해지고자 노력해야 하는 4인 가족 구성원이었던 것 같아요. 늘 엄마가 힘들어 보였으니까. 그 4인 중 서열 3위 (아니 2위?)인 1인 구성원인 저로서는 돈은 꽤 중요하다는 걸 어려서부터 느꼈답니다. 그러니 취업의 길도 당연한 선택이었다는 걸 엄마는 아실 거예요. 회사에서 입사 선물로 고급진 호텔 브랜드 급의 2단 케이크와 축하 꽃다발이 집으로 배달되었을 10년 전, 저는 어깨 으쓱했으니까요. 


 그 이후 10년, 이제 올해로 딱 10년을 채웠어요. 

 엄마. 저는 일을 하는 엄마처럼, 일을 하는 여자가 되었어요. 물론 다른 양상, 다른 형태나 밑바닥의 욕망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 봐요. 그리고 가계부를 쓰는 엄마를 보면서 옆에서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낙서를 하게 되고 또 용돈기입장을 써 버릇하는 아이였으니. 사실은 일도 돈도 싫진 않았지만 딱히 좋지도 않았어요. 그럼에도 내 삶에도 일과 돈이 있어야 된다는, 이상하게 나도 그래야 될 것 같다는 심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일종의 미러링일까요. 다행히도 엄마의 미러링은 제겐 좋은 방향으로 결국 거두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첫 번째 책은 대부분 엄마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네요. 엄마는 제게 그렇게 커다란 존재였어요. 


엄마는 제게 많은 감정을 남겨 주는 존재라는 걸, 그래서 이제는 제 이야기를 좀 고백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 엄마. 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하나 둘 꺼내 볼까 해요. 엄마가 미처 몰랐던 제 기억의 시간들, 그리고 반대로 내가 몰랐던 엄마의 시간들에 대한 상상과 바람, 남은 시간의 염원들 전부.. 

 

 새해에 털어놓게 될 마음들이, 지금 이상하게 무척이나 기대되고 흥분되고 또 떨리면서 이상하게 사무치게 슬퍼집니다. 왜 인지 엄마는 아실까요. 방금 전 읽은 책 때문에? 혹은 엄마와 아빠에게 전화 통화를 마치고 이상하게 눈물을 흘려버린 제 마음 때문에? 답신으로 온 카톡과 짧은 문자 메시지의 '우리 딸'이라는 단어 때문에? 


 아뇨. 어쩌면 바로 제 기억 때문일 지 모르겠어요. 엄마. 요즘 이상하게 저는 삽질을 심하게 하고 있답니다. 오늘도 몇 번이나 삽질을 하다가 애꿎은 아가들에게 화를 냈는지 몰라요. 모지리죠. 어쩌면 이런 슬픈 느낌 때문에... 

생각이 선명하고 마음이 간절할 때
이제는 그저 이야기를 미루지 않고 해내야겠다는 이상한 의지가 생긴 셈이죠. 


 그러나 엄마 사실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엄마든 나든 둘 중 하나가 기억이 점점 흐려진다면 우리 두 여자는 또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라는 다분히 어리석고 미련 맞고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감정에 푹 빠진 현실에 도움 1도 안 되는 생각과 상상 말이죠. 작년에 엄마가 제게 한 말을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걸요. 꼭 쓸데없는 건 이렇게 기억을 잘 하니 답답하네요. 그때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답니다. 


“오각형을 두 개 겹쳐서 못 그리면 치매래.”
“엄마 갑자기 그건 왜 말해?”
“그래서 그려봤어. 그랬더니 아직 잘 그려져. ”


 우리 두 여자는 농담 삼아 섞인 이야기를 주고받았죠. 그날도 어김없이 쌍둥이 밤잠 보초를 뜬눈으로 새던 그 날, 엄만 아실까요. 화장실에서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고 얼마나 눈물을 짜고 또 짠 탓에 다음날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는 당신의 딸을 말이죠. 두렵고 또 공포스럽고 아니 그전에 사무칠 듯한 슬픔이 갑자기 밀려온 탓에. 다분히 감성적이고 감정적이고 이성의 나사는 당시에 더더군다나 없던 제가 말이죠. 우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죠.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게 당연하지만, 
그 기억이 완전히 없어진다는 건, 때론 얼마나 사무치게 무서운 일일지.

 엄마. 그래서 오늘이라는 시간이 이상하게 너무 감사해요

 곁에 있는 당신이어서, 냉정하고 차가운 말도 서슴지 않고 퍼부어 대는 모녀 사이일지언정, 그 안엔 사랑이 숨어 있었다는 걸 모르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 사랑의 형태 속에 엄마가 미처 몰랐던 나의 하루, 반대로 내가 모르는 당신의 시간, 평행선 같이 흘러가는 우리들의 시간이 하나로 합쳐졌으면 하는 바람일지 모르겠어요.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짜 고백과 진심을 털어놓는 새해를 시작해 볼까 해요.

 당신에게 쓰는 이 편지들을 물리적 시간과 여유가 되는 한 차곡차곡 많은 진심의 에너지를 쏟아서 모아볼 까 해요. 물론 전달할 수 있을 진 모르겠어요. 같이 살았어도 미처 몰랐던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서로가 알게 되는 순간, 기쁠까 슬플까 혹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감정을 미리 고민하고 상상하기 이전에, 다만 그저 담담히 이야기해 볼까 해요. 

 그러니 엄마, 우리 좀 더 기쁜 새로운 한 해가 되기를... 
저로선 벅차오르는 1년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죠. 


새로운 매거진과 새해를함께할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dearmymother

그녀와 제 시간이 같이 흘러가는, 이 시간들을 소중히 생각하며 한 글자 한 문장을 편지 안에 고스란히 담아낼 까 합니다.

벅차고 기쁜, 또 그리울 새로운 한 해가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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