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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03. 2018

엄마, 어디야  

엄마도 늘 내게 물었죠. "어디야"라고... 

편지 하나) 난 당신의 행방이 늘 궁금할 것 같아요   



엄마. 

 첫 번째 편지를 이렇게 시시한 제목으로 시작하다니. 왠지 웃음이 나오는 지금입니다. 

사실 어떤 이야기를 시작으로 엄마에게 편지를 써 내려갈까 한참을 주저했거든요. 그래도 망설임은 잠깐이었어요. 당신과 나, 엄마와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행히 우리 둘 사이에 흘러나오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제가 아직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니 정말 다행이죠. 전하고 싶은 마음도, 하고 싶은 말도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은 절 기쁘게 만들거든요. 그 대상이 지금 당신, '엄마'이니 더더욱 기쁠 수밖에요. 


그건 아직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의미일 테니까..


  당신과 나 사이의 기억을 여전히 둘 중 하나인 제가, 이렇게 간직하며 산다는 것이 가끔은 신기하기도 합니다. 좋았지만 또 아파서 절절했던 기억들. 기뻤지만 동시에 참 슬펐던 당신과 나 사이의 이야기들을 이제는 이렇게 꺼낼 수 있는 것도요. 어쩌면 아직 내 마음속 에너지가 당신에게 열려있고 또 제게도 남아있다는 것일 테니까. 이 사실 하나만으로 편지를 써 내려가는 용기가 사뭇 생기는 지금이에요. 적막하고 고요한 주위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지막이 목소리를 꺼내볼 수 있는 용기 말입니다. 


 그래요 엄마.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늘 용기가 필요한 법이죠. 

 그래서 지금 이상하게 떨려요. 엄만 모르셨겠죠. 쉽게 거침없이 나불대는 캐릭터가 바로 당신의 첫 번째 아이였으니까. 물론 편하고 좋았어요. 늘 엄마와 이야기를 섞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나 한편으론 엄마가 내 말 한마디로 인해 상처받지 않을까, 아니면 화를 내면 어쩌나, 언젠가부터 조마조마하며 마음의 말들은 머리에서 몇 번씩 필터 하며 꺼내곤 했어요. 나 한 명은 엄마한테 힘든 가족 구성원이 돼주고 싶지 않다는 어린 치기로 인한 설정값일지도요. 우습죠. 다만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저도 몰라요. 그러니 아무도 모를 테죠. 나도 모르는 것을...누가 알 수 있겠어요. 


 태어나고 아주 어렸을 떄 기억은 사실 많이 없어요. 

 엄마에게 들은 것들이 어쩌면 내게 만들어진 기억이라면 기억일 수 있겠죠? 자아의 의지로 '의식'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 무렵은 아마 유치원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무지개 유치원. 엄마가 나와 동생을 부단히 보내 놓고 사실은 봉제 인형의 눈을 붙이러 다니며 봉투를 접기도 했고 출판사 책을 팔러 다니기도 했을 그때... 맞나요? 제 기억이 맞다면 엄마는 늘 '일'이라는 것을 해 왔던 여자였죠. 일 하는 당신 말입니다. 


 난 늘 엄마의 행방이 궁금한 아이였죠. 

유치원에서 다녀왔을 때 엄마가 없기라도 하면 대문 앞에서 그렇게 쪼그려 앉아 있는 제 모습을 기억해요.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내 유일한 보호자 같은 존재 말이죠. 그때부터 큰 눈에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을 달고 산, 울보 캐릭터 설정이 제대로 박혀 버렸는지, 조금이라도 늦을 까 싶어서 헐레벌떡 달려왔을 당신이었을 텐데. 양손에 검은색 봉지로 가득 시장을 보고 오신 엄마를 보자마자 나는 맺힌 눈물을 기어코 터뜨려 버리기 일쑤였죠. 당시에 핸드폰이라는 게 없었잖아요.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어요. 기다리는 일... 그래서 기다림에 익숙하고 또 견딜 수 있는 내성이 길러졌나 봐요.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엄마 어디야 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내가. 

나의 그 말이 엄마에게 얼마나 때론 무거웠을까 싶은 생각을, 저는 이제야 하게 되었어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삼십 대 중반인데. 그러나 그때 나와 같았을 엄마는 한참 어렸던,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을 법한 이십 대 중반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 그 젊고 아름다운 나이의 엄마는 두 아이를 보살펴야 했던 이른바 육아 3종 세트인 양육 보육 훈육을 더불어 집안일에 부수적인 경제적 도움을 위한 부업까지 도맡아 하셨죠. 아니. 어쩌면 한 게 아니라 버티고 있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듯싶어요.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엄마 어디야'라는 나의 그 단순한 말은, 고단한 엄마에겐 얼마나 복잡했을까요


누구나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한다고 하잖아요. 

내 기억에 엄마는 늘 바빴지만 활기찼어요. 그래 보였어요. 큰 목소리에 부단히 움직이는 당신이었죠. 긴 머리는 보지 못했어요. 늘 짧은 단발 아니면 커트 머리의 엄마였으니. 긴 생머리의 예쁜 엄마이기를 바랐던 나는 가끔 투덜댔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투덜거림이 참 미안해요. 머리를 기를 새가 없이 싹둑 잘라내야 했던 그 시간들을.. 나는 그때 몰랐으니까. 


 엄마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들은 더 자라기만 하고 바라는 것도 많고 말도 잘 안 듣는 남매가 되어갔죠. 더군다나 소처럼 성실하게 일을 한다고는 하나 정말 '일만' 해낸 무 뚝뚝의 대명사인 전통 남성 캐릭터였던 아빠, 그리고 두 아이들 틈에서 마음껏 내색도 못하고 힘들고 외롭게 살았을 엄마의 모습이 점점 눈에 들어오는 요즘입니다. 


엄마가 동생과 나, 우리 둘을 바라보다가 때론 멀리 날아가고 싶었을 걸 생각해요.그래도 가지 않고 곁에 남은 당신에게 고마워..


그때 '어디야 엄마'라는 말을 좀 덜 할걸..이라는 늦은 후회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전래동화 테이프를 틀어 놨었던 기억이 나요. 항상. 그 소리가 알람 소리였고 엄마의 얼굴이 내 눈에 비치면 그제야 안심이 돼서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어요. 그냥 그 모든 일상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난 좋았지만 엄마의 그 삶은 비단 좋은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었겠죠? 


내가 모르는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요
내 눈에 절대 보이지 않을 엄마의 마음, 엄마의 시간.. 당신의 시간이 있긴 했을까요


엄마 어디야를 외치며 엄마 껌딱지로 살았던 나와 동생이 곁에 늘 있으니 엄마의 마음속에는 말 못 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담아둔 채 해 내지 못한 엄마의 꿈을 모두 포기했어도, 꿈이라는 단어 조차 잊고 지낸 당신. 시간을 흘러감에 자신의 삶을 포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깡과 다부짐, 시간을 그렇게 바쁘고 고단하게, 그렇게 살아 냈었던 당신을, 나는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엄마 어디야"
"지금 병원이야, 검사 대기 중. 밖이야?"


"엄마 어디야" 
"지금 시장이야, 뭐 사러 나왔어 어디냐?"


"엄마 어디야"
"부동산이지, 일하는 중이야 회사야?"


"엄마 어디야"
"밀린 집안일 중이지. 어디야 밥은 먹었어?"


"엄마 어디야"
"운동 중이야. 쌍디들 잘 있어? 어린이집 잘 갔어? 


엄마의 그 시간 그 장소가 늘 궁금할 것 같아요 

난 여전히 그럴 것 같아요. 비록 예상되는 장소와 예상되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법한 엄마일 지라도. 오늘은 문득 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럽게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코끝에 탁 내려앉아서 무슨 영문에서인지 눈물이 그렁그렁 또 맺히려고 할 때, 그렇게 엄마한테 전화를 걸면 늘 엄마도 내 안부와 행방을 묻곤 했었잖아요. 물론 이제는 엄마의 '어디야'라는 주체가 나에서 우리 쌍둥이들, 당신의 손주들로 바뀐 것이 커다란 변화이긴 하지만. 


엄마... 우리 아직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행방을 궁금해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죠? 


이십 대의 그 '어디야' 소리가 듣기 지긋지긋했어요. 사실 벗어나고 싶었어요. 집에서. 엄마에게서. 아빠에게서. 그러나 생각해 보면 반대로 어린 시절의 내 '어디야' 소리가 엄마는 참 지긋지긋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 엄마가 아빠의 병치레로, 그리고 당신의 병치레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그때, 엄마가 너무나도 조용하게 '어디야'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던 그때.... 아주 잠깐이었던 그때도... 엄마는 지긋해서 도망치고만 싶었을까요. 


오늘은 엄마 어디야 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엄마에게 톡이 오네요. 역시 엄마 다워요. 


"둥이 맘, 애들 어때? 어린이집에 잘 갔어? "
"응 엄마. 어디야 "
"집이지 어디냐. 수고해. 옷 따뜻하게 입고. "
"응 엄마.."
"무슨 일 있어? "
"아니. 그냥. 엄마 고마워"
"무슨 일 있냐? 연락해 급할 때. 혼자 끙끙대지 말고."
"아니래도. 걱정 마셔 ㅋㅋ


'ㅋ'를 보내야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엄마를 이제는 알 법한 나이가 점점 돼가는 걸지 모르겠어요 



엄마. 우리 이렇게 여전히 '어디야'라는 걸 묻고 지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되도록 오래오래...

난 여전히 당신의 장소, 그 시간,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의 한 마디를 좀 더 해 낼까 해요.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엄마의 시간을 내가 알고 있는 이 시간이 유효할 때. 
"엄마 어디야"라고 자주 말하고 싶어요.. 요즘은 그래요. 



전화기를 발명한 분에게 새삼 너무나 감사한 오늘입니다. 

세상의 가장 큰 위대한 발명품은 '전화'일 거예요. 물론 지금은 메시지로도 닿을 수 있다지만. 어쨌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유일하게 육성으로 닿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전화기' 가 새삼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인지....


울먹이는 목소리를 대번에 눈치채는 대단한 엄마, 나는 당신에게 그러니 여전히 전화를 걸 생각입니다. 

 

 물론.. 전화도 닿을 수 없는 거리의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이에게 닿을 수 있는 도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곁들여 봅니다. 엄마의 엄마에게도, 엄마가 힘겨워서 삶에 부딪힐 때 그녀에게 전화를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받지도 울리지도 못할 다른 세상의 곳에서 할머니가 전화를 걸 리가 없을 테니까... 나이를 먹어 가지만 아직 젊다 하는 오십 대의 엄마의 몸이 요즘 들어 부쩍 약해질수록 엄마가 힘겨워 주저앉고 싶을 때 그런 전화기는 있기가 불가능 한 걸 아니까.. 그래서 더 안부를 물을 생각이에요. 올해는 더더욱 할머니의 몫까지. 


엄마 어디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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