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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26. 2017

#59. 생각은 모든 것에 선행한다

올해의 마지막 일주일을 지내며  

언제나 변함없이 늘 마음에 담아둔 문장이 있다.

2017년의 작은 다이어리 맨 앞 페이지에 이 문장을 적었던 날,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었다. 그게 벌써 일 년이 다 돼간다.


생각은 모든 것에 선행한다.

 그 모든 것에 선행하는 생각이 정말 후졌던 때가 있었다.

 재작년 이 맘 때는 내가 생각해도 사실 나는 못나고 모난 생각들만 줄곧 하고 살았던, 모지리였다. 그야말로 후지게 살았다. 이것저것 핑계도 참 많이 댔다. 가장 미안한 핑계는 단연코 '육아'였다.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게 육아란 결혼해서 출산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는 내 모든 24시간이 자발적 복종의 노예로 사는 삶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내게 다분히 아쉬울 게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에 불과했다. 아이가 그저 사랑스러우니 잘 키울 거라고, 물고 빨고 할 거라고. 쌍둥이니까 기쁨도 행복도 두배일 거라고.라는 식의 위로 혹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내게는 전부 개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극한이었다.

 딱 내 예측대로였다.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하자마자 아이를 1분 간격으로 낳고 회음부는 아물지 않은 채 마취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이상하게 찌릿 거리는 통증과 동시에 며칠 동안은 소변줄을 꽂은 채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신세로 병원에서 보냈다. 그러면서도 소위 '애미다움'을 발휘하기 위해 3일 차가 되던 날엔 퉁퉁 불은 코끼리 다리를 이끌고 신생아실로 내려가 아기들에게 초유를 먹인다고 나오지도 않은 젖을 억지로 아기들에게 먹이러 들락날락거렸다. 그랬었다. 그 시기의 내 생각은 사실 모든 행동의 선행이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극한으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상황이 좋아질리 만무했다.

 신생아 1년의 육아 생활은 더더욱. 친정 엄마와의 육아 고군분투기는 더더더더 더욱. 말해서 뭐하랴 싶을 정도로, 세상의 어떤 워딩과 텍스트가 그 시간들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저 마음에 담아 둔 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겉포장될 테다만, 사실 지금도 문득 그때 생각을 하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딱 그 정도였다. 그때의 내 모든 생각은 바닥이었고 바닥의 생각을 늘 하고 있는 후진 시간들 속의 내 행동은 그야말로 더 거지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수첩에 한 문장 적어 내렸던 게 바로 우연히 이 문장 때문일지 모르겠다.

 생각은 모든 것에 선행한다는 진리를 나는 모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이 딱 후진 그 정도니까, 지금의 내 행동도 후질 수밖에 없잖아.


 어느새 혼자 문장을 적어 내리고 중얼거리듯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고. 친정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둘째 이유식 먹이다가 우는 나를 보고 왜 또 우냐는 식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그녀도 같이 울어 버렸던 그 기억...


얼음장 같은 시간들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 덕분에 더 단단해 진 것 같아. 더 멋진 결정체는 항상 그렇게 탄생되듯..


어느새 그게 일 년 전의 일들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올해, 나는 정말 반대라면 정반대의 삶을 다시 살아내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누군가에게는 별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내게는 정말 다 큰 것들을 이룬 것 마냥 벅차오르는 느낌이다. 이룬 것들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 잠시 생각해 보니, 정말 신기한 건 이 모든 것들이 사실 상상과 생각,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생각으로 인해 선행된 행동들의 결과물이나 다름없다.


1. 글을 다시 쓰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할 기회를 얻었다. 부족한 문장들이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져 가고 있었다. 어느새 매거진은 몇 개로 욕심 것 부풀어 오르고, 그중 가장 자유로운 글들을, 나만의 문장으로, 좋아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공간에서 한껏 펼쳐낼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시간들이 이상하게도 간절했던 나머지, 쓰다가 어느새 감정에 북받쳐서 울고 있는 나도 발견했다. 여전히 감정 조절 나사가 가끔 없어지곤 하는 틈이 있지만, 그 틈새조차 나는 사랑하게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감사하게도 출간 기회도 주어졌고 워드 160매의 글자포인트 10으로 빡빡한 나만의 스토리들로 초고를 얼마 전에 보냈다. 단편 소설 3편을 다시 공모전에 트라이했고, 줄줄이 낙방이었지만 다시 써낼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용기도 얻었다. 물론 줄줄이 낙방은 매번 맛볼 때마다 슬프지만 그 또한 감내할 깡이 같이 생겼다.


2. 몰입해서 다시 읽게 되었다.

 읽는 삶을 유지하고 싶었던 나는, 복직하고 바로 회사 안팎으로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꽤 열혈 회원(?) 이 되고 싶었던 이 또한 욕심쟁이였던 나는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톡이 오고 가는 한 독서 모임의 톡방에서의 이야기들은 나로 하여금 여러 영감과 자극이 되어 주시곤 한다. 언젠가 오프라인 모임으로 만나게 될 톡의 그분들은 아실까. 내가 얼마나 그와 그녀들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지. 한 번이라도 마주하면 그건 즉 인연이라는데, 내가 꽤 인연 집착녀라는 것을 그분들은 아실까. 기대된다. 내년의 어느 날 우리들의 만남이.


읽고 쓰다 보면 가끔 내가 사는 이 세계의 경계가 없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여러 곳으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가 아닐가 싶어. 글과 책이란... !


3. 삶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혜안과, 겸손함을 장착하게 되었다. 그놈의 육아 덕분에.

  이렇게 말하면 육아에 회의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삶의 중요한 치 중 하나인 자유를 일시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삶이 다분히 고통스러웠다. 그러니 아이의 존재도 육아의 시작도 마냥 설레거나 기대되거나 하다기 보다는 그저 두려움의 존재였다. 내 삶의 통제권을 상실한 그야말로 자발 노예의 길을 택했으니, 육아의 시간은 나로선 꽤나 고통스러운 과업임은 분명했다. 여전히 고난의 순간은 일상 속에서 종종 나를 엄습한다. 애 엄마로서 애 보는 것이 늘 즐겁지 않다는 걸 나는 아주 지극하게 인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대놓고 말한다. 내 새끼지만 하루 종일 건사하는 삶이 정말 기쁘지 않았다고. 슬프고 불행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나는 항상 아이 핑계를 댔으니까. 왜 하필 둘이어서, 왜 쌍둥이여서 이 못난 말을 달고 살았으니까.


 그러나 반대로 그 아이 둘 덕분에 나는 없던 겸손함을 장착해 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이가 없던 시절엔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새로운 이들의 삶의 모습을 점점 알게도 된 듯싶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말귀를 알아듣고, 그 둘과 우당탕탕 해 대다가도 잠든 아이들의 썌근거림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인간이 되어 버리다니.... 이건 정말 경험하지 않고는 감히 말로 하지 못할 테다. 엄마나 아빠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극한의 기쁨과 슬픔. 아마 이 시간들 덕분에 나는 삶을 좀 더 다양(?) 하게 바라보는 눈과 동시에, 타인들의 삶을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는 (변수가 너무 많기에!) 겸손함을 장착해 가는 중이다. 그놈의 육아 덕분에.


그 시간들 덕분에 오히려 마음챙김을 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다니. 정말 많이 변했구나. 나...


좋은 생각을 더 하게 되고, 나쁜 생각을 덜 하게 된, 나의 세계관은 오늘도 자라나고 있다.

 차가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의 모든 행동은 닫혀 있고 차가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따뜻하고 사랑 가득한 설렘 뿜 뿜인 생각을 터무니없이 하고 있을 때, 나의 모든 행동과 움직임은 이상하게 열려있고 그 덕분에 연결된 기적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니 역시 생각은 모든 것에 선행된다는 이 믿음 충만한 문구는, 2017년의 내 다이어리 속에 적어 내렸던 나의 소원들을 하나 둘 작고 크게 이루게 해 주었다.


작은 선한 생각이, 나비효과가 되어 커다란 움직임에 선행하는 불꽃이 된다.
그렇게 선순환이 시작된다. 생각은 언제나 모든 것에 선행하니까...  


내년 다이어리에는 올해보다 좀 더 욕심 충만한 것들을 적어내 보았다.

 나의 이 생각과 바라는 상상의 장면도 천천히 365일 흘러가면서 어느새 내 곁에 배달되어 다가와 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말이다.


책 출간과 스토리 펀딩이 선순환되어, 초록어린이재단에 늘 그랬듯이 좀 더 통큰 기부를 할 수 있기를.

좀 더 다양한 책을 통해서 여러 새로운 세계들을 직 간접적으로 체험하여 변화하고 또 성장하기를.

읽고 쓰는 이 시간들을 365일, 내년에도 좋은 시간과 공간과, 만나고 싶은 인연들과 함께 하기를.

사랑하는 내 사람들이 건강한 시간들을 잘 보내시기를. 그리고 그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또 얻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사랑 에너지의 과반수 이상을 쏟고 있는, 우리 집 남자 1호 2호 3호가 무탈하게 큰 일 없이, 건강하게 내 곁에 함께 하기를. 그리고 내가 그 세 명을 바라봄에 기쁘고 벅찬 순간에 함께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여전히 실수투성이고 외로움에 가끔 눈물 흘리는 나약해 빠진 내가 있을지언정, 이 생각이 굳건한 이상


우리는 결국 기쁜 365일의 연속을 함께 맞이할 수 있기를


 믿고 또 믿어 보는 오늘, 지금 이 순간, 그런 의미에서 나는 쉬는 휴가인데도 불구하고 일을 위해 회사로 나간 그이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편지지를 꺼내 들었다. 이 편지를 12월 31일에 건네볼 생각이다. 그가 편지를 읽어 내렸을 때 가슴에 찾아오기 시작한 그의 만성 질환적 통증이 조금은 사그라들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살아있다는 것이 요즘에는 왜 이렇게 버거우면서도 또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연말 그리고 새해이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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