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Nov 23. 2024

간병의 민낯, 울분

5차 항암 전 

'그 일'은 매번 순식간에 벌어진다. 오늘도 그랬다. 건조기에서 빨랫감을 빼려 잠깐 눈을 돌린 사이였다. 손은 분주하게 빨랫감을 빼내면서 혹시 싶어서 목소리는 아이에게로 향해 여느 때처럼 말을 건넸다. 별일 없냐고. 뭐 하냐고. 그러나 정음이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순간 설마 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거실로 눈을 향하니 아니나 다를까. '그 일'은 이미 진행 중이라는 게 두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두 손은 이미 토사물이 묻을 대로 묻어 있었고 거실 바닥에 깔린 정음이 전용 저상 매트리스 위는 이미 1차로 토한 흔적이 가득 묻은 채 누군가 치워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재빨리 바가지 두 개를 꺼내 달려가 정음이의 턱 밑에 갖다 댔다...



구토의 흔적으로 흠뻑 젖은 매트리스 시트. 눈에서는 눈물이, 코와 입 사이에서 토사물과 찐득한 침이 범벅이 된 채 그대로 일시 정지 된 아이. 한 손으로는 아이의 턱에 바가지를 대고 또 한 손으로는 곽티슈를 연신 빼내어 아이의 코를 풀어주고 입을 닦아주는 한 여자. 두 손의 기능은 이미 풀가동 중이며 동시에 뇌는 재빨리 할 일의 우선순위를 배열시킨다. 아이를 먼저 씻겨야 한다는 생각. 다만 샤워를 하려면 중심정맥관에 방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 이미 옷은 토사물 범벅. 옷을 먼저 제대로 벗기지 않으면 역한 냄새 때문에 2차 구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주의할 것. 혼자 걷지도 서지도 못하는 거동이 힘든 아이를 우선 의자에 앉힐 것. 그리고 옷을 조심스럽게 벗기고 방수를 재빨리 하고 화장실로 안착시킬 것. 그러나 아차. 화장실엔 목욕의자가 없다....! 그러니 베란다에 말려 둔 목욕 의자를 가지고 와야 한다. 이런 여러 생각들이 뒤죽박죽 뒤섞인 채 나의 뇌는 이미 풀가동이 된 채 일의 우선순위를 배열시키고 행동을 가동한다.



정음이의 구토는 조금 오랜만이었다. 아니 조금 더 적확히 말하자면 이런 '대토'는 오랜만이었다. 작은 구토 정도는 며칠에 한 번씩 계속되었기에 이젠 토사물 치우는 데에도 그리 화가 나지 않고 아이의 간병은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으나. 착각.... 여전히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면서 동시에 부르르 떨리는 두 손. 그러면서 갑자기 무언가 심장 끝에서 뜨겁게 목울대로 치닫는 게 느껴졌다. 그건 마치 절대 꺼뜨릴 수 없이 주체 없이 활활 타오르는 어떤 분함과 분노가 뒤범벅된 감정 같은 것... 



울분. 



간병의 민낯은 언제나 '울분'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반년이 지났다. 어느새 반년이다. 그 정도면 모든 게 '익숙' 해 졌다고 자신했었다. 정음이의 토사물과 구토 특유의 비릿한 냄새. 그뿐일까. 나에게만 보이는 엄청난 짜증과 히스테리. 식음전폐. 해골처럼 점점 더 바싹 말라가는 앙상한 몸. 지킬박사와 하이드 뺨 칠 정도로 온순해졌다가 돌연 변해버리는 환자의 양면적 모습. 한 순간은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어쩔 줄 모르다가도 또 한 순간은 말을 안 들어도 저렇게 안 들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라 미워서 꼴 보기 싫은 순간. 간병하는 엄마로서 정음이 곁에서 한 순간도 떠나지 않으면서도 매일 나는 어떤 경계를 수십 번 오고 가며 느끼게 되고 마는 것이다. 차오르는 울분을.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p.23 필립로스, 울분



필립로스의 '울분'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는 사뭇 다른 것 같으면서도. 그들이 더 낫겠다 싶은 머저리 같은 생각을 나는 기어코 하고 말았다. 토사물이 묻은 거실 바닥을 걸레질하면서. 애벌빨래가 된 아이의 옷을 세탁기 안에 던져 넣으면서. 다만 이런 못난 간병인의 처지를 정음이는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양치와 가글을 시키는 내 손엔 이미 어떤 힘이 쥐어져 있었다는 걸. 널 대하는 어미의 냉랭한 모습. 말이 없는 엄마. 그래서 덩달아 말이 없어진 아이. 그러다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고 기어코 참고 있다가 터져 나온 눈물. 



미안해... 



그 문장을 듣자마자 나는 갑자기 울분이 차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미안하단 소리 하지 말라고.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바로 너의 그 미안하단 말이라고. 미안한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라고. 너 이렇게 만든 나. 이 상황에서 도망치지 못한 채 갇힌 나. 갇혔다고 생각하고 마는 못난 인간. 널 불안하게 만든 내가 미안한데 왜 네가 미안하냐고 말하느냐고.  



상황 종료. 



얼추 씻기고 다 치우고 난 뒤. 그렇게 시간은 다시 흐르고 몇 시간이 흘러가니 그제야 다시 생기와 기운을 되찾은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최소한 핸드폰과 태블릿을 쳐다보며 웃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는 너의 모습이 보였을 때. 짜증을 낸다는 건 에너지가 있다는 반증.... 차라리 힘 없이 누워 있는 것보다는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정음이가 훨씬 낫다는 생각.... 




그래도 말이다...누워 있는 너보단 앉아 있고 화 내는 널 더 원한다... 그게 간절한 엄마의 마음이다....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초저학년 첫째와 거동이 힘들어 휠체어 생활을 하는 소아암 환우의 간병을 병행하며 가사 육아 살림 외래 치료를 도맡아 해내는 일상은.... 입 밖으로 차마 내뱉지 못하지만 백지에 만약 이 상황의 '이 감정'을 어떤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단연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써 내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고 싶은 강렬한 욕구. 환자보다 더 병들어 가는 어떤 마음. 쉴 새 없이 차오르는 울분...



언제쯤 안 울까. 힘들어서 울고. 분해서 울고. 화가 나서 울고. 갑갑해서 울고.... 정말 끝이 없다. 



5차 항암이 다음 주부터 시작된다. 항암 입원 자체는 길지 않지만 언제나 곤욕스러운 건 항암 이후 열이 나거나 이상증상이 발생하면 바로 응급실 행 재입원이다. 여태껏 반복된 패턴을 고려하면 한 달 중 병원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언제나 물리적으로 꽤 많았었고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서 입원 들어가기 전에 해 두어야 할 것들을 부지런히 진행시켰다. 



11월 가계부와 치료비 내역을 정리해서 남편에게 공유하는 일. 그래봤자 수고했단 응원의 말 한마디 듣지 못하는 분하고 갑갑한 현실이지만. 최근에 신경외과와 재활의학과 검사 및 초진도 보았다. 정음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과 동시에 뇌병변 장애신청등록을 위해 몇 가지 서류들을 챙기는 일. 소견서와 진단서, 의무기록 사본과 같은 것들. 그뿐일까. 빈 공백기에 남겨진 첫째 아이 숙제나 학습 밀리지 않게 주간학습계획표라든지 아이 학습 독려 시키고 엄마 없어도 불안함 없이 외할머니와 잘 지내줄 것을 지속적으로 교육시키는 일. 그리고 '기타 등등'에 해당하는 모든 아이 관련된 '챙김'의 영역... 



해보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별 거 아니게 보이겠지만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꽤나 신경 쓰이고 귀찮으면서도 꼼꼼히 관리하고 확인해야 하는 '일'에 가까운 것들... 그것이 양육 그리고 간병... 물론 친정어머니 안 계셨으면 그나마 이 정도도 못했겠다는 안도와 죄송함... 동시에 혼자 아이 낳은 건 아닌데 왜 혼자 꾸역꾸역 돌파해 나가고 있다는 울분이 차오르는지. 손주 걱정과 실질적 도움은 오로지 정음이의 '외할머니'와 '엄마' 두 여자뿐인 우습고 화나는 현실....



오른손 검지와 중지 그리고 이제는 손바닥까지. 요즘 내 손은 계속 무언가에 다친다. 종이에 베이든가 모서리에 찍히든가. 둘 중 하나다. 정음이는 점점 말라가지만 그 반대로 나는 계속해서 헛 살이 찌고 있다는 걸 감지한다. 네가 찌고 내가 빠져야 하는데 이건 당최 거꾸로 되어 가니 이 또한 우스운 울분이 묘하게 쌓여간다. 작년 이맘때의 생일날엔 즐겁게 케이크를 먹고도 양심의 가책 따위 없는 날씬하고 가벼운 몸이었지만, 올해는 아마도 드라마틱하게 반전된 장면이 연출될 테지. 암병동 8층에서 너와 함께 하루를 보내며 수시로 열체크를 하고 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조금이라도 먹이려고 애쓰면서 너의 징징거림과 짜증을 받아내느라 분투하는 하루가 벌써부터 예견된다.... 



그래. 이러기만 했다면 또 저러기만 해 다면.

모두 함께 모여 오랫동안 살고. 모든 일이 잘 풀렸을 텐데. (p. 237, 필립로스, 울분) 



뇌종양.... 그게 너에게 생기지 않았다면....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곧잘 한다.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서 마냥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 또한 안다. 눈물은 여전히 흐르기 일쑤인 매일 매 순간이지만. 동시에 차오르는 울분과 어떤 악다구니도 같은 것도 생긴다.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그게 없다면 아마 간병을 하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 나로서는. 그리고 너는 모른다. 너 만큼 곁에서 널 지키는 나도 천천히 아파가고 있다는 사실을. 환자는 알 수 없을, 그 곁에서 완전밀착된 간병가족의 고충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도 알 수 없을 테지. 당신 아내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심장의 참담을 움켜쥔 채 입술 깨물고 살아내고 있음을.  



현실에서는 내뱉을 수 없는 말을... 그나마 이곳 백지를 가득 메워서라도 토해내는 이유 또한 간병을 잘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몇 시간 전까지도 울분에 차올라서 끝내 울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했다. 저녁 준비를. 오늘 저녁에 해줄 음식들을..... 생활은 끊김 없어야 하니까. 결혼과 가족과 간병은 결국 '현실' 이니까. 그리고 아직 그 현실을 포기할 수 없음을. 나는 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