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11/12, 재입원
정음이의 모든 문장은 나를 떨리게 만든다. 특히 그중 가장 가슴 뛰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이 말이다.
'머리 아파'
그렇다... 5월에 급히 뇌압이 폭증하여 하마터면 정말 아이를 잃을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정음이는 개두술을 두 차례를 했다. 뇌압으로 인한 수두증은 그만큼 정음의 '두통'을 비롯한 여러 신경 장애를 일으키는 첫 번째 신호탄이었었다.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던 건 사실 뇌종양을 알기 몇 달 전이었고 그때 나는 아이를 데리고 여러 소아과를 비롯한 동네 병원을 다 돌아다녔었다... 미련하게도. 진작에 MRI 찍을 생각으로 받아주지 않아도 응급실로 업고 뛰었다면 지금쯤 괜찮았을까.........
-
지난주까지 4차 항암을 마치고 통원하며 외래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하루 걸러 외래다. 월수금 이런 식으로. 그런데 4차 항암 마지막날 조절했던 션트가 문제였을까. 정음이를 관찰하던 나는 경미한 변화를 감지했다.
두통. 눈동자 위치
요 근래 머리 아프단 소리를 하던 정음이었다. 심장이 철렁거리고 어떤 게 요인일지 기록했던 투병 일기와 기억을 반추하던 중 아무리 생각해도 변화는 '션트' 뿐이었다. 스트라타 1.0에서 요추천자 하면서 뇌척수액이 복부 배액관으로 너무 많이 빠져나가고 있단 혈종과 소견에 1.5로 막았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좀처럼 잠을 잘 수 없고 당장 다음 외래 때 혹시 싶어서 입원할 각오로 간단한 입원가방을 모두 챙겨서 외래를 갔다.
선생님께 읍소했다. 열이 나진 않지만 분명 정음에게 이상 현상이 감지되었다고. 교수님께선 처음에 반신반의하셨지만 나의 강력한 읍소와 정음이가 희미하고 여린 목소리로 '머리가 아파요'라고 했기에 응급실을 통하지 않고 당일 바로 입원장을 내주셨다. 그리고 오전부터 오후 3시까지. 입원실이 나오기까지 잠시 통원치료센터에서 혈소판 수혈이 다 되고 잠시 대기하면서도 정음이는 내내 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눈물을 겨우 참고 있었다. 핏기 하나 없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내 타오르듯 애타는 심정과 심장의 참담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만의 것이었겠지.....
재입원
우리는 다시 입원했다. 8층 별관 소아암병동으로. 뇌 CT 오더가 났고 다행히 늦은 오후 6시 30분에 바로 찍고 돌아올 수 있었다. 첫날 2인실 창밖에 머물었던 정음은 확 떨어진 수치로 인해 혈소판에 이어 적혈구 수혈도 받으며 내내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은 정음이었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며 내내 타는 속과 뛰는 심장과 금방이라도 솟구치는 눈물을 계속해서 참아야 했다.
뇌척수액
밤 9시에 주치의께서 간호사를 통해 직접 전화를 주셨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이 맞았다. 열이 나지 않는데 왜 입원하셨냐는, 아직 수치 하락기가 아닌데 일찍 오셨다고 의문을 품으셨던 주치의셨지만 밤에 CT 결과가 궁금해서 보셨고 애타듯 걱정하는 애엄마의 마음을 아셨는지, 바로 전화를 주셨다. 션트 조절로 인해 뇌척수액이 다시 머리에 차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뇌실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을 확인. 그제야 일단 두통의 원인을 파악했으니 한시름 놓았지만 사실 새로운 불안은 생기고 말았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두통이 생길 만큼 찰 수가 있나. 뇌압이 아주 높은 게 아니어도 사시나 복시, 그리고 체력 저하와 깊은 수면의 연속이 일어나는 게 정상(?)이라고 볼 수 있는가. 기타 신경외과적인 의문점들. 소뇌 쪽 종양을 제거했으니 그쪽으로도 뇌척수액이 흘러 나가는 게 맞다면 션트 조절을 아무리 조여 놨어도 이렇게 물이 차 오를 수 있단 말일까....
다음날은 주말이었지만 다행히 신경외과엔 수술이 잡혀 있었고 션트 조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오후 5시가 지나서야 간호사께서 션트 조절을 위해 방문하셨다. 다시 기준점을 원복 시키고 재빠르게 다시 가셨다. 몇 가지 궁금함이 있어서 물어봤지만 아주 선명한 대답을 해 주지 않으셔서 조금 답답했지만. 아무튼 큰 원인(?) 은 제거했고. 그렇게 다시 이틀 정도 후에 뇌 CT를 찍어서 뇌실 공간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는 것. 그리하여 다시 우리의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병원에서는 언제나 기다리는 게 일이다...
정음이는 이번 입원을 하면서 거의 아무것도 섭식하지 못했다. 사실 안타깝게도 4차 항암 하면서도 잘 먹진 못했지만 그것이 끝나고 두통이 생기고 나서는 다시 또 먹지 못하고 먹지 않으려는 아이다.... 그나마 겨우겨우 달래서 190ml 두유 2팩과 게토레이 한 캔, 초콜릿 2조각. 그 정도가 현재 아이의 먹음의 전부다.....
다행히 모든 수치의 급락 기임에도 정음이는 열이 나진 않았다. 물론 입원해서 매일 그라신 (수치 주사)과 맥스핌 (항생제)를 비롯하여 영양수액을 (이번 입원땐 엔텔스주를) 중심정맥관을 통해 비타민주와 함께 투여시키며 아이의 빈약한 영양을 그나마 끌어올리고 있었다.
병원 입원이 너무 힘든 정음이는 하필 이번 입원 때의 병실 배정운(?) 이 조금 없었다. 옆 침대의 환우 보호자분은 새벽 내내 코를 고셨고 생활 소음과 옆 환우 친구의 수다(!)는 장난이 아니었다..... 정음이는 가뜩이나 지치는 가운데 내내 그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 퇴원을 호소했다. 일단 집에 가는 게 아이를 돕는 일이라 느꼈지만 섣불리 갈 순 없었고 다만 CT 결과 이상 없다는 확실한 컨펌을 요청했고. 그 이후 신경외과 협진이 났고 동시에 며칠이지만 뇌실 공간에서 물이 조금씩 없어진다는 확인을 한 이후 우선 이번 입원을 일단락 지을 수 있었다....
신경외과와 재활의학과
그리고 내일모레. 우리는 늘 있었던 혈액종양과 뿐 아니라 신경외과와 재활의학과 방문을 앞두고 있다. 한 번은 뵙고 문의드리고 싶었지만 막상 예약 날짜가 다가오니 이상하게 긴장이 되고 걱정도 된다. 신경외과뿐 아니라 재활과는 특히 날 떨리게 만든다. 개두술 이후 반년이 지났음에도 일상생활 함에 있어서 정음의 근력과 운동 및 보행 등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 일시적 장애인 판정을 받고 내내 휠체어 생활 중인 정음이는 일시가 아닌 영구적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등, 내 걱정과 노파심과 더불어, 정음의 재활 치료 계획에 앞서 선별 검사가 필요하다는 여러 생각에 재활과 문의를 시작한 것.
-
이 모든 시간. 이 모든 아픔.
모든 아픔엔 이유가 있다... 정음의 아픔엔 이유가 확실히 있었다. 미리 알아채지 못한 무력하고 못난 어미는 내내 자꾸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너의 아픔을 되돌아본다. 혼자 얼마나 아팠을까.... 뇌압이 폭증하고 있던 것도 모르고. 사시와 복시와 두통과 구토가 내내 일어나는 것이 너의 연약함과 그저 학업 스트레스로만 착각하고 동네 병원만 데리고 다녔던 엄마가 얼마나 원망했을까.....
정음의 아픔은 고쳐지고 있다고 강하게 믿고 산다. 솔직히 그 믿음 없이는..... 나는 현재.... 버틸 힘이..... 소실되어 가는 중이라는 걸 나는... 확실히 나 자신만큼은 느끼고 있다.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지만. 누군가 '요즘 어떤지라고 묻는다면 '그냥 그렇다' 라거나 '괜찮다'라고 말하는 건 사실 완전한 거짓말이라는 걸 나만 안다....
전혀 괜찮지 않다.....
아픔 앞에서 '괜찮다'는 단어는 무효하다. 최소한 자식 아픔 앞에서 괜찮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사실 '괜찮냐'는 말 자체가 나로서는 어불성설이다.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괜찮냐는 문장이 묘하게 속상할 때가 있다. 차라리 말없이 앉아주거나 같이 목놓아 울어주는 것이.... 더 낫겠다 싶을 만큼.
정음이는 자꾸 잔다.... 입원하기 전부터 퇴원을 한 어제, 그리고 오늘까지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정음이는 자고 있다. 션트 조절을 했음에도 머리가 아픈 걸까. 아니면 코가 막히다고 힘들어하다가 다시 잠든 너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숨죽여서 우는 나는.... 너의 아픔 앞에서 자꾸만 무력해지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곁에서 네 칭얼거림과 짜증과 힘듦과 항암 하며 버티는 그 투병시간을 같이 지켜주는 것. 시간을 같이 뚫고 나아가는 것. 그것 이외 도무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지금 너무 없다... 그래서 속이 탄다. 애가 끓는다. 오장육부 사지가 찢어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어떤 '고통'과 '아픔'이 있다는 걸.
나는 너를 통해 절절히 느끼고 깨닫고 있는 중이다... 모든 아픔엔 이유가 있고, 특히 나의 아픔은 다름 아닌 이제 너의 아픔으로 인함이고, 너의 아픔이 사멸되기 전까지는 아마 내내 계속될 것이라는 걸 각오하고 있다.
나아간다...
그래도 유일하게 내가 정음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단일한 유일함은 나아가는 것뿐이다. 아프면 고치고 약을 먹거나 입원을 한다. 수혈을 받고 주사를 맞고 다시 항암을 하고 다시 입원을 하고 다시 병원을 가고. 그렇게 시간을 꽉꽉 채워 나간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봄, 여름, 가을이 지나간 것처럼. 아마 겨울에도 그럴 것이고 우리에겐 표준치료과정의 후반전에는 아주 큰 관문인 고용량항암이라든지 몇 달씩 무균실에 갇혀 치료하는 시기라든지 조혈모 세포 이식까지도 남겨두고 있을 테지.
먼 미래를 이젠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걸 해 나갈 뿐이다. 빈약하고 무력한 실천이지만 정음이를 위해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것들을 해 나갈 뿐이다. 계속해서 관찰을 하고 기록을 하고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 너의 열 패턴이라든지 대소변의 색깔, 용량, 주기, 변화라든지. 식음 체크라든지. 중심정맥관의 주기적 관찰 및 소독과 청결을 위한 샤워. 먹이려고 애쓰는 분투의 순간들. 그런 아주 사소한 간병인 엄마의 시간...........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게 고작 이런 수준이지만.
눈물과 함께 시간은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가을을 지나 겨울에 닿아지겠지.
다음 항암까지 외래를 주기적으로 보면서.... 미안.... 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이제는 그 한마디조차 점점 할 말을 잃어갈 정도로 가슴 아픈 매일을 지내고 있다.. 솔직히 그렇다...... 내내 잠을 자기만 하는 정음이 네게 나는 그 문장조차 이젠 내뱉기가 쉽지 않다..... 너의 아픔 앞에서 내내 눈물만 여전히 흘리며.
한 걸음.
그저 현재 할 수 있는 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간청한다. 정음이와 나의 한 걸음들이 결국 우리 두 사람을 살리는 시간임을.
.........
울지 말자.... 여전히 울 공간은 없다....
-
2024년 5월
5/1 : 심한 보행장애, 동네 병원 뇌 MRI 및 정밀 검사 소견서 입수
5/2 : 분당차 MRI 및 긴급 입원 (소아청소년과 - 신경외과 이동)
5/3 : 1차 개두술, 수두증, 션트
5/8 : 수모세포종 진단, 2차 종양제거 개두술 진행, 6시간가량, 이후 중환자실 입성
5/9 : 중환자실, PICC 시술
5/10~22 : 일반실, 병동생활
5/22 : 오후 SMC 대리 진료, 긴급 전원, 퇴원과 입원 수속
5/22-23 밤부터 새벽까지. MRI, CT, X-ray 등 모든 재검사 진행
5/24 : MTX 항암제 1차 투입, 히크만, 골수검사, 요추천자
5/27~6/3 : 1차 항암 A플랜
2024년 6월
6/6~15 : 응급실 재입원.... 열남, 균배양검사 - 중심정맥관 포도상구균 발현
6/20~25 : 2차 항암 B플랜
2024년 7월
7/4 : 혈소판 수혈, 그라신 수치주사
7/7~10 :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조혈모 채집 입원
7/19 : 양성자 마스크 제작 및 모의 치료
2024년 8월
7/29~9/2 : 양성자 25회 차 (전뇌전척수 : 13회 차 / 이후 부분 양성자 12회 차)
이후 일주일 간격 피검사-수치주사-헤파린 주입 등 기타 중심정맥관 관리
2024년 9월
9/25~28 : 3차 항암 A플랜 입원
2024년 10월
10/2 : 빈크리스틴, A플랜 주입 끝
10/6~10/12 : 급 응급실 입원 (균배양검사 2회, 기타 항생제 및 수치주사, 적혈구, 혈소판 수혈 등)
10/28~11/1 : 4차 항암 B플랜 낮병동
2024년 11월
11/4 : 잔여 빈크리스틴, 피검 ANC 870
11/8~12 : 재입원, 뇌CT, 션트 재조절 (원복, 1.5 -> 1.0)
11/15 :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초진
A항암 : 요추천자 (MTX) , Vincrisine, Etoposide, Cyclophosphamide, Cisplatin, Mesna
B항암 : 요추천자 (MTX) , Vincrisine, Etoposide, Etoposide, Ifosfamide, Carboplatin, Mes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