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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5. 2024

4차 항암, 그리고 상실감에 대하여

10/28~11/1, 4차 항암 B플랜, 낮병동 기록 

정음이의 4차 항암은 낮병동이었다. 낮병동은 서류적으로는 입원과 퇴원이나 사실상 환자는 이른 아침 병원으로 출근하여 투약 등 치료를 완료한 후 늦은 오후 집으로 귀가하는 수순이다.  오전 7시에 일어나 8시가 채 되기 전 병원에 도착, 그리고 약 오후 5시 전후로 귀가하는 일과를 정음과 나도 경험했다. 사실 항암치료는 내내 입퇴원 과정을 거쳤기에 낮병동은 처음 겪는 경험이어서 다소 긴장했지만 도리어 생각해 보면 낮병동이 아이에게는 더 괜찮다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정음이에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일종의 '희망'과도 같은 가치를 지니기에. 언제나 입원이 힘든 정음이었다. 병원에서는 일체 먹는 것도 부실했을뿐더러 무료하고 힘든 병동생활을 - 먹는 것, 싸는 것, 자는 것 모두 - 갤럭시탭이나 핸드폰으로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니 낮병동은 꽤나 반가운 것이었겠다. 물론 왔다 갔다 휠체어와 짐을 짊어지고 매일 아침저녁 데리고 다니는 간병인인 나로서는 진땀 나고 여러모로 긴장해야 하는, 퍽이나 고달픈 시간이었지만. 



도착하자마자 우선적으로 중심정맥관을 통해 수액이 달아진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항암제가 각각 투여된다. 처음 15분에서 30분 정도는 빈크리스틴, 그 이후엔 이포스파미드, 그리고 카보플라틴, 그 이후엔 에토포시드, 중간에 메스나가 각 3회씩 시간 주기에 맞춰 같이 투여된다. 2일째까지는 이 모든 항암제가 투여되지만 3일 차부터는 이포스파미드와 메스나, 에토포시드만 투여된다. A플랜에 있는 시스플라틴이나 시클로포스파 미드는 이번 B플랜에는 없다. 그렇게 5일간, 정음이는 4차 항암 낮병동을 마쳤다. 그리고 7일 차 때 외래를 통해 맞는 빈크리스틴까지 모두 투여되었다...



소아청소년 통원치료센터에서 낮병동은 거의 입원실과 흡사한 환경이었다. 새로 이전하여 개편된 공간은 모두 말끔한 환경이었고 운이 좋았던 우리는 그 새 공간의 '첫 손님'이 되었다. 그럼에도 어떤 새로움이라든지 공간을 만끽하는 즐거움(?) 같은 건 정음에게는 모두 의미 없는 것이라는 걸 안다. 실상 5일간 왕래하며 항암 시간을 견디는 정음만의 방법은 껌을 씹는 몇 분 혹은 갤럭시 탭을 통해서 미디어에 접속하며 시간을 때우거나 아니면 자 버리는 것이다. 정음이는 3차 항암과 바로 응급실을 간 이후에 부쩍 낮잠이 잦아졌다. 점점 낮잠이 늘어나는 정음이를 곁에서 지켜보며 나의 불안과 긴장은 더해만 간다. 어디가 아파서 자는 걸까, 아니면 피곤해서? 아니면 그새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게 몸에서 이상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등등. 



너를 지키는 내 불안은......... 끊김 없다....... 아마 항암 치료 하는 내내, 어쩌면 사는 내내 그러할 테다... 요추천자를 이번엔 2번이나 찔렀다가 세 번째에 겨우 해냈고. 션트가 있어서 뇌척수액이 흐르지 않는 것을 의심했기에 션트 조절을 했지만 그 이후에 경미한 두통을 호소했던 정음. 그리고 찔렀던 허리 부분의 뻐근함이 가시지 않기에 계속해서 정음을 관찰하는 내 마음의 불안은... 아마 아이 곁에서 내내 있는 나만 느끼고 나만 아는 감정일 테다...




양성자 이후 여전히 식욕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만 희망적인 건 정음의 구토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항구토제 (온세란정)에 의지하지 않아도 메슥거리는 게 줄어들었다. 확실히 무언가 마시거나 섭식하는 데 조금씩 양과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물 한잔도 마시지 못했던 정음이는 이제 두유 한 팩이나 게토레이 1캔 정도는 마시고 있다. 다행히 '먹고 싶은 것'도 생겼다. 물론 그것이 영양가 없는 짜파게티라든지 파스타 정도에 그치지만. 그것 또한 5 젓가락을 넘기지 못하지만...... 집에서 재활도 시작했다. 재활 답지 않은 재활이지만 치료 도중에 재활을 손 놓고 있다가는 영영 걸을 수 없을 거라는 지난번 외래 때 교수님의 단호한 지침 덕분에 정음과 나는 애를 쓴다. 30초에서 1분, 1분에서 5분, 그렇게 보행기구를 잡고 걸을 의지. 아이를 독려하고 연습시키는 데 진땀을 빼지만 그래도 멈출 순 없다. 다시 걸어야 하니까.....



어떤 희망이 없다면 사실은 살 수가 없다.... 나는 그걸 안다.... 나아가는 만큼 나아지고 있다는, 근거 없는 희망은 사실 절망이라는 모순을 낳지만. 그래도 나와 정음이만 아는 '나아짐'은 확실히 존재한다. 완전 못 먹던 상태에서 조금씩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나아짐. 매일 하는 구토에서 이틀에 한번, 4일에 한번,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 그렇게 줄어들고 있는 나아짐. 완전 못 쓰던 왼손 왼 발이 조금씩 움직이고 급기야 1분 정도는 스스로 서고 휘청휘청 대지만 다시 걷기 시작했다는 나아짐. 24시간 아이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매 순간 내내 속 타고 애끓는 절절한 감정의 늪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려는 나아짐. 






그러나 딱 하나.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게 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상실감으로 인한 어미의 눈물이겠다... 횟수로 따지자면 확실히 나아지긴 했다. 매일 울다가 이젠 이틀에 한번 정도 흐른다는 것... 이것도 나아짐이라면 나아짐일까. 아니.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과거의 정음이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만다. 슈퍼를 오고 가며 정음이와 걷던 길과 마주할 땐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다. 심장이 떨리고 그제야 내내 눈물이 솟구쳐서 나도 모르게 주르륵



과거의 정음이는 여전히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금세 '엄마' 하면서 달려오는 네가 보인다. 환상일까 아니면 환청일까. 예전의 정음이가 생각나서 여전히 살 수가 없는 순간이 잦다... 네게 못해준 것만 떠오르다 마음이 좋지 않아 져서 눈물은 쉬이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있어야 겨우 심장은 제자리. 현재의 정음이를 지켜보며 예전의 정음이를 지운다. 그때의 너도 너였고 지금의 너도 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무엇보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다만 현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려 노력하면서. 



예전의 정음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은 실상 어리석은 감정이라는 걸 안다... 다만 예전과 흡사하게만이라도 다시 정음이에게 그리고 나로 하여금 우리의 추락하고 소실된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회생시킬 수만 있다면. 파멸되고 박살 난 인생도 다시금 소생될 수 있다면. 신은 죽었다지만 그래도 신에게 딱 하나 바라는 건 이제 그것뿐이다. 



두 사람을 지킬 수 있도록 어리석은 어미에게 조금 더 큰 지혜와 용기를 내려 주심을....  




이 날은 모처럼 예전 같아서 기뻤다...




여전히 힘들다.... 왜 아니겠는가...... 환자만큼 아니 때로는 환우보다 더 병들어가고 있는 게 어쩌면 간병인일지도 모른다는 못난 생각을 나는 하고야 만다. 정음이 병원에 데리고 왔다 갔다 하는 것. 아이의 모든 것을 챙기는 것. 사사로운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정말이지 하나하나... 내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을 정도로.. 혼자 헤쳐 나아가고 있다는 고달픔과 고뇌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가장 피곤한 건 의외로 부딪히는 배우자와의 잦은 트러블과 불통으로 인한 감정의 격무에 시달림이겠다. 물론 안다. 남편도 나에게 어떤 불만과 불편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만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밖에' 행동하는 배우자를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예전엔 분함을 참지 못해 표현했지만 이제는 그 또한 침묵으로 타진 중일뿐이다. 아이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불안함을 야기시키고 마는 못나고 어리석은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무엇보다 잘 알기에.



참고 참고 또 참으며 그저 나아가는 중이다... 이미 속은 잿덩이가 되어 버렸고 현생의 '나'는 일찌감치 버린 지 오래여서 아주 가끔 울분에 휩싸일 땐 여전히 눈물로 일갈할 뿐이지만... 어디까지 나아질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다만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확실히 알고 있기에 다만 계속해서 멈추지 않을 뿐이다. 남은 표준 항암과 내년 초로 예상되는 고용량 항암과 조혈모세포이식.... 부디 이벤트 없이 무사히 넘겨야 한다... 



11/5일 현재 기준. 정음의 백혈구와 ANC 수치가 급락하는 시기의 시작. 열나면 응급실행. 내일은 다시 외래. 수치 낮으면 그라신 투여... 필요시 수혈 등 


정음의 치료는 계속 진행 중..... 울 시간은 없다. 상실감을 느낄 여유도 없다. 다만 더 강해져야 한다....

.......







- 악성뇌종양 수포세포종 투병 기록 - 


2024년 5월 

5/1 : 심한 보행장애, 동네 병원 뇌 MRI 및 정밀 검사 소견서 입수 

5/2 : 분당차 MRI 및 긴급 입원 (소아청소년과 - 신경외과 이동) 

5/3 : 1차 개두술, 수두증, 션트 

5/8 : 수모세포종 진단, 2차 종양제거 개두술 진행, 6시간가량, 이후 중환자실 입성

5/9 : 중환자실, PICC 시술 

5/10~22 : 일반실, 병동생활 

5/22 : 오후 SMC 대리 진료, 긴급 전원, 퇴원과 입원 수속

5/22-23 밤부터 새벽까지. MRI, CT, X-ray 등 모든 재검사 진행 

5/24 : MTX 항암제 1차 투입, 히크만, 골수검사, 요추천자 

5/27~6/3 : 1차 항암 A플랜 


2024년 6월 

6/6~15 : 응급실 재입원.... 열남, 균배양검사 - 중심정맥관 포도상구균 발현

6/20~25 : 2차 항암 B플랜


2024년 7월

7/4 : 혈소판 수혈, 그라신 수치주사

7/7~10  :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조혈모 채집 입원 

7/19 : 양성자 마스크 제작 및 모의 치료 


2024년 8월

7/29~9/2 : 양성자 25회 차  (전뇌전척수 : 13회 차 / 이후 부분 양성자 12회 차) 

이후 일주일 간격 피검사-수치주사-헤파린 주입 등 기타 중심정맥관 관리 


2024년 9월

9/25~28 : 3차 항암 A플랜 입원 


2024년 10월

10/2 : 빈크리스틴, A플랜 주입 끝 

10/6~10/12 : 급 응급실 입원 (균배양검사 2회, 기타 항생제 및 수치주사, 적혈구, 혈소판 수혈 등) 

10/28~11/1 : 4차 항암 B플랜 낮병동 

11/4 : 잔여 빈크리스틴, 피검 ANC 870 



A항암 : 요추천자 (MTX) , Vincrisine,  Etoposide, Cyclophosphamide, Cisplatin, Mesna

B항암 : 요추천자 (MTX) , Vincrisine,  Etoposide, Etoposide, Ifosfamide, Carboplatin, Mes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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