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말고 나아갈 것...
정음의 소변을 받아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변의 양과 색상, 거품 여부 등을 관찰한다. 흡사 자동반사적인 행위들. 그 후 소변통을 씻어내면서 수도꼭지의 물을 틀어 놓은 채 아주 잠깐 생각하고 만다. 지금 내가 간과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 소변량이 적지 않음에도 BUN이 수시로 우상향 하는 건 도대체 왜일까. 뇌척수액이 너무 빠져서일까. 음압 조절 되지 않는 쭉쭉 빠지는 CSF flow 식 션트가 너무 잘 기능동작하고 말기에 그것은 도리어 정음의 체내 총수분량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일주에 한 번은 구토하는 게 원인일까. 이러저러 생각이 똬리를 틀다가 이내 멈춘다. 곧바로 잠시 한숨을 내쉰다. 무력함을 느끼며. 다음 피검사 수치 결과를 조마조마하게 기대하듯 기다리며.
새해 1월도 순탄치는 못했다. 섭식과 동시에 구토가 조금 잦았었다. 응급실로 바로 달려가 이탈된 비위관을 다시 삽입하는 매 주를 지냈다. 그러다 급기야 1월 마지막주차부터 여태까지 - 이 글을 쓰고 있는 2월 첫째 주까지도 - 거의 3주간 정음은 '매주' 수액 처방을 받고 있다.
BUN 상승
30대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다가 급기야 어느 하루는 50대를 찍었다. 생전 처음 보는 숫자. 다시 어떤 '변수'가 찾아오는 시그널일까. 불안은 늘 요동친다. 정음이가 뇌종양 환우로 살게 된 그 이후부터 어쩌면 불안이라는 녀석은 이제 평생 날 따라다니는 불친절한 동반자가 되어 가는 것만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 아니, 실로 다행이고 감사에 가까울 것이겠다만 - 가정간호가 가능한 지역 거주자이기에 외래를 자주 보면서 외래가 없는 날은 가정간호로 수액 처방을 받았다. 일주일에 5일. 통원치료센터에서 수액을 받고 피검사로 신기능을 예상하는 수치들을 확인하고 추이를 살피는 연속. 그러다 주말에 수액 없이 지낸 이후의 월요일이면 다시금 BUN과 크레아티닌이 동시에 상승되어 있다. 아주 드라마틱한 급상은 아니지만 어쩐지 이 '방향성'이 여간 찜찜하다...
경구 섭식은 여전히 더디다. 일단 밥-곡식류-은 안 먹으려 하고 반찬 위주. 그나마 티스푼으로 한 두 스푼. 많아봤자 다섯 스푼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게 되는 실정. 그럼에도 나는 부엌에서 떨어지지 않고 매일 요리를 한다. 볶고 삶고 튀기고 조리고. 매일 분주히 매번 다른 식탁을 준비한다. 정음이가 거의 먹어주지 않아도 네 식욕을 자극하기 위한 나만의 분투.... 그러나 먹어주지 않는 실패의 연속 속에서 좌절과 환멸을 곧잘 경험하는 매일이었다. (여전히도) 그래도 훈민이가 결국 모두 다 잘 먹어주니 늘 내 구원자에게 지지받으며 요리도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중.
정음을 돌보는 일은 일반적이지 않다.. 왜 아니겠는가. 11세의 디펜드와 떨어질 새가 없고 거동은 불가하며 한 두 걸음 정도 겨우 부추겨 걷는 연습을 시키다가 휘청이게 되면 움찔하고 그 마저도 중지. 이렇게 수개월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보행장애 뇌종양 환우 간병 2년 차에 접어든 나도 돌봄 제공자로서 간병인으로서의 '짬밥' 이랄 것이 늘었다. 일종의 잔머리와 요령일 테지만. 멀티태스킹의 화려한 스킬은 날로 레벨 갱신 중이고 소변을 다 치우고 나니 갑자기 똥을 싸게 되는 지경에 처해도 이제는 놀랍지 않고 담담히 처리한다. 먹다가 갑자기 구토를 하고 그러다 콧줄이 입으로 쑤욱하고 빠져나와도 태연히 줄을 빼고 '뒤처리'를 시행한다.
다만 입술을 세차게 깨물고.... 인내력을 시험하듯. 나는 매일 나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친절하기를. 친절할 수 없는 삭막한 환경 속에서도 부디 다정하게 대할것을 매일 독려하면서....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타인의 돌봄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다. 부모 자식 간, 혹은 타인의 손에 의해서. 너무나 쉽게 당연시되는 어떤 행위들은 그것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보여서' 우리 시야에서 자주 미끄러져 사라진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는 행위는 특히 더더욱. 뒤를 닦아주는 것과 필요시 음식을 떠 먹여 주는 것. 그 사소하고 지난한 시간들은 그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만이 안다...... 얼마나 인간이 의존적이고 취약할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외래를 보고 통원치료센터에서 잔여 수액을 받다 잠든 정음을 바라보다 다시 생각에 잠겼었다. 돌이켜보자면 정음과 항암 시절 겪었던 모든 의료 처치의 행위도 일종의 '돌봄'이었다. 다만 그 돌봄은 의료적 행위를 띄며 그 모든 행위 들은 '금전적 가치'가 메겨진다. 즉 비용과 편익으로 계산이 가능한 관계의 시작에서 비롯된 의료적 돌봄은, 한편 그 정 반대에서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헌신으로밖에 갈음할 수 없는 나의 돌봄 행위가 어딘지 자꾸만 납작해지는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이어지고 맺어지는 관계... 그러니 이 '숭고한 기적' 같은 행위 앞에서 감히 금전적 가치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테다...(라고 자기 합리화하듯, 지칠 때면 유독 그렇게 스스로 자위하듯 다독이는 바보 머저리 같은 엄마...)
치료 종결이랄 것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다시 잦게 병원을 다니고 있다. 뇌종양 투병의 긴 여정을 통해 나는 이제 정음과 뗄 수 없는 '물아일체'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그저 나이가 들 수록 자식에게 부모는 '있으면 좋은 옵션'이라고 한다지만, 아니. 정음은 다르다.... 아픈 아이는...... 다른 것이다..... 아파도 지극히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세계에서는....... 그녀 자신의 존재는 옵션이 아니라 어쩌면 필수재겠지...
늘 시간에 안달복달한다. 시간을 '관리' 하려는 건 어쩌면 내가 흔히 빠지는 지극한 환상통일테다. 거동이 여전히 불편한 데다가 이렇듯 온갖 변수와 불안을 초래하기 쉬운 정음을 돌보며 시간을 통제한다는 건 언감생심이겠다. 정음이를 둘러싼 일상은 때로 모든 것이 동시에 벌어지거나 동시에 이뤄져야만 하니까.... 하지만 또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하루 종일 수액과 비위관의 영양공급제가 떨어지는 속도를 확인하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것.
무엇보다 정음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다 한다. 이번 설 연휴에도 왠지 모르게 '입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예감이 밀려온다. (입원 가방을 준비해서 곧 돌아오는 외래를 가야 하기에) 아빠와 잠시 교대할까 싶다가도 10분만 없어져도 '엄마' 소리 하면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정음일 두고.... 내가 어딜 갈 수 있단 말일까.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어쩌면 갈 곳이 있고 만날 친우가 있다한들, 내가 나 자신을 잘 알기에. 나는.... 언제나 널 선택하고 마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의도치 않게. 어느새 의도적으로. 그렇게 네게 맞춰 변해가는 인생. 변한 인생.
날 필요로 하는 네 존재가 여전하기에 가끔씩 밀려오는 어떤 감정들을 -예컨대 울분 혹은 우울과도 같은 - 애써 이겨낸다. 아무렴. 네가 버젓이 내 곁에 있는 걸.... PICU에서의 너를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는 걸. 중환자실 앞에서 주인 잃은 강아지 마냥 하염없이 낑낑거리면서 눈물 닦아가면서 널 몇 분 보려고 내내 기다렸던 절박했던 나를 나는 여전히 기억하기에.
최근에 정음의 몸무게가 늘어서 좋아했지만 알고 보니 내 체중이 줄어있다는 걸 알았다...; 50kg를 겨우 넘는, 워킹맘 시절의 다시 깡 마른 체형이 되어 가고 있다. 연초에 했던 종합건강검진에서 '특이' 사항은 감사하게 발견되지 않았지만 몇 가지 추적검사를 앞두고 있다. 주삿바늘이 팔뚝을 찔렀을 때, MRI를 위해 잠시 누웠을 때. 병원에서의 매 순간 나는 정음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울었다..... 조용히. 하염없이.
온갖 지독하게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뎠던 정음이다......
현재의 약간의 신기능 손상이 예상되는 수치가 정음을 무너뜨리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놔두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여전한 시간들...
새해가 어느새 한 달이 지나 두 달이 지나가고 있다. 남들의 설 명절과 길고 즐거운 연휴에도 어쩌면 우린 병원 아니면 집콕해야 하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이 벗어날 수 없는 일상 또한 정말이지 감사하게... 생각하는 노력을 애써 해 나가며.
가끔씩 울렁이는 가슴과 휘청거리는 어지러움을 견디며. 정음 곁을 오늘도 지키는 중. 날이 조금씩 포근해지는 것 같다. 봄이 오는 걸까. 아직 우리는 내내 겨울이지만. 우리에게도 겨울 다음에 진짜 봄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 지칠 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려는 사랑을, 그럼에도 꼭 붙들고 지키고 싶을 뿐이다....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나 또한 널 향한 사랑의 부재가 없길 바라며.... 난 잘하고 있는 걸까. 자주 그 생각을 골똘히 하고 마는 나는. 매일밤 네게 고백한다.
사랑해. 정음아... 오늘도 미안하고 고마웠어. 우리 내일도 고맙자... 이 정도로도 충분해.
괜찮아... 우린 다 괜찮아. 난 다 괜찮아. 너만 무사하다면. 너만 괜찮다면....
여전히 정음의 시간을 기억해 주시고 응원 주시는 분들, 글을 쓸 엄두를 도저히 못 내는...........요즘임에도...... 글 기다려 주신 구독자 분들. 그저 늘 고맙습니다....정음의 투병 일기는 시의성이 있는 SNS 소통체인 인스타 통해서 좀 더 자주 일상을 기록하고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happyheaven21/
설 연휴엔 병원에서 지낼 것 같은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곧 2월에는 정음에게 조금은 특별한 하루가 진행이 될 듯 합니다. (메이크어위시데이)
좋은 이야기가 더 많이 이 곳에 쓰여지길 언제나 바라며.....애쓰는 날들 조차...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