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소회문

우리가 지나간 길을 돌이키며. 속죄와 반성으로 쓰는 글......

by 헤븐

고 김진영 선생님은 '이별의 푸가' 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쓸모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쓸모가 있다." 라고. 그렇다면 나는 그 문장에 힘없이 기댄 채 이렇게 다시 말해버리고 싶다. 나의 무력과 무쓸모함으로 고통스러웠던 2025년에, 그럼에도 이런 어미를 지극히 사랑하며 언제나 다정한 미소로 날 지켜내준 너는 나를 필요로 했음을. 그런 네 덕분에 내 무쓸모함이 쓸모가 되어 우리 둘은 서로를 지켜내왔음을...그런 2025년이었음을........



그러나 2025년은 잘 지냈다고는 절대 말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이것이 소회문 앞에서 떠오른 솔직한 심정이다. 그 한마디가 늘 어려웠고 여전히 어렵다. '잘 지낸다'라는 말. 정음의 현실은 늘 작고 큰 변수와 고통과 참담과 줄기차게 만나야 했던 2025년이었는걸. 생각해 보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한편으로 참 부끄럽기만 하다. 어쩜 이렇게 뻔뻔하게 솔직할 수 있을지... 조금은 꾸며서라도 '잘 지내는 모습'을 문장 속에서 연출해 내고, 조금은 거짓말 보태서 밝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법하지만. 자신을 기만하지 못하고 마는 나로서는 늘 실패하고 만다. 글 앞에서는 언제나 감정이 벗겨지고 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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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순으로 회고해 보자면 2025년은 긴장하게 되고 마는 무균실 입원으로 1월을 시작하게 되었다. 1월 말 1차 티오테파로 고용량 항암을 하고, 전처치 이후 2월 5일 1차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했다. 3주간 정말이지 매일 수 차례 물설사를 하고 온몸이 만신창이였던 정음이었다... 가슴에 히크만 줄을 달고 몇 개의 수액줄을 주렁주렁 폴대에 달고서도 아이 하나 지켜내려고 물샤워를 하루에 4번 정도 매일 꼬박 시행해 냈었다... 씻겨지는 너도 힘들었겠지만 거동하지 못하는 널 겨우 낑낑대어 좌변기에 앉혀서 씻겨내는 몇 십 분은 그야말로 대전쟁이었지.



1차가 끝나고 3개월의 휴식기를 지녔지만 넌 잘 먹지 못했다... 매일 구토의 연속이었다. 사람이 매일 구토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나 하는 것이나 우리 둘 다 생지옥이었을 테다... 내가 여전히 구토 앞에서 좌절하고 마는 이유는 일종의 구토 트라우마가 생겨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무튼 휴지기를 거쳐 우린 4월 말 다시 무균실에 입성, 지옥의 사이클로포스파미드 고용량 항암을 하고 5월 8일 2번째 조혈모세포이식술을 받았다. 티오테파 때보다는 정음 기준에서 훨씬 수월했지만........... 난 이 전처치가 뒤이은 혈전을 불러일으켰다는 심증을 지워낼 수가 없다. 그놈의 혈전을 막기 위해 매일 250만 원 정도에 육박하는 비급여 혈전방어제인 데피텔리오를 주입시켰음에도.... 그랬음에도..... 막지 못했다.......



2차 이식하고 퇴원했지만 영양실조로 TPN을 위해 6월 초 매주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7월엔 결국 중증 간정맥폐쇄성 혈전질환 판정을 받고 바로 혈전 치료를 돌입했다.... 데피텔리오로 약 한 달을 매일 주사를 맞았지만 난 널 좀 더 일찍 회복 효과를 시키기 위해 '그 주사'를 놓기로 의사결정을 했었다. 참 부담스러운 고가의 비급여 주사제인 에쿨리주맙... 그 덕분에 한 달 중간정산 입원비가 2천만 원이 넘어가는 건 시간 싸움이었지...



그렇게 시간을 꾸역꾸역 채워나가다 결국 '변수'와 마주했다. 션트 보유자인 정음은 수두증이 극심히 발생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전에 시그널이 있었다. 행동변화가 심했었다. 브레인 태핑을 했음에도 차도가 없었다고, 그렇다고 해도 한번 더 해 달라고 다시 말을 했다면 넌..... 해부학적 수술을 피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션트 교체 시행 전에 반드시 CSF 배액 시키고 리비전 후 지혈 봉합 제대로 해 달라고 강하게 신신 당부 하며 드라이빙했더라면...... 누구라도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줬더라면...... 네가 그 지경이 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을까. PICU를 피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이러든 저러든 우리는 운이 없었던 걸까......



놓치지 않고 싶은 것

그러나 놓치고 만 것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놓쳐가게 되는 것

그랬던 참담한 시간의 연속. 그것이 2025년의 현실.



8월부턴 심장의 참담에 가속도가 붙어버렸다. 운이 정말이지 그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그랬었다. 지혈되는 건 고사하고 방광에서 소변이 빠져나가지 못해서 극악스럽게 고통스러워하며 몸이 반쯤 좀비 마냥 꺾이는 정음이를 그저 옆에서 오열하면서 지켜보는 것 외에 나는 비명 지르듯 애원하듯 계속 검사 뺑뺑이만 돌리지 말고 '처치'를 제대로 해 주길 바랐다.... 그리고 난 그 속에서 지독한 환멸과 무력함을 느꼈다. 내가 힘이 없다는 걸 그때 또렷하게 알았다.............. 의료적 주도권이 내게 없음을 알게 되었다.............



PICU로 전동 하며 상식으로 여전히 생각되기 쉽지 않은 CSF 음압 상태를 몇 주 내내 지속했었다. 의식까지 잃었던 정음이었다. 그럼에도 감사히 의식을 찾았다.... 극적인지 운인지 아니면 그게 의료적 효과인지는 솔직히 알 수 없다. 다만 난 그저 아이의 생명력이라고 믿고 싶다... '그 지경'까지 갔음에도 생명력이 있었노라고. PICU에서 물심양면 지켜봐 주신 의료진분의 노고도 안다. 그러나...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노고를 치하하기 이전에 워낙 많은...... 정말이지 워낙 처참한...... 심정으로 반 미친년이 되어 살아야 했기에 나는 누군가를 배려할 여유 따위 없었다. 자식 아픔 앞에서 미치지 않을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물며 이게 감기도 아닌 '뇌암' 인걸..... 지독한 뇌종양. 지독한 수두증........



9월 16일 3번째 션트리비전술을 마쳤다. 복강을 포기하고 흉강으로, 그것도 컨트롤 안 되는 CSF flow 식 션트를 박아 버렸기에 정음이는 기흉 흉수를 평생 걱정하며 살게 되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비위관 (이른바 콧줄)을 한 채로 퇴원을 '겨우' 했으나 10월엔 매주 그 L튜브가 구토하면서 이탈하고 말아서 정말이지 매주 응급실을 찾아가야 했다. 그래도 병동 생활은 종료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지닌 채 11월엔 재활도 조금씩 소극적으로 개시했다. 그리고 그 시기 MRI를 했고 작은 혈관종 비슷한 게 포착되어서 여전히 조마조마하게 다음 추적 검사를 대기 중이다....



그렇게 한 해를 줄기차게 쉼 없이 병동과 병원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어느새 2025년의 마지막 한 달인 12월이 되었지. 조금씩 사람답게 지내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집콕 생활이 일상이지만 외래를 다니며 집에서 쌍둥이 둘 보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었지.... 비록 여전히 못 먹고 콧줄을 통해 영양 공급을 해 줘야 하는 정음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기저귀를 차고 다리에 금세 힘이 풀려서 걷는 건 고사하고 그저 서 있어 주는 연습만 자주 해 줘도 감지덕지인 우리였지. 구토도 했지만 그 빈도와 횟수가 줄어들고 있음에 감사해야 했지... 그렇게 지내다 보니 결국 '그날'과 만났었지.



2025년 12월 22일 치료 종결.



치료 종결에 대한 축하와 위로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난 쉬이 체감되지 못했고 솔직히 마냥 순진하게 기쁘지도 않았다.......... 아마 어쩌면 나란 인간은... 이미 온 치료 과정을 정음과 같이 헤쳐나가며 닳을 데로 닳아 버린, 지칠 대로 지쳐버린, 부분적으로 철저히 냉소적 인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일 테다.... 암병동에서 살다시피 했다... 참척당할 뻔한........... 생지옥을 경험했었다....... 미친년이 되었었다. 매일 울고 살았다. 정말이지 매일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어도 눈물은 계속 그냥 나도 모르게 나오더라. 내 몸? 망가졌다. 왜 아니겠는가. 정음의 치료의 대가로 정음과 나 둘 다 다른 '병'을 얻었다. 마음의 병. 장기 손상. 기타 신체 기능 훼손.... 그럼에도 '생명'을 연장시켰고 그 생명을 다시 얻었다...... 그저 '감사' 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래야 한다는 걸 안다.... 그게 현대의학치료가 우리에게 남긴 최후이고 최선이었다.... 복구와 동시에 훼손. 그 모순. 모순덩어리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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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으로 성토하자면 2025년엔 현대의학에 대한 - 특히 항암 치료와 뇌신경해부학적 시술 - 많은 허점과 모순에 대해 '체감' 하게 된 한 해였다. 의료 데이터 주권도 마찬가지. 환자와 보호자에게 편이적 텍스트로 전혀 기록되지 않은, 그저 '기록'에 불과한 의무사본기록에 구술된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나는 묘한 분함을 숨겨야 했다... 왜일까.. 그냥 울분이 치솟는 연속이었다. 생김새와 목소리 덕분(?)에 순해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 시퍼런 칼날을 곤두세운 채, 그럼에도 울분을 참아내며 그저 시혜를 지속적으로 구하는 입장이 되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를 연신 말하며 지내야 했다.



그래야 정음이를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겠다... 감정을 누르며 이성을 지닌 채 계속 연구하고 학습하는 '저자세'가 되어, 지속적으로 시혜를 구하고 구하면서도 묻고 또 물어가면서. 그렇게 무엇이 베스트인지 의사결정 앞에서 내내 입술을 깨물면서 때론 따르고 때론 반박하듯 묻고. 그럼에도 계속 줄기차게 치료 여정을 따라잡기 일쑤였던 한 해.....



이게 내 솔직한 2025년의 소회문이다..... 정음이 덕분에 '뇌'가 인간에게 얼마나 '감사' 하며 또한 '치명적' 일 수 있는지 뼛속 깊이 알게 되었고, 그 뇌를 둘러싼 모든 것 하나에 조금이라도 이상기능이 생기면 온몸이 망가질 수 있음을, 생명을 잃는 건 시간 싸움일 수 있음을 더더욱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 정음은 그런 '뇌'에 종양이 생긴 '뇌종양' 환아로서.......... 일 년간...... 특히 올해는 정말 많은 고비를 넘겨야 했다........



지옥과 싸워내야 했던 2025년 이었다. 닳고 닳아서 너덜너덜 다 헤져버리고 만 한 해였다. 입술을 자주 깨물어서 입에서 피가 나기 일쑤였다. 거동 못하는 널 앉고 들고 눕히고 앉히고 먹이고 토 받아내고 대소변 치워내고 휠체어와 수액폴더 끌고 돌아다니고, 밤엔 불면 상태에서 좀처럼 불안해서 잠 못 드는 네 슬픔을 어르고 달래던, 그렇게 쪽잠 두어 시간 정도 자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열을 재고 인풋 아웃풋 배출량 체크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던 한 해.... 정음이가 느낄 참담과 고통과 통증과 엄청난 인내를.... 옆에서 노골적으로 지켜보면서 어른으로서 엄청난 무력과 환멸을 느끼고 좌절하던 한 해.... 암병동에서 널 간병하다 어깨허리 손목 통증이 심해질 때면 나도 모르게 같이 죽고 싶던 적이 사실 한 두 번이 아니었던.... 심각한 죄책과 속죄의 연속이었던 한 해....



그런 한 해가 갔다.... 하루 끝에 늘 환영처럼 다가오는 건 '예전의 정음'이었다..... 엄청나게 우렁찬 목소리로 씩씩하게 뛰어놀고 엄청 잘 먹는 아이로서 먹고 먹고 또 먹어도 배 고파하던 9세 소년.... 엄마한테 혼이 나도 씩 하고 웃으면서 장난을 잘 치곤 하던 유쾌 발랄하고 다정다감했던 소년......



그런 나의 정음을 '복구' 해 내기 위해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안간힘을........ 써야 했던 2025년......

그 안간힘 덕분에 반대급부적으로 온통 진흙바닥을 기어 나가듯 지칠 대로 지쳐버려서 미쳐가고 있는 나 자신과 싸워내야 했던 한 해...... 였다.



훈민정음. 나의 두 사람.


올해는 두 사람이 나를 살렸다............. 지옥에서 헤맬 때도.... 너희들만이 날 구원해 주었다.

그리하여 나의 神 일수밖에 없는 너희 두 사람은......... 아마 2026년, 올해에도 나를 구할 것임을 나는 안다..... 두 사람만이... 나를 슬픔에 빠뜨릴 수 있고, 두 사람만이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만이.... 이런 나를 구할 수 있다.....



나쁜 꿈을 여전히 꾸고 있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환청과 가끔의 환영에 사로잡히며 언제나 새벽에 눈을 뜬다. '그 장면'에서 늘 멈춰서 있다. 아마 트라우마가 된 걸 테다.... 괜찮다. 그럼에도. 네가 있으니까.



곁에 있다. 지금. 정음이는 내 곁에 있다. 그거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믿고 나아갔던 2025년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면 된다는 서슬 퍼런 각오로.... 2025년의 해묵은 감정을 조금은 없애 뜨리고 싶기만 하다. 쉬이 없어지지 않을 기억 속에서 아마 당분간은 나는 또 슬픔의 늪에 종종 빠질 테지만.


아무렴. 2026년에 시작되었고, 그 2026년 1월 2일. 지금 우리는.


같이 있다. 집에서......


그리하여 나는 나도 모르게 고하고 만다. 신이시여. 그러니 어찌 감읍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올해 제게 기적과 많은 구원의 손길과 기도와 응원해 주시는 귀한 인연들과 닿게 해 주심에.. 제 아들...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그리고 바라옵건대 염치불고하나 저는 아무래도 애원해야겠습니다. 당분간. 영원히. 계속... 살려내고 싶습니다.............. 그럴 것이고 그래야 합니다. 오래 살려내고 싶습니다........... 예후를 예측할 수 없는, 수두증 환우로서 션트를 지닌 악성 뇌종양 수모세포종 환우인 정음이가, '생존율'과 '재발'의 한계를 넘어서 20살 30살까지......... 계속 살아내어 '김정음'이라는 단어가 일종의 기적과 같은 시그니처가 되기를....... 그런 존재가 되어가길.............. 바랍니다.



이것이 제 여전한 염원....입니다...........

내 고통이 더해지는 만큼..... 아이가 좋아진다면 얼마든지. 얼마든지 그러길 바라는 간절히 마음.

2026년엔 부디 제발, 운이 조금이라도 다시 생겨 나기를. 2025년의 너무 힘든 고난이......... 부디 반전이 되어 운으로 정음 곁으로 다가가길 소원하며.



..... 안녕 2025년.... 다시는 이런 고통스러웠던 해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고맙습니다......그럼에도 고맙습니다............그저 앞으로도 고맙습니다...................






바보 머저리 미친년이 따로 없는 채로 살아내고 있는 부족한 어미를.... 살려낸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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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60102_203837586_03.jpg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계속해서.... 제발... 우리의 길에 운이 따르길.... 사랑한다 김정음. 내 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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